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궁금합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가수 김추자가 1969년에 발표한 노래입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후 귀국한 한국군 병사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월남에서 돌아온"은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을 의미하며, "새까만" 베트남의 기후에서 피부가 그을리고 거칠어진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김상사"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군인 계급을 말합니다. 이 노래가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가 베트남 파병을 바라보던 분위기와 참전 군인의 애환을 담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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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섬이 어떤곳이길래 미드웨이해전이 유명한가요?
미드웨이섬은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우로 하와이에서 북서쪽에 있는 미국령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이 유명한 것은 이 전투에서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42년 6월 4일 일본이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여 하와이를 압박하려 했는데, 미국의 암호 해독과 기습에 걸려 대패한 전투입니다. 일본은 진주만 침공 이후 기세가 컸지만 미드웨이 해전 이후 항공모함 4척을 잃으면서 주도권을 잃게 됩니다. 미드웨이 섬은 아무도 크게 주목하지 않은 작은 섬이지만 그 위치때문에 일본과 미국이 항공모함 결전을 벌이게 되었으며, 이 전쟁 결과 전체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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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을지문덕의 성인 을지에 대한 기록은 없나요?
안타깝게도 삼국사기 등에 을지문덕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기록 자체도 '을지문덕의 세계(가계)을 알수 없다'라고 적혀 있어 성씨를 분명하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을지문덕의 성씨에 대해 '을지', '을', 선비족의 '울지'와 관련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즉, 현재가지 남은 사료로는 을지문덕의 성이 '을지'로 단정하지 못합니다. 다만 고려시대 을지문덕의 후손이라고 하여 '목천 돈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확정된 정설은 아니며 불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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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동남아에 가깝나요 동아시아에 가깝나요
대만은 지리적으로 동아시아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물론 대만은 인문, 민족적으로 원주민 계통은 동남아, 오세아니아 쪽에 가깝습니다. 즈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섬들 및 남태평양 세계의 언어와 기원상 가깝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만의 다수는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한족 후손이 중심이 됩니다.이를 종합적으로 본다면 대만은 동아시아에 속하지만 문화, 인종학적 기원은 동남아사적 요소가 강한 섬나라로 보는 것이 바른 시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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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은 왜 건국 신화에 늑대 젖을 먹은 쌍둥이 이야기를 담았나요?
로마의 건국 신화는 로물루수, 레무스 형제와 늑개와 연결됩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 사이에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태어나고, 왕위 다툼때문에 버려집니다. 그런데 암늑대가 이들에게 젖을 먹여 키웠으며, 이후 두 형제가 성장해 복수를 한 후 새도시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건국했다는 이야기입니다.로마 건국 신화에서 늑대가 등장하는데, 늑대는 로마에서 용맹함과 야성,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이 것은 로마의 운명과 강인함과 연결됩니다. 또한 로마가 신의 뜻과 연결된 특별한 국가라는 이미지도 만들어줍니다. 즉, 로마 신화는 로마가 우연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벼터내고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할 나라라는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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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면 완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우선 기억은 내가 누구인지를 이어주는 핵심입니다. 하지만 몸, 성향, 감정 반응과 습관, 타인과의 관계도 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기억이 사라지면 과거의 연속성이 사라지지만 몸과 기질이 남아 있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럭 상실은 여전히 자신과 단절된 상태에 가깝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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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 포클랜드 전쟁은 어떤 이유로 발발했나요?
남대서양의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식민지 시대에도 영국과 스페인의 영유권 분쟁지역었습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 독립 이후에도 영국은 1833년부터 실효 지배를 해 왔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오랜 협상과 유엔 중재에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갈등을 계속해 왔습니다.그런데, 1982년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국내 경제난과 정치적 불안이 심해지자 민심을 돌리고, 정권을 강화하려고 포클랜드를 침공했습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지리적으로멀지만 포클랜드라는 작은 섬의 소유권을 놓고 충돌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냉전기 말기의 식민지 잔재를 둘러싼 현대적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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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했던 고구려는 왜 결국 나당연합군에 멸망했나요?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대막리지로 있은 시기만 하더라도 나당 연합군의 협공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666년 연개소문 사후 내부 분열이 고구려 멸망의 결정적 요인되었습니다. 연개소문 사후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사이의 갈등으로 내부가 갈라졌습니다. 결국 장남 연남생이 당나라, 동생 연정토도 신라에 투항하면서 고구려 내부 사정이 외부로 노출되었으며, 군사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결국 이틈을 타 668년 신라와 당의 공격으로 멸망하였습니다.즉, 연개소문이 고구려이 최고 실권자로 있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고구려의 건재는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후 아들들의 내분과 분열이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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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부흥운동은 왜 실패로 끝났나요?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유민들은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복신, 도침은 왕자 풍을 세워 주류성에서, 그리고 흑치상치는 임존성에서 부흥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663년 벡제 부흥군은 왜군 수군 400척의 지원을 받아 백강에서 나당 연합군과 결전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전개된 부흥운동은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지도층의 내분이 컸습니다. 예를 들어 주류성을 거점을 둔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또한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백강 전투도 당군의 화공에 밀려 실패했습니다.즉, 백제 부훙군의 내분과 백강 전투의 참패, 나당 연합군의 압박에 의해 3년만에 백제 부흥운동은 실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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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왜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귀신은 있다고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귀신은 과학적으로 존재의 근거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귀신의 존재를 믿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심리적으로 인간 뇌에 애매한 자극에서 의미를 찾는 데서 비롯됩니다. 어두운곳의 그림자, 소리, 기척 같은 것을 광잉 경계하여 귀신이라 여깁니다. 또한 직접 본 것도 아닌 것으로 주변의 이야기와 문화를 통해 믿음을 공유하면서 귀신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 수면 부족, 가위눌림 강한 불안 상태는 감각 정보를 과장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귀신을 믿는 건 단순히 “미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뇌가 애매한 신호를 해석하는 방식과 자라온 환경이 합쳐진 결과입니다. 같은 상황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귀신 같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피곤해서 생긴 착각”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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