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들 중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 시스틴 마돈나> < 마리아의 결혼> < 기사의 꿈> < 그리스도의 변용> < 성조지와 용> < 성베드로의 해방> 등 성서와 관련된 작품들이 주된 내용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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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도 사인(서명)을 사용했다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결 (手決)은 조선후기에 서명(Sign)을 지칭하는 용어로, 조선전기 문헌에서는 ‘손수 처결하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거나 처결을 하는 것은 문서 작성의 최종 종결 행위이므로 마지막 단계에서 문서에 결재한다는 뜻으로 수결의 의미가 변이된 것입니다. 각종 관공서 문서 로부터 개인의 땅문서에 이르기 까지 모든 문서에 수결은 기본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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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당에 내던 수업료는 얼마정도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업료는 강미 (講米),공량 (貢糧),학세 (學稅),학채 (學債)등으로 불렸으며,보통 서당의 강미는 대개 초학자 (신입생)에게는 1년에 벼 반 섬 (5말),그 이상의 학생들에게는 한 섬 (10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가격으로는 1말이 약 7만원 정도이니 1년에 최소 40에서 최대 80만원 정도가 서당의 학비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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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권신인 한명회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명회는 조선전기 삼정승, 즉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다 한번씩 역임한 문신입니다. 1415년(태종 15)에 태어나 1487년(성종 18)에 사망했는데 과거에 실패하고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했다고 합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심복으로 활약했고 세조 즉위 후 사육신 주살에 적극 협조한 공 등으로 영의정에 올랐고 세조 사후 원상으로서 어린 왕을 보필하며 국정을 운영했고, 예종과 성종에게 딸을 왕비로 들어보내 권세와 부를 누렸다고 합니다. 성종 때 성균관 장서 확충의 공을 세우기도 했으나 갑자사화 때 연산군 생모 폐사에 관여했다 하여 부관 참시되었다가 뒤에 신원이 복원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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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무원들도 오늘날처럼 승진하는 제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조선시대 근무 기간에 따라 관리를 승진시킨 인사제도를 순자법 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순자법이 1412년(태종 12)에 각사이전은 차년법에 따르도록 개정하였고 1423년(세종 5)에 개월법에 따라 당시까지 15개월마다 그간의 근무평정인 고과(考課)와 관련되어 1계(階)씩을 가자(加資, 또는 가계)하던 문무반을 대상으로 한 순자법에 송·원제를 가미, 문반인 경관·지방 수령은 2년 6개월을 기간으로 매 6개월에 한번씩 상·중·하의 등급으로 고과하여 상이 3회 이상이면 1계를 가자하도록 개정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425년에 무반도 문반의 예에 따라 오고삼상(五考三上: 관리의 근무 성적을 10차례 평정하는데 이 중 다섯 번 상(上)의 점수를 받음) 이상으로써 가자하도록 보완하였습니다. 1444년 11월에 당시의 관제상 “정7품 이하의 참외관(參外官)으로서 품계가 높은 자는 적지만 빈자리의 수는 많기 때문에 인사가 적체된다.”는 문제점의 시정과 관련해 경·외의 문·무 참외관은 당하·참상관과 달리 삼고이상(三考二上)으로써 1계를 가자하도록 다시 보완되는 것으로 고쳐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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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게 정확한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조 실록 기록에는 단종이 금성 대군과 그의 장인 송현수가 처형 당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라고 기록 되어 있지 사약을 받고 죽었 다고는 기록 되어 잇지 않습니다 . 사약을 내렸다는 것은 아마도 드라마 등을 통해서 각색이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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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와 영조에 대한 일화들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조가 어느날 사도세자에게 "한 문제하고 한 무제 중에 누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자 사도세자가 "한 문제입니다"라고 답하자 "이는 나를 속이는 답변이다! 너는 분명 무제를 통쾌히 여기고 있을 텐데 어째서 문제가 낫다고 하느냐?" 라고 강하게 질책하고 “너는 앞으로 문제·경제의 반 정도만으로 나를 섬겨도 족하다라고 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고서도 혜경궁 홍씨는 끝까지 살아 남아 그의 아들을 왕위에 올려 정조를 만듭니다. 대단한 어머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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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삽줍는 여인들이 줍고 잇는것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삭 줍기라는 것은 들판에 떨어진 음식 줍기와 같습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이삭줍기란 농촌의 극빈층에게 부농이 베풀어주는 일종의 특권이었는데요. 농장주가 빈농으로 하여금 추수를 하고 난 뒤에 들판에 남은 밀이삭을 주워가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굶주린 이들의 숫자에 비해 남아있는 곡식의 양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삭줍기는 늘 엄격한 관리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이삭을 줍는 세 여인 뒤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말을 탄 감시자가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이삭줍기란 그야말로 등골이 빠지는 고된 노동입니다. 남보다 한 알갱이라도 더 주워 모으려면 잠시라도 허리를 펼 여유가 없지요. 그러나 하루 종일 허리가 휘도록 이삭을 주운 들, 빵 한 덩어리어치의 밀을 얻을까말까 한 정도니, 그림 속 여인들의 처지는 도시로 치자면 행인이 던져주는 동전이나 길거리에 버려진 음식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걸인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밀레의 이삭 줍기는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여인들의 처참한 생존 경쟁을 그린 작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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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랩 멘탈리티 효과'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게를 잡는 어부들이 뚜껑이 없는 바구니에 게를 산 채로 던져 놓는 것에서 유래한 용어로, 뚜껑이 없어 살아있는 게가 쉽게 바구니를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게가 빠져나가려는 게를 붙잡아 다시 아래로 끌어내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즉, 내가 안되면 남도 안되는게 차라리 낫다 라는 의미로 우리말에 " 시돈이 따을 사면 배가 아프다" 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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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거중기는 누가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약용은 정조가 준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개발하였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서 사용할 것을 건의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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