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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주류문화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중문화보다 하위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대척점이 분명할 것 같습니다.주류문화의 반대말은 하위문화가 되겠죠.대중문화는 주류문화와 하위문화가 범주가 섞여있을 수 있으니까요.대중문화와 주류문화는 대부분 공통적인 범주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대중문화처럼 인식되지만, 하위문화로 범주가 구분되는 것이 있죠.하위문화는 주류문화가 인정하려 하지 않기때문에, 주류문화 측면에서는 하위문화는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문화라고 규정하려고 합니다.사회가 다변화되면서, 주류문화, 대중문화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모든 다변화된 사회 전반에 걸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누리는 민족문화에 반대하고, 소수의 삶의 방식을 문화라고 부르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하위문화가 다양하게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SNS와 유투브같은 인터넷기반의 기술발전이 낳은 효과라고 볼 수 있죠.하위문화는 일부만이 공유한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요.시간대, 공간의 특성,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기때문일 것입니다.세대간 격차,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시기, 주류문화에 대한 반감 등이 공유되고, 확산된 것이라고 하면 되겠죠.주류문화는 하위문화를 이해할 수 없기때문에, 부정하거나 억압할 가능성이 높구요. 하위문화는 주류문화의 억압을 오히려 노이즈마케팅하여, 하위문화의 커뮤니티를 강화시키게 됩니다.서로 충돌하고, 비판하거나, 더 나아가 비난하기도 하면서, 결국은 반문화(히피족?)의 경향을 보이게 되죠.미술에서의 하위문화의 예로 적당한 것은 그래피티(Graffit)일 것입니다.거리의 공공장소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불법이며,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위문화로 발전하고, 예술로 승화되어, '낙서', '예술' 사이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대부분 인종차별, 에이즈 퇴치, 반전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때문에 주류문화를 비판하면서,시대와 공간의 특성을 살려 예술적 디자인을 통해 지역사회에 인정을 받게 되었죠.베를린 예술지구로 지정된 곳입니다.인류가 질서를 지키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고 믿고 있는 주류문화에게,하위문화는 결국 인류는 물론이고, 대자연과 지구, 더 나아가 우주 전체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쏟아내죠."가만히 있으라"는 침몰하는 선상의 스피커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한 비난은 하위문화의 방향을 잘 표현합니다.다원화 사회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주류문화 속에서 자유와 해방을 선언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커뮤니티를 만들어가고 있고, 소수문화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하위문화가 대중문화로 발전하기도 하지 않을까요. 물론, 대중문화가 되고나면, 주류문화이지 하위문화로 인식되지는 않겠네요^^
학문 /
음악
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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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에 대한 질문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슬람교의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무함마드를 박해하는 종교였습니다.로마제국이 기독교국가가 된 후, 유대교와 에비온파, 네스토리우스교 등을 핍박했기때문에,아라비아반도와 메카는 유대인, 유사 기독교도들이 이주해 살던 곳입니다.AD 570년에 메카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잃고, 가난한 삼촌을 위해 대상으로 일했던 무함마드는정직하고 신실했으며, 능력도 뛰어나 재정후원자였던, 15살 연상의 과부 카디자와 결혼합니다.무역으로 부를 얻자, 명상을 통해 진리를 찾았습니다.히라산에서 천사를 만나고 혼이 빠져버린 남편을 위해 아내 카디자는 삼촌, 와리까 본 나우팔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유사 기독교인 에비온파였던 나우팔은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것이며, 예언자가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무함마드는 메카에 있는 카바신전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나, 신전에서 수입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사람들이 무함마드를 핍박하기 시작합니다.AD 619년, 무함마드의 첫 제자로 무슬림 신자가 되었던 아내가 죽고, 어린 자신을 키워주었던 삼촌도 같은 해 사망합니다. 그래서 이주를 결정하고, AD622년 메디나에서 이슬람을 받아줄 것을 협약을 하고 이주합니다. 이것을 헤지라, 또는 히즈라(이주)라 불렀고, 이슬람교의 달력의 원년이 됩니다.모함마드는 말이 멈춘 곳, 수하일의 과수원 땅을 사서 최초의 사원과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매일 메카를 향해 정해진 5번의 시간에 절하며, "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외쳤습니다.70여명의 이슬람 교도들이 대부분 그를 따라 메디나로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그들과 함께 아라비아를 통일할 생각으로 제정일치의 사회를 만들었습니다.