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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듯한물소67
깍듯한물소67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정말 현재모습을 보고 있는건가요?

사물을 볼때 사람마다 본인에 경험 습관 환경에 따라 다를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시로 하늘 바다 사과 글을볼때 같은것을 상상한다고 하지만 글에대한 느낌을 같을수 가없으니 제대로 전달될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좀더생각을 하면 현재 내가바라 보는 세상이 나의색깔 더해져서 외곡된 세상이라는 생각 듭니다 같은것을 바라보지만 다른생각을 하다면 누가 바라보는 세상이 본질현재인거죠? 부처님 신 바라보는 세상 본질인건가요? 왜 다들내가보는 세상이 다들 똑같다고 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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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광마을닷컴 대표
    서광마을닷컴 대표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곡은 인간 신체의 한계때문에 항상 존재합니다.

    시각은 당연히 시력과 시야의 한계가 있기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을 정확하게 보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만약 우리가 보고 있는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아주 자세히 관찰한다면, 눈으로 보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겠죠.

    자주 언급되는 몽골인의 시력도 한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어떤 사람은 멀리서 다가오는 물체가 사람인지, 또는 그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볼 수도 있고, 구분할 수 없기도 합니다.

    또한 중력현상도 시각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지구 밖에서 보면,

    위성에서 바라본 한반도 및 지구 야경 (사진)

    지구가 둥글어서 지표면은 지구중심을 향해 우리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중력현상으로 고정된 우리의 신체는 지구중심으로부터 메달려있는 형태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서 지구를 바라보기 전에,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죠.

    그만큼 우리의 시각은 중력현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각의 왜곡도 아주 심하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청음역대는 약 20 Hz~20,000 Hz, 한계 세기는 130 dB까지인데요,

    헤르츠는 진동을 표현한 것이고, 데시벨은 크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청각이 발달해 미세한 바람소리도 듣지만, 어떤 사람은 특정한 헤르츠의 진동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오감이 모두 왜곡될 수 있는 데,

    정신적인 상태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혹은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라면 각자의 오감이 모두 다르게 인식되겠지요.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는 것이 정말 현재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되려면,

    나의 오감보다는 나의 정신상태가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왜곡된다면, 굳이 왜곡이라고 표현할 필요 없이, 나의 현재 정신상태나 오감능력 안에서 그것이 본질이다고 하면 되겠죠.

    물론 본질을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은 심각한 왜곡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바로 타인의 본질을 부정할 가능성이지요.

    그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서, 곧바로 타인의 본질에 대해 긍정, 이해,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도 나타납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본질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우울한 감정을 제거해, 수용능력, 이해능력을 더 증가시켜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질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나를 더 사회성을 높여주느냐가 아닐까요?

    질문자님이 말씀하셨듯이, "왜 다들내가보는 세상이 다들 똑같다고 하는거죠?"라는 질문을 읽는 시각에도 많은 왜곡이 가능합니다.

    이 문장은 띄어쓰기가 잘못되었다는 걸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질문자님이 알고 싶어하는 그 어떤 본질에 아무 관심도 생기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독자가 국문학자라면, 띄어쓰기 하나에, 또는 다들이 한 문장 안에서 중복된 것때문에 이 문장이 전체 질문의 문맥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라면, '왜'로 시작하는 닫힌 질문때문에, 심각한 왜곡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다들'이라는 단어가 중복된 것을 보고, 질문자가 주변으로부터 사회적 수용을 받지 못하고 있는건가?라는 의심을 하기시작하고, 질문자님이 질문하신 본질파악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질문자님의 질문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띄어쓰기, 단어의 중복은 오타나 오류가 아니라, 질문자님이 무엇을 정말 알고 싶어하는 지, 그 마음 속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므로, 수정하거나 교정할 필요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르지요.

    질문자님이 부처님을 언급하셨으니, 가족이나 주변분들과 종교적 갈등이 있는가?도 왜곡일지, 아니면 조금더 질문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인 지 모르겠지만, 파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겠지요?

    이처럼 글, 사진, 영상, 소리 그 어떤 것이든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게시자의 본질에서 벗어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은 사실 없는 셈이 치면 되죠.

    그러나 본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표면이 사라지고 허공에 붕 떠 버린 느낌이기때문에, 본질이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류가 선택한 것이 "본질이 있다"의 편을 드는 것이죠.

    질문자님의 마지막 질문에서 왜 각자의 삶의 방식이나 의견을 존중해 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느냐?에 대한 대답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만약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동일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협박(?)하듯 논쟁한다면, 이는 그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죠.

    다 똑같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편하고,

    만약 내가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이 다르거나,

    내가 보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지표면 없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극한의 공포체험이 될 것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지구 반대편을 여행해 보면, 우측과 좌측의 개념이 변하고, 태양이 반대로 돌고, 시차를 몸이 적응하지 못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타인을 왜곡으로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하지요.

    그러나 한반도에만 살았고, 지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 그것도 자신의 일상을 너무나 치열하게 사느나, 여유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해를 해 주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악한 의도로 그렇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쩌면 질문자님을 너무 사랑하기때문에, 자신들이 안정적이고 성공적으로 일상을 잘 살아왔던 그 본질이라는 왜곡을 받아들이면, 너무 편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성공할 텐데, "왜 그리 복잡하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느냐"로 들으실 수 있는 귀가 있으시다면,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니 용서해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