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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익문사'는 어떤 정보 기관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늘날의 국정원과 비슷한 기관이지만 역할은 달랐는데, 대부분 고종의 밀서를 외국에 전달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완벽한 보안을 요구했으므로 겉으로는 통신사로로 위장했으며, 줄여서 익문사(益聞社)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는 1902년 6월 고종이 직접 황제 직속으로 설립한 비밀 정보기관이기에 수십명의 정보원이 근무를 했다는 사실 뿐 누가 근무를 했는지는 알려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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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그려졌던 수묵화에 여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화는 여백이 더 많은 그림이지만 서양화 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마음에 담긴 생각과 상상이 절제된 색과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기에 그런데 그림의 여백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면서 상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자 차마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채우는 공간 입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작품은 어떤 화려한 그림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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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밀족 언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언어 학계에서는 타밀어와 한국어가 같은 조상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을 지지하지 않으며, 동일한 기원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타밀어는 기원전 5세기 경부터 문증 가능한 기록이 나오는 오래된 언어이기 때문에 실제로 주변 지역 많은 언어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현재 지중해, 싱가폴을 통해 동아시아로 동남아 무역로를 옛 타밀인들이처음 개척했을 정도로, 타밀인들은 페니키아인, 그리이스인과 함께 항해술이 뛰어난 민족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인도네시아까지 타밀어 화자가 살았다고까지 하지만 한국어와의 유사성은 학계에서 수차례 제시되었음에도 타밀어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같은 기원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문 /
음악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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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각 문화 별로 민족적인 정서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 입니다. 예를 들어 남마인들은 빨간새글 좋아하는데 빨간색은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색채를 선호하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폭넓고 외향적인 경우가 많다고 하는 남미의 특징을 보여 주고 우리 나라 경우는 흰색을 좋아하는데 이는 단순하고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나라민족의 특성 때문 입니다.
학문 /
미술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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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불국사는 어떤 사람이 만들어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의 꿈을 드러내는 건축물 불국정토에서 유래한 호국 사찰입니다. 신라 중기의 재상 김대성은 김문량의 아들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불국사는 경주 토함산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었고 석굴암은 토함산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불국사에 딸린 암자 입니다.
학문 /
역사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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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으로 이전할 때 왕은 문주왕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남천, 즉 지금의 공주지역인 고마성으로의 천도는 개로왕을 이어 왕위에 오른 문주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문주는 475년 9월, 신라의 구원군과 함께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있는 한성으로 돌아왔으나, 개로왕이 죽는 등 왕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왕위에 오르고 그리고 다음 달인 10월, 문주는 웅진 고마성으로 천도를 단행합니다. 문주왕이 왜 웅진으로 천도하였는가를 직접적으로 밝힌 사료는 없다. 그저 배경을 통해 추정할 뿐입니다.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요소는 고구려의 침략에 따른 한성의 폐허화, 그리고 여전히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보다 안전한 지역이 필요하였다는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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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상화에는 희노애락 감정표현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화와는 달리 한국의 초상화는 감상용이 아니기 때문 입니다. 조선 시대 초상화는 본받을 만한 인물을 그려 제사를 모시는 데 주로 사용이 되었던 제사용 사진 정도로 보면 됩니다. 특히 왕의 초상화 같은 경우에는 나라에서는 역대 왕의 어진을 그려 별도의 전각에 봉안했고, 나라에서 그려준 공신 초상화는 해당 가문이 사당에 모셨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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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의 사학자 E H 카(Edward Hallet Carr)인데 그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란 역사학자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 이지만 이 통찰을 실행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학문 /
역사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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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십일조 유래는 어떤 이유로?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십일조는 성경에 그 유래가 나옵니다. 창세기 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의 행적에서 기원하는데 아브라함이 조카 롯 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 을 만났다고 합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했고 아브라함은 얻은 것에서 10분의 1, 즉 십일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멜기세덱에게 봉헌했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 한다고 합니다.
학문 /
음악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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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죽음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의 죽음관은 불교나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 죄 값에 따라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 나기도 하고 미물로 다시 태어 나기도 한다는 윤회설이 지배적이지만 서양의 사상 기독교위주로 말씀 드리면 한번 죽으면 지옥과 천단이 있을 뿐 윤회는 없는 일직선 적인 죽음관이 존재 합니다.
학문 /
철학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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