그리고 AD 628년 고향 메카로 돌아가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2년 뒤에는 630년, 1만명의 무슬림과 함께 메카에 무혈입성하고, "알라후 아크바르(알라신은 가장 위대하시다)"를 외치며, 메카의 다른 신상들을 모두 파괴하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원정을 통해 이슬람을 전하다가, 632년 열병으로 사망합니다.이후 칼리파를 선출하고, 이슬람국가들은 9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전성기를 이룹니다.10세기 말에는 투르크족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주류 기독교였던 동로마제국 비잔틴과 전쟁을 치릅니다.비잔틴이 전쟁에 패하자, 서아시아는 이슬람화 되었습니다.서로마제국은 이 시기에 십자군전쟁을 시작했죠.무려 200여년간(1095년부터 1291년까지) 간헐적으로 십자군원정이 계속되었습니다.이런 역사적 경험은 이슬람종교와 기독교종교 사이에 적대적 관계가 형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과격한 이슬람의 모습은 종교갈등이라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이 후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에서 제외된 이슬람 지역은 과학이나 문화변혁을 겪지 않게 됩니다.1974년 키신저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페트로달러체제의 예를 보아도, 이슬람지역은 교육이나 문화, 군사현대화에 있어서 오랫동안 변화를 겪지 않았다고 봐야겠죠.이렇게 변화하지 않은 제정일치사회는 현대화되지 못했기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억울한 경우를 많이 당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제국화된 국가들로부터 피해을 입었기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야되겠죠.
학문 /
철학
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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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미술작품의 가치는 사기에서 시작됩니다.만약 미술작품을 아무도 사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겠죠.미술품을 산다는 것은 이미 그 작품을 감상했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입니다.대부분의 전시된 미술품은 이미 가격이 붙어있는 채로 전시관에 전시됩니다.그 작품을 감상하다가, 그 전시관에 산정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죠.그러나 가격을 상정할 수 없는 작품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팔려고 하지 않거나, 경매에 나왔을 경우, 살 사람이 많다면, 가격은 경매가로 정해지겠지요. 미술작품의 가치평가는 전문감정인에게 의뢰할 수 있습니다.미술품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감정인은 특정한 작품에 대한 가치를 적정가로 평가할 수 있죠.이렇게 형성되어 있는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화가의 이력도 중요하겠죠.그리고 사회분위기도 큰 몫을 차지할 것입니다.그 시대의 상황을 잘 담아내고 가장 잘 표현한 미술작품을,그 시대의 대표적 화가가 그렸다면, 그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미술품 수집가는 큰 대가를 지불하려고 할 것이기때문입니다.반면에 아직 미술계에 이력이 없는 화가의 작품은 물감과 화구의 종류, 캔버스의 크기에 따라 적절한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그러나 NFT는 전혀 새로운 분야이기때문에,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보기에는 이르죠.NFT시장이 어느 정도 평균치를 형성하게 되면, 여기에도 전문감정인이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세상의 모든 NFT들의 가격 책정 데이터를 조합하여 적정가를 산정하게 되겠죠.
학문 /
미술
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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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선 평생 동정이셨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록에 의존한다면, 예수님이라는 분이 2천년 전 쯤에 33세나 34세의 나이에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네요.30세 정도의 나이부터 기록이 남아있기때문에,당시의 결혼적령기로 본다면, 이미 결혼을 했을 수 있는 나이이지만,30세 이전의 기록이 없으니, 결혼을 했는 지, 하지 않았는 지는 모르겠네요.그러나 기록된 3년 정도의 기간에 결혼을 할 만한 여유(?)는 없어 보이네요.다빈치코드는 예수라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살았다고 하는 데,이것 역시 기록에는 없는 것이고요.다빈치코드라고 하는 말 자체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작품, 마지막 만찬이라는 작품 속에 막달라마리아를 표현해 놓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기때문에, 다빈치의 명성을 이용한 소설가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네요. 만약 다빈치코드로 막달라마리아를 그려넣었다면, 마지막 만찬에 요한이라는 사람이 빠져있어야하는데,다빈치가 그 당시 예술 작품에 요한을 뺀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어찌 되었건, 다빈치코드는 소설가 댄 브라운을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이 되었습니다.카톨릭과 개신교 등의 반발이 오히려 노이즈마케팅이 되기도 했고요.질문자님이 '예수님이 동정이셨는지, 아니셨는지'라는 문구 자체가 댄 브라운의 의도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이런 표현이 충분히 노이즈마케팅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동정이었던, 아니었던,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죠.