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속에서 법의 존재의의를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동 생활에서 시회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흔히 말하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인간은 지구 위에 존재를 가지기 시작한 태고 시대부터 본능적인 자기 보전과 자기 발전의 수단으로 한 곳에 모여서 집단을 이루며 살아왔고 사회화 되어 있는 곳에 반드시 법이 있습니다. 사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 중에는 질서를 어지럽히고 안녕과 평화를 파괴하는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제재할 필요가 있게 되며 또 인류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위적으로 질서 유지의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반사회적 행위를 막고 사회 질서 유지의 방법을 강구하여 사회로 하여금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을 지니게 하는 규범에는 종교, 규범, 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아주 옛날 모든 사람이 순박하고 사회도 단조로웠던 시대에는 종교나 도덕만 가지고도 충분히 사회 질서를 지켜 나갈 수 있었지만, 이해(利害)의 대립이 커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종교나 도덕과 같은 신(神)에 대한 두려움이나 가슴 속의 양심에 주로 호소하는 규범만 가지고는 사회의 평화를 누리기가 어렵게 되기에 법은 최소화 될 필요가 있는 피수적인 것 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것 처럼 법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류가 존재 하는 한 같이 존재해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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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촉천민은 왜 성지순례를 못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힌두교에서 찬달라라 불리는 불가촉천민은 성지순례를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성스러운 곳을 더럽히게 될까봐 천민들은 성지 순례를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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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왕건이 남겼다는 훈요십조에는 어떤내용들이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요 십조는 무슨 가보나 가훈 처럼 족자에 쓴게 아니라 < 고려사>에 수록된, 고려 태조가 후손에게 남겼다는 열 가지 가르침입니다. 943년에 (태조 26년) 4월, 태조가 박술희 내전(內殿)으로 불러 전해 후세의 귀감으로 삼게 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서십조(信書十條) 또는 십훈(十訓)이라고도 하며, 고려왕실의 헌장으로 태조의 신앙 · 사상 · 정책 · 규범 등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요 십조의 내용은 불교 행사에 관한 것, 관리 선발및 인재 등용에 관한 것, 백성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내용 등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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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산에 유명인이 많이 묻힌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풍수지리 설 때문 입니다. 북망산 근처의 낙양의 산세가 웅위하여 물은 깊고 흙은 두터우며 낙수의 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낙양을 관통해 흐른다고 합니다. 이런 지세에다 북망산의 지표가 5-15m의 지표층을 이루고 물 침투율이 낮고 흙이 차지고 토양이 단단하여 최고의 명당으로 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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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중에 낚시는 드리우지만 그물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말로 욕심을 부리지않는다는 뜻에 맞는 사자성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釣而不網 弋不射宿( 조이불망 익불사숙) 이 한자 성어는 "낚시질은 해도 그물질은 하지 않으며, 잠든 새에는 화살을 쏘지 않는다."는 뜻으로,《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서 사생활을 통한 공자의 성품을 표현한 글입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더 가지려고 하고, 더군다나 다른 이에게 돌아갈 것까지 무리하며 빼앗아 쌓아두려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 뿐만 아니라 사회에 독(毒)을 쌓아두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발악 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는 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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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 비가 오면 어떻게 다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양반들은 우산( 슈룹)을 쓰고 다녔습니다. 다만 평민같은 일반 백성들은 그냥 비를 맞고 다니거나 아니면 패랭이같은 밀짚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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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우리나라 인구수는 얼마나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정확한 인구수가 나와 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조선 초 인구수를 기준으로 추정 할 뿐인데 11-12세기 고려 시대의 인구는 약 300-400만명 선으로 추정 됩니다. 조선 초 14세기 인구수가 약 500-550만명 임을 감안 해 어림 잡은 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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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는 어떻게 해서 멸망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기원전 331년 10월 1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벌인 싸움입니다. 이 전투로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마침내 숙적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인도 북부에까지 힘을 떨쳤고 그의 정복전쟁은 동서 교류의 물꼬를 튼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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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차량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불법주차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0-50년대만 해도 주차장법 조차도 없었고 차량 자체가 흔하지 않았기에 불법 주차로 스티커를 끊거나 견인 되는 것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 만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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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양치를 모래로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래가 아니라 소금 입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소금으로 이를 닦고 더운물로 양치를 하면 이에 남은 술독이 제거된다’라는 말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굵은 소금을 손가락에 묻혀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깨끗이 닦아 주는 방법으로 치아 관리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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