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작품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1665~1666년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이런 바로크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전통 의상을 입힌 소녀(트로니:가상의 인물을 그린 그림)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포착했습니다. 슬픈 눈동자와 입, 반짝이는 진주 귀걸이, 머리에 두른 터번을 조화롭게 구성해 미감을 극대화했습니다. 어두운 배경에서 한 줄기 빛을 받고 있는 소녀의 시선은 마치 관람객을 향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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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은 실존 인물이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29년에 사망 한것 까지 나오는 삼국지 정사에도 나오는 실존 인물 입니다. 공손찬의 부하였던 조운은 공손찬에게 몸을 의탁한 유비를 보고 그의 부하가 되는데 유비가 장판에서 조조의 공격으로 탈출할 때 홀로 적진을 뚫고 가서 어린 유선을 구출해 온 일화가 매우 유명합니다. 후에 유비가 황제가 된 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등과 함께 오호 대장군이 된다고 하니다. 관우가 손권과 위나라의 협공으로 사망하자 유비는 오나라 정벌에 나서는데, 이때 조운이 나서 위나라를 먼저 치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이라고 간언하였다 전해집니다. 하지만 유비는 결국 조운의 말을 듣지 않았고 정벌을 강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장비마저 목숨을 잃고 마는데 유선이 황제가 된 후에 정남장군이 되었으며 고령의 나이에도 제갈량과 함께 북벌에 나섰고 229년 노환으로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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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왜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은 1차 대전 당시 많은 전쟁 배상금 문제, 히틀러의 나찌당의 등장, 경제 공황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당시 독일은 1차 대전으로 전쟁 배상금을 계속 해서 물고 있었고 국토의 일부도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에 내줘야 했으므로 많은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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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기존 왕족들은 지위를 계속 유지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의 대부분의 귀족들은 신라에 복속 될때 진골 신분으로 흡수 됩니다. 신라의 왕은 성골 출신 이여야 만 왕이 가능 했으나 나중에는 진골 출신인 왕도 나왔는데 바로 김유신이 가야의 진골 출시의 대표적인 신라의 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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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형이 있는데도 왕위에 어떻게 올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이 왕이 된것은 할머니인 정희왕후와 훙구파 대신들의 추대에 의한 것으로, 서열을 뛰어넘은 즉위과정으로 인해 왕이 된후 정치적인 입지가 매우 좁았다고 합니다. 정희왕후의 섭정 7년동안 저자세로 일관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1476년 친정이 시작되자 태종과 세조에 의해 숙청된 사림파를 중용한후 원상제를 폐지하며 훈구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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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양에서도 점성학으로 활발히 상담 연구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 점성술(西洋 占星術, Western astrology)는 수세기 동안 서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점성술 체계인데 서양 점성술은 역사적으로 헬레니즘 점성술과 궁극적으로는 바빌로니아 점성술의 연속으로써, 프톨레마이오스의 《테트라비블로스》에 근거합니다. 타로 카드는 1370년대~1380년대에 처음 그 존재가 기록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역사상의 등장은 15세기 전반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최초인데 당시는 화가가 직접 그려 희귀하고 가격도 비싸 귀족 등 부유층의 놀이였으나 16세기 이후 목판화로 제작되면서 유럽 전반으로 널리 보급되었다고 합니다. 18세기 무렵부터 현재 사용되는 타로의 개수와 디자인이 나왔는데 주 생산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세유 타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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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로 양복을 입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1년 일본에서 신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박정양. 어운종. 홍영식등 으로 신사유람단을 조직하여 일본에 파견했는데 현재까지 신사유람단이 양복을 입고 귀국한 것이 조선인 가운데 최초의 양복 입은 신사가 바로 홍영식 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1896년 1월 고종이<문무관복전개정령> 을 선포하고 고종도 종전의 의관을 벗고 양복으로 바꾸었고 전근대의 상징이던 한복과 상투는 단발과 양복으로 변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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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장 인기있는 밥 반찬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최고의 음식은 두부 라고 합니다. 양반들의 식탁에는 기본 밥과 국, 육류, 생선류, 탕, 찌개, 전, 구이, 나물류, 김치류 등이 다채롭게 차려졌는데, 하인들이 다섯 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동트기 전 이른 새벽부터 깜깜한 밤에 이르기까지 꼬박 수고를 쏟아야 했다고 합니다.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겼던 최고의 별미는‘두부’였는데 절에서는 스님들이 만든 두부 먹는 모임인 ‘연포회’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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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인물인 홍길동은 의적인가요, 도적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제의 홍길동에 관해서는 그가 의적인였다 혹은 역적이였다라고 정확하게 기록된 바는 없었습니다. 다만 연산군 때의 도적이고 그로 인해서 조정에서는 많은 골치를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세를 걷어 들이는 것도 홍길동 때문에 더 어려웠다고 하는 것과 즈가 체포 되었을 때 삼정승이 기뻐 했다고 한것으로 보아 그가 상당히 조선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것으로는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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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까지 데릴사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데릴 사위제는 고구려의 서옥제와도 비슷한데 조선 시대에도 행해 지던 관습이였습니다 .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거의 없어지게 된 혼인 관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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