그런데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선정적인 표현을 통해 명예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여 나의 유익을 얻으려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글쓰기 방식이라고 여겨집니다.결혼을 하지 않았느냐와 동정이냐는 또 다른 표현이잖아요?질문자님의 질문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게 될 지를 충분히 고려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예수라는 사람은 인류에게 참 사람이라면 이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중요한 가르침을 남긴 분이죠.그 분이 자신의 개인적인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한 것 같지도 않고요.댄 브라운은 예수라는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소설을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소설 다빈치코드는 생각해 보아야할 많은 관점을 제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예수라는 분에 대한 과도한 신성시하는 것이 어떤 역사적 결과를 낳았는지 숙고하게 만들죠.그러나 질문자님의 질문은 다빈치코드를 읽으시거나, 영화를 보시거나 하신 것 같지는 않고(질문만으로 보아서),'예수님께선 평생 동정이셨나요?'라는 제목으로 제가 이렇게 답변을 쓰게 만드셨네요.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예를 들면, "만약 프랑스로 막달라마리아가 망명하여 예수님의 아이를 낳고 길렀으며, 남편 예수와 함께 묻혔다면,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어떻게 보아야할까요?"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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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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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달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활절 토끼는 서양의 무속이라고나 할까요?게르만족의 에오스트레(Eostre)여신은 '봄의 새 생명을 가져오는 태양'을 의미하는 데,이 여신이 죽어가는 새를 토끼로 변신시켜 살려주었고,알을 낳는 토끼가 부활절의 계란과 토끼의 이야기로 전승되는 것 같습니다.에오스트레 여신의 이름은 영어 Easter(부활절)에 잘 남아있죠.독일 루터교에서는 이 토끼가 색칠된 계란을 숨겨놓는다고 전설을 이야기하고,아이들이 숨겨진 예쁘게 색칠된 계란을 찾도록 한다는 군요.에오스트레여신이나, 토끼나 계란 모두 새로운 생명을 의미하고,전설로는 다산을 의미한다고 하네요.풍요와 후손을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있나봐요.
학문 /
역사
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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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씨남정기의 인물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질문자님의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사씨남정기 본문에 보면 두(杜) 부인의 아들 두억이라고 쓰여져 있으니,두억의 아버지 두씨의 아내가 되어 두(杜)부인이라 불린 것이네요.
학문 /
역사
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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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는 왜 천재로 불리우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라틴어 세례명)Wolfgang Amadeus Mozart(독일어)오스트리아 궁정 음악가로 고전음악 작곡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짜르트는 딸, 나넬이 7살일 때, 건반악기를 가르쳤습니다.그런데 3살이던 모짜르트는 어깨 너머로 보고, 건반악기를 쳤죠 ^^아버지는 당연히 모짜르트가 신동임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직접 가르쳤다고 하네요.모짜르트는 4살 때, 이미 많은 곡을 익혔고,5살 때는 이미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뭐 이런 신동이?당연히 사람들은 믿을 수 없었죠.어린 모짜르트를 직접 시험해 본 사람들은 어린 모짜르트의 뛰어난 능력에 감탄했다고 합니다.아버지는 모짜르트를 6살 때, 뮌헨으로 연주를 보냈다고 하는 데, 이거 믿어지십니까?그러니 희대의 음악 천재라고 부를 만 하죠.독일은 물론이고, 파리, 런던을 다니며 연주하고 음악가와 교류하고, 작곡을 배우기도 했는데요.몇 살때 일일까요?1956년 1월 27일에 태어나 1964년에 우리가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바흐를 만나 작곡에 대해 배웠다고 하니,모짜르트의 나이, 8세!!!모짜르트에게 하이든은 음악적 친구이자 스승이었는데, 1782부터 3년에 걸쳐 작곡한 6곡의 현악 4중주곡을 하이든에게 헌정하여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고 합니다. 26세에 결혼28세에 그를 찾아온 베토벤(당시 14세)에게 1달간 가르쳐주었다고 하는 전기의 내용이 있으나, 정설은 아니라고 하네요.또 하나의 전설은, 모짜르트는 초안을 쓰고, 그것을 수정하는 방식이 아닌, 일필휘지로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아내가 그의 초안이나 수정본을 모두 없애버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희대의> 이런 표현에는 부정적 느낌이 들어있죠.모짜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갔으며,신동이 그럴 가능성이 많겠지만, 자유분방했고, 사치도 했고, 방탕했다고도 할 수 있고, 뭐 그렇습니다.18세기 사람이기때문에 아내 콘스탄체가 다른 남자와 재혼한 후에 쓴 모짜르트의 전기가 있지만, 그렇게 정확한 모짜르트의 삶을 증명할 방식은 찾기 어렵습니다.