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화폐였던 엽전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전을 세는 단위가 '닢'(동전 한 닢, 두 닢 하는 식)이었기 때문에 엽전(葉錢)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만드는 방법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시 대량생산을 위해 만든 주물틀에서 막 나온 상평 통보는 마치 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연상시켰기에 엽전이라 불렀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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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의돈의 유래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도주의돈(陶走猗頓) 도주의돈 [陶走猗頓] 도주 (陶走)와 의돈 (猗頓)과 같은 큰 부자라는 뜻으로, 막대 (莫大)한 재산 (財産)이나 돈이 많은 부자를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제(齊)나라는 범려의 비상한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재상이 되어 달라고 했지만 “천금의 부를 누리고 재상까지 된다는 것은 영화의 극치인데 게다가 명성까지 누리는 건 좋지 않다면서 제(齊)나라의 제의를 사양하고 수 만금의 재산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도(陶)땅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이름을 다시 주(朱)로 바꾸고 여기서도 장사를 시작해서 또 한번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불렀다.그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은 것은 철저한 상술로 이익을 도모했지만 사람들을 쥐어짜는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이번에도 번 돈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뒷날 도주공(陶朱公)의 자식들도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고 합니다.한편 의돈(猗頓)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황하 기슭 남쪽에서 소금과 목축(牧畜) 사업으로 거부(巨富)를 이뤄 제후들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으며 도주(陶朱)에 버금가는 큰 부자가 되었던 인물입니다.그래서 도주의돈(陶朱猗頓)이라고 하면 부자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또 막대한 재산 또는 거부를 도주의돈지부(陶朱猗頓之富)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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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왜 여성 총리가 없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선진국으로 보이지만 사실 남녀 평등 문제에 있어서는 아주 하위권 나라입니다. 그 이유는 2021년 기준 국제의원연맹(IPU)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에서 일본은 166위로 최하위권(한국은 121위)이고 남녀 평등 순위 역시 가장 뒤처진 나라에 속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요. 일본이 첫 여성 총리를 내려면 아직도 한참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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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시풍에 대한 평가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수영은 식민지 시절 카프 문학의 지도자 임화를 몹시도 존경했던 작가입니다. 임화가 쓴 <네거리의 순이>에서 알 수 있듯이 김수영은 임화의 단편 서사시 전통을 이어받은 작가인데 김수영이 쓴 산문시 '거대한 뿌리'(1964)가 대표작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70년대 김지하, 90년대 김남주로 계승되며 한국 현대 시문학의 시맥을 형성했는데 부조리와 불의한 시대에 맞서 김수영은 작품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뇌했던 작가 입니다. 오늘날 김수영을 모더니스트 시인을 넘어서서 '모럴리스트 시인'으로 불려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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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라도는 곡창 지대였는데(특히 고부는 핵심 지대였음) 이러한 지리적, 경제적 이점으로 인하여 전라도민들은 지속적인 수탈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전라 고부 군수 조병갑은 그 중에서도 악랄한 타관오리인데 그는 대형 저수지를 축조하여 이에 사용료를 부과하였고, 인근 태인 군수를 지냈던 아비의 공덕비를 세우겠다며 양민들로부터 엄청난 조세와 잡세를 걷고 양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노역을 부여하는 등 그야말로 악덕 공무원 이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동학운동이 일어 났고 결국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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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총기 규제를 안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인 총기소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은 결국 연방정부 또는 주 정부가 집집마다 방문해 강제로 압수하겠다는건데, 문제는 이건 총을 근거로 자기 자신을 지켜왔던 미국인들의 정통성을 뺴았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인들에게 있어서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질법한 용납할 수 없는 장면이라는 것이고 더군다나 총기 소지는 헌법이 규정한 권리에 해당 함으로 헌법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총기 규제는 어렵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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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의 유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풍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의 소풍은 고전적인 형태로 실시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마련한 도시락을 들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거리의 산이나 들, 또는 명승 고적지를 교사의 인솔하에 줄을 지어 걸어서 갔다오는 것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교통문제가 복잡해지고 일반 관광객이 증가함에 따라 여러 가지 안전 문제와 교통 문제 및 비 교육적인 현상이 증가하여 소풍에 적합한 목적지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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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문화는 왜 서양에는 없는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음식 문화에 따라 손으로 먹는 나라도 있지만 인간들은 각 나라의 음식을 먹는 방법에 가장 최적화된 식사 도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육류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 우리나라와 동양에서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하지만, 육류 소비량이 많아서 고기를 썰어야 하는 서양에서는 포크와 스푼, 그리고 나이프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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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가라사대에서 가라사대는 무슨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어체로) ‘말씀하시되’의 뜻으로 쓰이는 말. ‘가로되’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한자어가 아닌 ᄀᆞᄅᆞ샤ᄃᆡ ( 가라사대)는 순 우리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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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역관은 양반이 아니였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관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통역과 번역 업무를 담당하였던 관리를 말합니다. 역관은 사대교린, 즉 외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정의 대신들은 역학 또는 역관을 천하게 여기면서도 역관의 임무가 국가의 중대사임을 자주 강조하였다고 합니다. 역관이 없는 부득이한 경우엔 한문으로 필담을 했지만 필담의 한계는 분명히 있었으므로 외국어 전문가인 역관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고 합니다. 보통 역관은 평민 출신이 많았으나 양반도 역관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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