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서자와 얼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이라고 다 과거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명종대인 1550년, 모친쪽이 양인인 서자 출신이면서 그 후손이 손자대까지 내려오면 문과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서자 출신이라는 것은 답안지에 명시해야 했다고 했지요. 18세기 즈음 신분제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정조 1년에 서얼도 과거 문과 응시가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무과나 잡과만 칠 수 있었다. 즉 서자나 얼자는 과거를 볼수 있었으나 차별은 존재 하였고 그래서 중인 들이 많이 보는 잡과를 통해서 관직을 할 수도 있었는데 보통 오늘날의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의 돈 많이 버는 직업이 조선 시대에는 중인들 혹은 서얼들의 일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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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국가에도 순장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장풍습은 죽은 뒤에도 피장자 (被葬者)의 평상시 생활이 재현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왕후 또는 귀족 등이 사망했을 경우에 첩 (妾)·신하·종자 (從者) 등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는 우리 날의 부여에도 있었고 고대 삼국 사회에도 존재 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나라 외에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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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2차대전에서 서방이 이길수 있는 게임체인져는 뭐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을 무너 뜨릴 수 있었던 가장 큰 게임 체인저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입니다. 그리고 독일을 상대로 가장 큰 게임 체인저로 사용 된 것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였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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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무양반관리가 주로 과거를 통해 선발된 이유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 사회도 마찬 가지 입니다. 공무원을 채용 하는데 그 사람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는 국가 공무원 시험 5,6,9급등 공개 채용 시험이 있듯이 조선 시대에도 과거 시험 만큼 공정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식년시는 3년에 한번 기타 특별시험은 수시로 봐서 관리를 선발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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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말년에 청나라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2년 임오군란이 터지자 명성 왕후등은 청나라에 진압군 파견을 요청했고 병자호란 후 약 250년 만에 처음으로 2000명의 청군이 서울에 진주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민씨일가에 밀려나 있던 대원군이 군란의 원인이라고 보고, 그를 청으로 납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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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어떤 도시나 지역이 예술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가장 먼저 유럽의 예술 도시는 로마입니다. 근대시대에 로마는 유럽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여행의 목적지로 가장 선호하는 곳이었는데 당시에도 미술이나 음악, 건축에서 선진적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런던 인데 ,런던은 카이사르의 원정 때부터 세워진 고대 도시로 런던에는 거대한 템스강이 흐르고, 여러 번의 홍수와 화재로 도시가 소실되었다가 건축되기를 반복되었습니다. 유럽의 예술의 또 다른 중심지가 있다면 단연 프랑스 파리입니다. 파리의 문화와 예술이 1840년의 혁명을 통해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파리의 개선문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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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누구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유명 화가 작품은 특히 모네가 많이 그렸는데 모네의 < 트루빌의 바닷가에서> < 생트마리드라메르 바다풍경> 등 모네는 유독 바다를 배경으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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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시는 왜 광해군을 배신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의 사정을 누구보다더 잘 알던 김개시는 반정의 조짐을 가장 먼저 알았는데, 반정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광해군을 배신하고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고 결탁하였고 그래서 광해군을 배신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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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이 대식가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대식가 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침과 저녁 이렇게 2끼를 주로 먹었고 점심 이라는 단어는 조선 후기에나 생긴 말 입니다. 즉, 점심은 그냥 간식 정도로 먹으니 아침과 저녁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지요. 지금 처럼 야식이나 간식거리가 풍부 하지 못한 시절이나 아무래도 밥심이 모든 것을 해결 했기에 더 많이 먹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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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종사관이라는 직책은 어떤 직책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6품으로 이름에 '따를 종이 들어간 걸 보면 부관 참모업무에 가까운 일을 했던 양반 중 무반에 해당되며 대부분 무과에 처음 급제한 사람들 위주로 이 관직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으로 따지면 경찰 청장의 부관인 경위 군대로 따지면 중위 혹은 대위 정도의 직급이라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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