보석 박힌 옷을 입는 걸 좋아한다든지, 도박도 했고 뭐 그런 삶이었습니다.모짜르트의 음악활동은 그 분량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합니다.교향곡, 협주곡, 콘체르탄테, 피아노 솔로, 바이올린, 현악사중주, 현악오중주, 실내악곡, 세레나데, 종교음악 미사곡, 성악곡, 오페라 등등모짜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https://youtu.be/xNwkBnExN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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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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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Guitar) 전문가님 질문있어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재미있는 질문이네요.통기타, 클래식기타, 어쿠스틱기타만 아니라 전자기타 중에는 일렉, 베이스기타이제는 스마트폰의 앱에서 기타를 실현한 것도 있죠^^통기타와 클래식기타의 차이점통기타는 5줄의 현이 모두 금속줄이고, 통기타는 6줄 현이 모두 나일론 성분같은 재질입니다.금속현이 내는 소리와 나일론 현이 내는 소리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죠.쇠줄 소리와 나일론줄 소리의 차이는 상상이 가시죠?마디의 수도 바디에 연결된 부분까지 14개와 12개로 다르기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음폭도 다르구요.주법도 코드반주법과 음계를 정확히 짚어서 연주하는 방법으로 차이가 있습니다.5줄 통기타를 연주하는 것과 6줄 클래식기타를 연주하는 데 연주법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죠.어쿠스틱기타는 통기타 소리를 전기제품인 스피커로 구현하기위하여 흡음할 수 있는 픽업장치가 된 것을 말합니다.통기타에 픽업이라는 장치를 설치해서 음을 흡수해 스피커에 전달하여 소리를 구현하는 것이죠.전자기타는 통의 울림을 배제하고, 픽업의 역할도 없이 전자기타줄 자체가 소리를 스피커로 전달하기때문에 울림음이 아니라 전자음으로 처음부터 구현됩니다.더 발전하여, 휴대용 기타연습기도 등장했죠.여기에 이제는 휴대폰 앱에서도 기타가 구현됩니다.마치 게임을 하듯이 앱에서 보여지는 현을 터치하면 기타음이 나오죠.통기타와 클래식기타는 전혀 다른 기타이기때문에 현을 바꾸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구요.첫입문자시라면, 배우기 쉬운 기타를 찾는 것보다는 가까운 기타학원을 찾으시기를 권해 드립니다.기타는 혼자 유튜브로 배우실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기초가 잡히지 않습니다.무슨 악기든 초기에는 기초를 튼튼히 해 놓아야합니다.그렇지 않고 손에 익히시면, 습관이 배이기때문에, 나중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1달만 딱 끊어서 강사가 시키는 대로 해 보시고, 적성에 맞다면, 3개월은 기타학원을 다니시기를 권해드립니다.기타는 강사에게 빌리시든지, 추천하는 아주 싼, 10만원 이하의 연습용을 구입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기타연습은 왼손가락들이 모두 물집이 생기고, 굳은 살이 박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통과하게 됩니다.학원에 학원비를 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되시겠지만, 학원비가 고통스러운 초기 연습기간을 버티게 해 줄 것입니다^^훌륭한 기타 연주가로 멋진 연주를 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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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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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의 NFT화하면 어떤 색다름이 있는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술가는 가난했습니다.이유가 무엇일까요?예술가의 작품성을 인정받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걸리기때문입니다.특히 예술가가 죽기 전에는 그의 작품이 계속 생산될 것이기때문에 가치상승이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들이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힘들었던 경우가 많죠.물론 살아있는 동안, 가치를 인정받았던 예술가도 있기는 합니다.예술작품의 가치는 지구상에 NFT가 존재하기 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것 같네요.왜냐하면, NFT는 예술작품의 창작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때문입니다.NFT 이전의 가난한 예술가는 NFT의 창작자 인센티브(NFT가 거래되는 매 거래 순간마다, 차액의 10%가 원작자에게 지급되도록 스마트계약되어 있습니다.)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자신의 작품을 싼 가격에 팔아야했습니다.그가 굶어 죽었거나 삶을 비관하여 자살했거나, 어찌되었든, 죽어야만 그의 창작물은 가치가 상승했습니다. 그렇다고 유족에게 상승가치의 일부가 제공되었을까요?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지적재산권, 저작권, 창작권이 전혀 없었죠.그러나 NFT는 스마트계약 속에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을 거래차액의 10%라는 인센티브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작자는 자신의 예술품을 NFT로 팔게 되면, 영원히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이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NFT 이전에는 예술품을 소장한 사람이 차액을 모두 챙겼습니다.그러나 NFT 이후에는 창작자가 매번 거래될 때마다, 무한한 NFT창작자인센티브를 벌어들이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위대한 작품을 NFT로 변경한 후에, 그 값비싼 실물 작품을 소각해 버려도 전혀 손해보지 않는 것입니다.