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백제시대 궁전은 남아 있지 않은걸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왕궁 유적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궁터가 남아 있어서 그 예전의 모습을 짐작 하게 만들 뿐 입니다. 공주시에 2곳(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부여군과 익산시에 그 터가 남아 있을 뿐 입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판옥선의 건조 기간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옥선은 그보다 튼튼한 재질인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재질의 단단함에 차이가 나는 두 배는 판자를 연결하는 방법도 달랐죠. 판옥선은 2층으로 이뤄진 평저선입니다. 1층에는 노를 젓는 병사들이 위치했고, 2층에는 실질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이 위치했습니다. 판옥선을 만드는데 걸리는 정확한 기간은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소나무를 잘라서 , 그것을 물을 먹이고 못으로 연결 해서 못질을 하고 상부와 하부 갑판을 이어서 제작을 하기에 일반 배 보다 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신라에서는 닭을 신성시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의 건국 신화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닭에 대한 신화가 많은 이유는 닭을 일종의 미래를 예견 해주는 메신저 로서의 여긴것 같습니다. 삼국사기와 제왕운기 등에 나오는 건국 신화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 나정 우울가에서 흰말과 닭이 등장 합니다. 하지만 닭을 신성시 여겼다기 보다는 메신저로서 본것이며 이렇듯 신라에서는 닭이 많이 등장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세계 종교 중에 절대자나 신과같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종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많은 종교 중에 신을 섬기지 않는 종교는 없습니다. 심지어 유교는 생활 종교라서 종교 라고 보기도 애매 하지만 유교에서도 돌아가신 조상님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데 촛점을 맞추었으니까요. 종교 라는 것 자체가 절대자 혹은 신을 의지하고 따른 다는 전제 하에 믿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학문 /
철학
23.08.14
0
0
과거에도 지진의 역사적 기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다양한 역사문헌에 2161개의 지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중 62% 정도는 경도 1-3정도의 약진으로 기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고려시대의 사원경제는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의 사원과 승려는 사실상의 대지주인 동시에 귀족적 신분으로 발전하여 많은 토지와 노비들을 소유해서 사원경제의 기반을 이룩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원은 술·소금·목축·파·마늘·꿀·기름 등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상행위, 수공업, 고리대 등을 통해 경제력을 증대시켰다고 합니다. 사원의 경우에는 왕실의 적극적 비호아래 이렇게 적극적인 상업 활동이 가능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미술 시장에서 예술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술품의 경제적 가치가 정해 지는 기준은 너무나 다양합니다. 미술품의 질, 크기, 매체, 주제, 진위 여부, 희귀성, 보존상태, 역사적 중요성, 출처, 유행이 그것입니다. 이외에도 작가의 경력, 수성 횟수및 작가의 생존 여부 등도 작품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8.14
0
0
몬드리안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작품의도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몬드리안이 이 작품에서 표현 하곶 했던 것은 스트리트와 에비뉴는 각각 그림을 구성하는 노란색 가로선과 세로선이고, 스퀘어는 그림 곳곳에 네 개의 색을 통해 표현되어 있는 블록보다 큰, 다양한 크기의 사각형들 입니다. 이 블록, 스트리트, 에비뉴, 스퀘어를 포함하는 완벽한 격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구성으로부터 감상자는 뉴욕의 역동성과 부기-우기의 리듬을 연상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러한 나누어진 격자와 사각형의 틀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지각이, 역동성과 리듬에 대한 지각을 표현 하곶 했던 것 같습니다.
학문 /
문학
23.08.14
0
0
혜종의 묘는 불천지주인데 왜 옮긴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타깝게도 자료의 부족 때문에 왕건의 아들 혜종대의 국내 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기록된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혜종의 신주(神主)를 순릉(順陵)으로 옮기고, 예종(睿宗)을 태묘에 합사하였다. 사람들이 의논하기를, ‘혜종은 민(民)에게 공덕(功德)이 있으므로 마땅히 불천지주(不遷之主)로 삼아야 하는데, 이를 옮긴 것은 예(禮)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국왕 인종(仁宗)이 자신의 아버지인 예종(睿宗)을 종묘에 모시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묘사하는 기록입니다. 당시 사람들도 혜종의 신주를 옮기는 일에 대해서 의아 해 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14
0
0
신라 역사에 대해서 질문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는 물론 당나라를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쟁에 끌여 드려 삼국 통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외세를 끌어 들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봐면 아마도 신라는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 할 수 없었다는 판단을 한 것이고 그 떄 당시에는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며 최선의 방법 일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이야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아마도 중국과 북한의 땅도 우리의 영토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라고 할 수도 있으나 역사에서는 만일이라는 가설은 없습니다. 오직 결과만 존재 할 뿐 입니다. 만일 고구려 위주로 통일이 되었다면 그 이후에 중국과 더 많은 전쟁을 벌렸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오랑캐의 침입을 당했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학문 /
역사
23.08.14
0
0
1135
1136
1137
1138
1139
1140
1141
1142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