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가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22. 05. 25. 10:38

질문 그대로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중에

구교(가톨릭)과 신교(개신교) 가 나뉘게 된 이유가 궁금하더라구요

또한 개신교 내에서 나뉘어지는 파가 왜이리 많은지도 궁금합니다

진정한 뿌리라 할 수 있는 개신교는 어떠한 곳이 기준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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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교는 현실세계를 사실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 이상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기독교의 기원은 나사렛 예수로부터 시작했다고 보는데요.

로마제국이 이미 제국확장을 끝내고, 전쟁이 멈춘 시대였죠.

제국에 충성하는 길도 있었겠지만, 제국의 약해진 부분을 파고드는 사상도 출현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신은 전쟁에서 승리한 인간이었죠.

그러나 제국확장이 끝나고 더 이상 전쟁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자,

신은 세습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습되는 신들(로마 황제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전쟁의 영웅이라는 칭호가 아니라,

제국을 법과 제도, 정치로 통치해야 했습니다.

세습이 완벽하게 제도화되자, 세습 신(황제)은 타락(?)합니다.

법과 제도, 정치의 수단을 사유화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억압하죠.

이 억압에 동조하는 이들은 팍스로마나(로마에 충성할 때에만 평화)를 강화시킵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이기때문에, 곳곳에서 저항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우월한 신이고, 패배한 쪽은 낮은 계급의 신이 되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나사렛이라는 정치범 유배지에 예수라는 젊은 청년이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단어를 말하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섬김"

"겸손"

전시에는 이런 단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런 단어는 전쟁패배자가 혼자 자신을 위로하면서 읊조리는 자조 섞인 단어이겠죠.

그러나 전쟁이 멈춘 사회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는데요.

나사렛의 예수는 섬김과 겸손이라는 단어로 예루살렘으로 진출합니다.

이 새로운 사상은 순식간에 확산되죠.

당시의 로마제국에 충성하던 사회 지배세력은 청년 예수의 말에 환호하는 거대한 세력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를 처형하죠.

민란, 소요가 일어나면 로마제국이 파견한 총독과 유대지역의 분봉왕으로 로마로부터 승인받은 헤롯대왕도 정치적 손실을 염려하여 예루살렘공의회(국회)를 지지하고 처형 승인을 한 것이죠.

그런데 나사렛 예수였던 이 청년은 유월절에 전세계 16개국에서 성지순례를 온 백만명의 순례객들이 보는 곳,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 당하면서 유대지역만 아니라, 로마제국의 각 지역에 알려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섬김과 겸손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로마제국의 각 도시들마다 새로운 사상이 퍼져나갑니다.

공동체들이 생겨나, 자신이 가진 것들을 모두 내어놓고 공동소유하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하게 섬기는 모습을 현실사회에 실험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300년이 흐른 후, 전쟁 영웅으로서의 신을 포기하고, 섬김과 겸손의 신을 채택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의 황제와 비슷한 개념의 교황이 생겨나게 되고,

황제는 전쟁 영웅으로 교황은 섬김과 겸손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게 되죠.

그렇게 중세시대가 흘러가고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상인계급이 지주와 종교지도자들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죠.

중세시대를 마감하는 중산층이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로마제국 이전의 그리스문화인 헬레니즘의 복고이고, 이성주의였습니다.

생산과 무역, 상업과 예술은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확산시켰고,

종교개혁이라고 불리지만,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교황을 중심한 종교에 대한 혁신이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14세기부터 이미 독일의 농민들은 노예취급받는 것을 저항하고 있었는데, 1524년 농민혁명을 일으킵니다.

루터의 사상이 혁명을 일으키게 만든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도시의 빈민들도 농민혁명에 동참합니다.

교황이 중세시대를 하나의 종교로 유지하려고 했지만,

섬김과 겸손과 어울리지 않는 교황체제는 여러 다른 공동체들(각자의 교리나 신앙방식을 지키는)이 자부심을 갖게 했죠.

이들은 북아프리카, 아라비아로 이주합니다.

구교와 신교의 구분은 르네상스시대의 종교개혁이라 이름붙여진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고요.

구교와 신교 내의 파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현실세계가 아닌 이상적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이기때문에,

어떤 사람이 "이것이 더 섬김과 겸손을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이에 동조하는 그룹이 생겨나고, 이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신앙방식을 우선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게지요?

"이것이 나사렛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대안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을 지키며 예수님과 결혼했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극도로 음식을 자제할 것이고,

어떤 이는 매일 기도시간을 정할 것이고,

어떤 이는 황홀경에 빠지기위해 주문을 외우겠지요.

질문하신 마지막 내용은 어떤 것이 진정한 뿌리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은 "섬김과 겸손"이겠지요.

이것을 실천하기위해서 구교나 신교나 각 파들이나 모두 자신들이 더 예수님이 가르쳤던 섬김과 겸손을 자 수행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진정한 뿌리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대안일 뿐,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죠.

2022. 05. 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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