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피추는 당시 어떻게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음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고 합니다. 마추픽추의 농부들은 인위적으로 산을 깎아 만든 인공 테라스에서 계단식 농법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 계단식 농법은 경사가 심해 조금만 비가 와도 토양이 다 쓸려 내려가 버리는 안데스 지방에서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의 농법이었고, 실제로 물을 가둠과 동시에 비옥한 토양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 예상외로 생산량이 많았고 테라스를 지을 때에는 가장 아래에 거대한 암석들을 쌓아 토대를 만들었고, 위로 쌓아나갈수록 크기가 작은 돌들을 올렸으며 맨 위에는 모래와 자갈을 얹고 그 위에 산꼭대기에서 가져온 흙들을 덮었는데 다만 잉카인들의 기술력이 완벽하지 못해 계단식 밭들에서 산사태가 자주 일어나 농작물과 함께 밭마저 한꺼번에 쓸려나가는 일이 잦았고 산비탈이 아예 무너져내려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복구 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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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장관이 말하는 날파리선동에 대해 어원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날파리 선동을 정치권의 한 이유가 터 졌을 때 그것을 보여드는 정치인들을 비유한 것으로 날파리 등으로 표한 할 수 있겠지요. 즉 날파리는 더러운 것이 있거나 오물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달려 드는 존재 이기에 정치인들도 남의 약점이 생기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달려 들어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미로 쓴 것 같습니다. 괴거 에도 이러한 비슷한 용어로 구더기나 날파리, 똥파리 등으로 비유적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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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은 어떻게 병법에도 통달했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성룡의 나이 51세가 되던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는데 그는 왕의 특명으로 병조판서를 겸임하면서 군기를 관장하게 되었고 영의정에 올랐으나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벼슬에 올라 풍원부원군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호서, 호남, 영남을 관장하는 삼도 도체찰사라는 직책을 맡아 전시 상황의 군사 업무를 관장했다고 합니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문신이라도 정쟁이나 병법에도 능통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그 전권을 왕으로부터 받아 지휘를 하기도 했습니다. 류성룡도 그러한 분중의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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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九牛一毛)'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석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우일모(九牛一毛)'는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아홉 마리 소에 털 한 가닥'이라는 뜻입니다.소가 아 홉마리나 있는데 그 중에 털끝 하나는 모래 사장의 모래 한알과 같은 미미한 수량 일 것 입니다. 그래서 이 관용구는 대단히 많은 것 중 아주 적은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며, 그 기원은 사마천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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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야구 중 규칙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게임 도중에 심판의 진행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게임 이 끝난 후에 상벌 위원회를 열어 심판의 판정이나 기타 불법 판정 여부에 대한 조사를 할 수는 있을 것 입니다. 야구 룰을 어긴 심판에 대해서는 KBO에서 엄격한 제제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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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공도에 대한 최초의 모사본에 대한 질문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직공도(梁職貢圖)는 6세기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에 온 외국의 사신들과 그 나라의 풍속 등을 양 원제가 간략히 적은 그림 입니다. 현존하는 양직 공도는 중국 북경 중국역사박물관에 있는 모사본이며 양직공도의 원본은 사라져서 찾아볼 수 없고 후대에 만든 모방 사본이 수 개 존재하는데, 후에 발견된 당염립본왕회도(唐閻立本王會圖) 또한 양직공도의 모사본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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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관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은 며느리 명성황후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사실 이였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배후에 흥선대원군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아들인 고종은 이러한 아버지와 절연을 했다고도 하지만 흥선 대원군이 직접적으로 명성 왕후의 시해 사건에 배후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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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잘못 전해진 우리의 이야기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와전 한 우리 민족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냄비와 같다라고 비유한 것이나 혹은 우리 한반도의 모양이 호랑이가 표효 하는 것이 아니라 토끼가 움츠리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억측 이라 던가 하는 것들은 우리 민족 정신을 말살 하려는 일본의 의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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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는 어떻게 강요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일본에만 신사를 세운게 아니라 우리 나라인 조선에 신사를 세운 뒤 조선인에게 참배하도록 강제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일제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부터 신사를 들여와 신사참배 의식을 행할 것을 장려했으나, 기독교계 학교에 대해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기독교 교리와 관련하여 신사 참배 의식을 행하지 않아도 용인해 오다가 1930년 후반에 중일 전쟁을 전후하여 기독교계 학교는 물론 교회의 성직자들에게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더욱 더 많은 문제를 일으 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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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 시대의 사람들의 평균 키는 어느 정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평균 키는 남자는 162.2㎝, 여성은 156.97㎝였다라고 합니다. 남성은 삼국시대 (가야)인보다 작고, 여성은 컸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남성의 경우 161~166㎝로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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