실물 작품을 소각하는 것이 그 실물 예술품의 NFT화한 작품이 더 차액을 많이 발생시키며 더 잦은 거래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때문입니다.차액이 클 수록, 잦은 거래가 발생할 수록, 창작자는 NFT원작자인센티브를 더 많이 벌어들이니까요.그래서 화랑에서 전시하는 실물 예술품과 달리, NFT거래소에서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삼성전자는 새로운 플랫폼이 적용된 Smart TV를 선보였습니다. NFT작품을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사서, 즉시 자신의 거실 벽, 스마트TV에 전시할 수 있습니다.당연히 플랫폼에서 거래요청이 오면, 리모컨으로 그 작품을 팔아버릴 수 있겠죠.그 예술품의 원작자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의 계정을 유족에게 상속하고, 후손들은 영원히 NFT작품의 새로운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차액의 10%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어떻습니까?지금 당장, NFT작품 하나 만들어서, OpenSea에 올리고 싶지 않나요?
학문 /
미술
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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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됐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어는 대영제국시절, 영국 제국주의의 희생이었던 전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이 침략자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확산되었다고 봐야겠죠.English는 England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앵글로프리지아어와 저지 게르만어가 섞이면서, 서게르만어군에 속합니다.자음 21개와 모음 5개로 아주 단순하며, 주변 언어들의 단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어휘를 늘려갔습니다.5세기 앵글로색슨족이 섬나라 영국에 정착을 하게되고, 이어 바이킹이 침입하여 고대 노르드어가 섞였습니다.고대 언어가 중세 언어로 발전하는 동안, 12세기에 AEnglisc, Engle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게 되는데, 중세의 종교적 영향으로,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가 모두 수용되면서, English라는 형용사형 명사가 됩니다. Engle+ish인 셈이죠.중세를 지나면서, 섬나라인 영국은 해양세력을 확장하면서, 주변 섬나라들과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게 되고, 이런 해양진출 경험은 영국의 문학적 표현을 풍부하게 만듭니다.영국 문학가라고 하면 셰익스피어가 떠오르겠지요?영국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식민지를 바꾸지 않겠다는 둥, 제국주의자의 오만함을 염치도 없이 드러내게 되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들이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가졌는 지를 알게 합니다.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연극으로 공연되는 희곡이었으며, 문학으로서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근거한 창작이 이루어집니다.16세기의 셰익스피어가 영어라는 언어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놀라울 따름입니다.지금도 공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수 많은 평론에서 셰익스피어의 창작물은 절대 비교대상으로 존재하죠.17세기의 명예혁명, 18세기의 산업혁명, 19세기 대영제국의 식민지 개척은,마치 알렉산더대왕이 그리스문화를 전세계에 심기 위한 사명감으로 세계를 정복했듯이,대영제국은 식민지들마다 영국화, 영어 사용을 요구합니다.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모국어보다 영어를 국가의 공용어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요.여기에 영국인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기때문에, 미국 역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되고,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모든 도스 명령어와 웹 운영어가 영어로 만들어졌죠.그러나 사실, 미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도 전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전세계 각국은 다시 자민족의 언어를 제2공용어에서 제1국가 공용어로 회복시키고 있기도 합니다.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영향이라고 생각됩니다.우리나라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대화하지 않고, 통역을 세워서 대화를 하는 것은 자국 민족주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영어가 필수라고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전에서 자국에 패배한 패전국, 미국의 언어를 아직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언어가 가진 힘은 그 속에 생활풍습, 문화, 사상, 철학이 그대로 표현되기때문에,문화식민지화되지 않으려면 자국 민족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세계 공용어를 제2공용어로 사용할 필요가 있겠죠.한국어가 7번째 유엔공식언어가 되길 기대합니다.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로 6개의 UN공식언어가 존재합니다.7번째 한국어가 되면 좋겠죠?
학문 /
역사
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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