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붕당정치는 어쩌다가 심해지게 되나요?
사람은 사화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향약과 서원을 기반으로 선조 때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사림들은 학연, 사상, 인사권 등을 놓고 자신들 패권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1575년 외척 정치 잔재 청산 이견과 이조전랑의 자리를 놓고 김효원을 중심으로하는 동인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세자책봉,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계기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화되고 1680년 경신환국을 계기로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는 제한된 관직과 경제적 이권을 놓고 학파적 성향에 따라 붕당의 분화가 촉진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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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 송씨가 해평부원군 정미수를 양자로 삼은 게 맞나요?
정순왕후는 조선 6대 단종의 왕비로 해평부원군 정미수를 시양자로 삼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미수는 문종의 장녀이며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아들로 정순왕후의 외질입니다. 단종의 사사 이후 홀로 정순왕후가 자녀가 없이 살아야 하는 처지에 노후 봉양과 왕실 혈통 보존 의도로 성종에게 정미수를 시양자로 삼도록 허락받은 것입니다. 정미수의 후손이 단종, 정순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것은 시양자 관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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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키는 작았다는 이야기 실제 역사에서는 아니었다던데 정말인가요?
나폴레옹의 키는 프랑스 단위로 5피에 2푸스로 이는 약 168~170Cm에 해당합니다. 당시 프랑스인의 평균키가 162~164cm와 비교하면 더 컸습니다.나폴레옹이 키가 작았다는 것은 당시 190cm 근위대가 항상 나폴레옹을 호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 것이고, 영국이 나폴레옹의 키를 조롱하면서 왜곡하여 풍자한 것이 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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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은 어떻게 발발했으며 어떻게 일본이 승리를 했나요?
청일 전쟁 이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일본에게 러시아는 새로운 라이벌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아관파천은 일본에게 당황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한반도와 만주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은 갈등했습니다. 의화단 사건 이후 러시아의 만주 영향력 확대를 영국은 1902년 영일 동맹으로 견제하려 했으며, 1903년 용암포 사건을 계기로 일본이 뤼순, 다렌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 전쟁이 시작했습니다.일본이 결정적 승리 요인으로는 일본 해군이 황해 해전에서 발트 함대를 격파하고, 육군이 압록강, 여순, 랴오양, 박전에서 연승하면서 승기를 잡았습니다. 반면 러시아는 병력 수송이 지연되고, 장교들의 부패, 그리고 1905년 내부적인 혁명으로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부족했습니다.이를 파악한 일본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고, 미국이 나서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이 승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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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도 제사를 지내는 문화가 있었나요?
삼국시대에도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10월 동맹, 백제의 동명사당 제사, 신라의 국선도가 대표적입니다. 왕실에서도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주로 자연신, 조상 숭배 형태로 국가적, 왕실 제사 형태로 지냈습니다. 제사 형식은 샤머니즘, 애니미즘 기반에 따라 혼령에 제물을 바치고, 춤과 음악을 동반한 의식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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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가 강성하던 시기에 수종공신이라는 제도가 있었다던데 어떤 제도인가요?
"수종공신"은 원나라 간섭 시기 국왕의 원나라에 행차시 또는 볼모로 체류시 시종을 한 신하들에게 부여된 시종공신, 호종공신을 말합니다. 관료, 군인, 병사 등의 수행원에게 포상하는 것으로 쌀, 토지, 노비 등을 지급했습니다. 1260년 원종 때부터 시작하여 충렬왕, 축숙왕, 공민왕 시기에 빈번했습니다. 하지만 출세의 수단으로 수종 경쟁 풍조가 생겨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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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정착생활도 했지만 유목민들도 있었다던데 유목민들은 어떻게 관리를 했나요?
고구려는 부여 계통의 농경, 목축 혼합 국가로 농경을 하기도 했지만 말, 소를 사육을 병행했다고 판단됩니다. 특히 북만주, 압록강 유역 정벌로 유입된 유목 집단은 집단 예민으로 관리하였습니다. 관리가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 부족 단위 간접 지배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르면 한인(낙랑, 대방의 한족), 예인(예맥족, 북방, 동이족) 동화 정책을 통해 관리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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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나요?
암행어사도 부패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숙종 7년 암행어사 안후태가 행선지에서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지고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형벌을 남용하고 관리들과 놀며 연회까지 베풀고, 뇌물을 징수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어사가 일을 하지 않고 출도도 하지 않은 경우가 있기도 했으며, 정조 때 호남 어사 이희갑은 비리를 보고하지 않아 복귀해 질책받고 재판견 후 파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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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보험제도와 삼국지의 오두미도는 비슷한 제도라면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제도가 있었을까요?
오두미도는 삼국지의 후한말 장릉이 창시한 도교 종파로 쌀 5두를 기부하면 병치료를 위한 참회의식과 무료 의료 및 식량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오두미도는 동양권 최초의 상호부조 형태이지만 보험이라고 하기에는 종교 복지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왕실과 사제가 무료 의료 지원을 했는데, 일반 백성 대상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환자가 숙박하며 기도, 치료를 받았는데 오두미도와 유사합니다. 아테네 민주정에서 빈민을 구휼했으며, 로마도 군인 공무원 대상으로 국가 의료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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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검정시험 도전하는데 합격 팁있을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급수 기준은 기본 시험(4~6급)과 심화시험(1~3급)이 있습니다. 4급은 기본 시험의 50문항 가운데 40문항, 즉 80점 이상이면 무난하게 합격 가능합니다. 한국사의 기본 흐름을 이해하고, 군무원, 공군 가삼점 활용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기본 개념서 중심으로 큰 줄기만 공부해도 됩니다. 반드시 암기할 부분은 체크하고, 기출문제만 1주일 정도 5회 이상 반복하면 합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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