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괴담은 언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8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초 초등 학생 들 사이에 유행 하기 시작 한 것이 도시 괴담 입니다. 빨간 마스크, 김민지 괴담, 홍콩 할매 귀신 등이 이에 속한 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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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족들은 동적인 활동을 많이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족들은 품위 유지를 위해서 정적인 움직임 들만 했지 동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작 한다는 것이 정원을 거니는 산책이나 일년에 한 두번 사냥이 전부 였지요. 그래서 조선의 왕들은 지병이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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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부터 1979년까지 존재했던 로디지아라는 국가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0년 공식 명칭은 로디지아 공화국(The Republic of Rhodesia)은 이전의 영국령 남로디지아식민지가 1965년 11월11일에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였을 때 채택하였던 이름입니다. 로디지아라는 이름은 또한 1979년에 짐바브웨 로디지아의 설립과 더불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로디지아로서 식민지 상태 잠깐 복귀한 뒤, 로디지아는 1980년 4월에 「짐바브웨」라는 이름의 독립국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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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의 역사와 사실로의 역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인 의미의 역사로서 "일어난 모든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말합니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로서 "기록된 자료, 역사서"라는 측면에서 말하는 역사입니다. 즉, 주관성과 객관성이 가장 큰 차이 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는 기록으로서의 역사 입니다. 즉, 역사가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기록된 바에 의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린 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승리한 사람에 의해서 주관적으로 기록된다는 말이 나온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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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족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왕실은 왕건과 정략 결혼을 통해 그 지위를 보장 받았습니다. 왕건은 신라 경순왕의 큰아버지인 잡찬 김억렴의 딸과 결혼했는데 신성왕후 김씨는 왕실 서열 5위였다고 합니다. 왕건은 큰딸인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 보내서 겹사돈을 맺었는데 신라 왕실과 단단히 얽혔던 것입니다. 신성왕후 김씨는 안종을 낳았고 안종은 현종을 낳았습니다. 고려 왕실은 이후 현종의 핏줄로 이어졌고 왕건의 결혼은 대부분 신라 호족의 힘을 얻고자 한 정략 결혼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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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각 시기마다 통치방식을 바꾼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단 총치에서 문화 통치(文化統治)로 3·1 운동 이후 일제가 방향을 전환한 이유는 조선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기존의 무단 통치방식을 버리고 내세운 새로운 식민지 통치방식을 표방한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는 등 여러 유화정책을 실시했지만, 이는 악랄한 식민지 정책을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위장수단일뿐이었고 실상은 탄압과 감시, 민족문화 말살,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기 위한 고도화된 기만적인 식민 통치 방식에 불과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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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은 건강이 좋지않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입니다. 지금의 대통령도 마찬 가지지만 대통령 보다 더 큰 권력을 누렸던 왕은 권한 만큼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 과다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정원을 산책하는 정도였습니다. 심한 스트레스, 지나친 음식섭취, 운동 부족도 조선 왕의 건강을 해쳤고 왕의 운동 부족과 비만은 혈액성 염증질환을 불러와 대부분의 조선왕들은 단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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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쇼펜하우어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는데, 어떤 철학서를 읽어야 하고 이 분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실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철학책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인데 이책에는 그의 철학적 사상이 집약돼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신봉했던 헤겔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헤겔과 달리 인간의 본질을 이성이 아니라 의지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현대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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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로 남과 녀를 나우는 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외모에 대한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하듯 색상의 상징성도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1918년 미국 여성 잡지 ‘더 레이디스 홈 저널’ 에서는 핑크(분홍)와 블루(파랑)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남성에게는 핑크색을 여성에게는 파란색을 조언 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와 성별을 지칭하는 색깔의 의미가 완전히 반대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분홍색 옷을 입는 건 당연했다고 합니다. 반면 여성들은 차분하고 얌전하다는 이유로 주로 파란색 옷을 입었죠. 17세기 바로크 시대, 귀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분홍색 옷을 많이 입었다고 합니다. 분홍색은 빨강에 흰색을 섞은 색이기에 당시에는 빨간색이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색이었기 때문에, 주로 군복에 빨간색을 넣어 입었다고 합니다. 빨강에 흰색을 섞은 분홍색은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시에 ‘앞으로 강인해질 소년’ 을 상징하는 색으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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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어떻게 음악이나 발레 등 예술이 발달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베토벤, 바흐 등 걸출한 예술가들이 탄생한 것이 이유중의 하나이고 또한 현대에 있어서는 정치·사회적 맥락의 토론을 중시하는 미술, 음악 교육의 탄탄한 전통과 1990년 동서독 통일 이래 더욱 개방적으로 세계적문화를 수용한 국가와 지자체 예술 정책이 그 이유가 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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