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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곽주성 탈환은 어떻게 이루어진건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양규는 흥화진으로 부터 700명의 결사대 선발하여 곽주성을 공격하였습니다. 결사대는 곽주성의 구조와 지형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고려 결사대의 습격으로 성안의 6000거란은 모조리 목이 베었습니다. 그런데 1010년 12월 16일 당시 곽주성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성은 병사들의 사기와 인과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이상과 같은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양규는 700명의 정예병, 지형 숙지, 유성으로 인한 병사들 사기 등이 곽주 탈환에 반영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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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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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진 이유는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록>,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정도전과 남은이 먼저 왕자들을 먼저 제거하려 음모를 꾸몄디고 합니다. 그러나 거사일(1838년 8월 26일)을 앞두고, 정도전 편에 있었던 이무가 방원측에 밀고함으로써 방원 측이 이들보다 한발 앞서 이숙번 등의 사병을 동원하여 송현에 있던 정도전과 남은, 심효생, 박위, 유만수, 장지화, 이근 등을 습격하여 살해하면서 이방원 측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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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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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문화통치로 넘어가게 된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는 국권을 피탈하고 우리 민족의 저항을 억누르고,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무단 통치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3.1 운동으로 무단 통치로 한국인의 저항을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게다가 국제적 비난 여론의 영향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을 존중한다는 문화 통치의 실상은 친일파를 육성하여 우리 민족을 이간 분열 시켜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술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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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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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지역 어디가 인구가 많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륙별로 본다면 아시아사 36억명으로 60.8% 인구가 가장 많이 분포합니다. 다음은 아프리카 11억 5.6천명, 유럽은 7억 3천명, 남미 5억 2천만명, 북미는 5억명, 오세아니아 3천만명 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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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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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라는 궁녀는 왜 이방원을 때렸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 이야기 있습니다. 태종은 불면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태종은 궁녀 장미에게 무릎을 안마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종이 장미의 안마가 성에 차지 않아 좀더 힘을 줘 안마하도록 호통을 쳤는데, 장미는 있는 힘께 힘을 주어 안마를 했습니다. 태종은 순간 잠이 들었다가 무릎 통증으로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에서 깬 태종은 자총지종을 장미에게 물어보니 태종이 심하게 꾸짖어 자신도 모르게 때리 듯 안마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태종도 어어가 없어했지만 자신이 초래한 사실을 깨닫고 장미를 출궁하는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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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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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서울의 일부 지역은 남경이었다고 하는데, 관련 유적은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 3경으로 남경 이전 설치 이전에는 서경, 동경, 개경이 3경인데, 이후 서경, 동경, 남경을 3경이라 하였습니다. 특히 문종21년(1067) 이후 남경 길지설에 숙종 때 1101 남경설치도감을 설치해 남경 궁궐을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남경의 위치에 대해 양주, 또는 인왕산 부근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최근 경복궁터에서 고려기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를 토대로 북악산 아래에 남경 궁궐터가 만들어졌으며, 청와대 자리가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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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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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을 뜻하는 매금은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매금은 신라의 왕호로 마립의 다른 명칭입니다. 마립간은 대수장이란 의미로 4세기 신라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내물왕 때 처음 사용한 호칭입니다. 414년 광개토왕릉비에 '신라매금'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이고, 5세기 중엽 '충주고구려비'에서도 '신라매금'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6세기 울진 봉평비, 최치원이 지은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에서도 '매금'이라는 호칭이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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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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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로 세워졌던 절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당시 전진의 순도가 불교가 전대되고 이후 375년(소수림왕 5년)에 세워진 '초문사'와 '이불란사'입니다. 소수림왕은 초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무르게 하고,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무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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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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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외에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 삼국유사 이외에도 우리나라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 서적은 15세기 서거정, 노사신의 <삼국사절요>, 서거정의 <동국통감>, 권근의 <동국사략>이 있고 16세기 박상의 <동국사략>, 그리고 이후 18세기 안정복이 쓴 <동사강목> 등을 통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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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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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가 지은 <조선상고사>는 뤼순 감옥에서 집필했다고 하는데, 인용할 만한 자료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채호 선생은 북경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역사 연구에 관심이 컸습니다. 모두 11편으로 구성된 '조선상고사'는 조선일보 학예면에 1931년 6월 10일자부터 10월 14일자까지 103회에 걸쳐 연재되었습니다. 따라서 조선상고사는 신채호 선생이 여순감옥에 수감 생활하기 전에 1924년 총론을 완성하고, 이후 서술했을 가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연재 첫날인 1931년 6월 10일 "이 '조선사 강의'는 입옥(入獄) 전에 탈고하였던 것을 그(신채호)의 친우인 박용태(朴龍泰)씨가 간직하여 두었던 것인데 금번 특히 옥중에 있는 그의 뜻을 받아 본보에 위촉하여 게재케 되었다"고 원고 입수 경위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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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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