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의 작사는 언제, 누가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애국가 작곡은 안익태 선생이 하셨고 애국가 가사와 1940년 12월 20일 이후로 사용 중인 애국가 가사를 정립한 사람에 대한한 것은 확실한 것은 없으며 다만 민명환, 최병헌, 안창호, 김인식, 윤치호 중 함명 이거나 공동으로 작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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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친일파인 윤덕영이라는 인물은 어떠한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덕영은 이완용 등 친일파 세력과 합세해 순종을 협박했고,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숨기자 억지로 빼앗아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는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결국 윤덕영은 일제에 공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받았는데 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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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인가요? 말 그대로 신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 나라이던지 다 신화는 존재 합니다. 우리나라도 단군의 건국 신화가 존재 하고 일본도, 중국도 마찬 가지 입니다. 그 신화는 그 나라 사람들을 하나로 묵어 주고 또한 정신 적인 유대감을 심어 주기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에 대한 사실 여부를 따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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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책사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삼국시대 최고의 지략가로 말한다면 김유신이지 않을 까 합니다. 삼국 중에 가장 약했던 신라를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만든 장본인 입니다. 그는 유명한 장군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아주 뛰어난 책략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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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라하다 라는 것이 바른말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좋아라.' 하며 먹었다.와 같은 표현이라면, 이대로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나는 좋아라 하며 먹었다.'와 같이 쓴다거나, '나는 무엇을 좋아하다'를 '나는 무엇을 좋아라 하다'와 같이 쓰는 것은 알맞지 않습니다. 즉 " 좋아라" 한다 는 직접 화법을 간접의 일부를 인용해서 쓸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쓸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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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양반들이 한글을 사용하지않은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들의 특권 의식 때문 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중국의 유학만이 유일한 학문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아녀자들이 쓰는 것이라고 천시 하였고 그 것은 바로 양반들이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한글을 가르치는 서당을 개설하지 않은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한문만을 가르치는 서당만을 개설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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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가 역대 중국 통일 왕조중에서도 단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키스칸이 유언을 남길 때 초심을 잃지 말라고 했다고 하는데 원나라는 초심을 잃고 맙니다. 내부적으로는 권력 다툼을 벌여 혼란이 가중되고 유럽 원정에서 흑사병을 얻어서 군사들을 많이 잃고 황제는 권력의 맛에 빠져 정치를 돌보지 않고 쾌락에 빠져 들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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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를 쓰는 나라들은 스페인에 지배를 받은 국가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미에는 스페인어 사용 국가가 20여국이 넘습니다. 브라질만 포르투칼어를 쓰고 나머지는 거의 다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는 일제 36년 강점기를 당하는 동안 일본어를 강요 받기도 했지만 민족의 고유언어인 한글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다행 이라고 생각 합니다. 대부분 이렇게 수십 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 그 본래의 언어는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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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정전 협정서에 왜 한국은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전협정서에는 유엔군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과 공산군 측 대표 남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김일성 북한군 총사령관, 펑더화이 중공군 총사령관이 각각 서명했다고 합니다. 휴전협정에 반대한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정전협정서의 원본은 미국과 중국, 북한이 나눠 가졌다고 합니다. 당시 남한은 국제연합 (UN) 회원국이 아니었고 이승만 정부가 정전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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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 vs 품계 중 어느걸 더 우선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중인은 양반층 아래의 계급으로 외국어, 의학, 천문학 등 특수한 학문을 배워 양반의 일을 돕는 사람들로 기술관, 향리, 서리, 토관, 군교, 서얼 등이 속합니다. 이들은 높은 벼슬은 할 수 없었고 주로 하급 관리로 채용되었습니다. 즉, 중인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정5품 이상은 불가능 했고 설사 중인의 품계가 조금 더 높더라고 그 아래인 양반에게 하대를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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