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박씨전에서 나오는 이시백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박씨전의 주인공인 이시백은 인조 반정의 공신이며 호란 때 병조참판을 지낸 실존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시백의 한자는 다르다고 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李始白이며 실존 인물은 李時白입니다. 다만 실존인물과 동일하게 時白으로 표기된 판본도 존재하며, 실명 거론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비슷한 듯 다르게 쓴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인정 엑스포와 등록 엑스포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등록 엑스포와 인정 엑스포의 가장 큰 차이는 행사기간과 전시 면적등의 차이 입니다. 등록엑스포는 0과 5로 끝나는 연도에, ‘인정엑스포’는 그 중간에 1회 열린다고 합니다. 등록엑스포는 인정엑스포에 비해 재정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등록엑스포 주제는 전시면적에 제한이 없고 6개월간 진행하며 개최국에서 부지 제공, 전시관 설치 및 해체 비용 참가국이 부담 한다고 합니다.2010년 상하이, 2015년 밀라노 엑스포가 대표적 입니다. 인정엑스포는 특정한 주제로 3개월 진행하고 전시면적도 25헥타르로 제한 하고 주최국 부담으로 전시관을 건축, 참가국에게 무상 임대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대전((1993)과 여수엑스포(2012)가 해당 된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4.14
0
0
우리나라 세시 풍속 중에서 거북놀이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기도와 충청남북도·강원도 지역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광주(廣州)와 예산지방에서는 음력 정월대보름에도 행한다고 합니다.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여하여 함께 즐기며, 각 가정의 복을 빌어주는 놀이입니다. . 옥수숫대를 벗겨 거북의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앞에 한 사람, 뒤에 한 사람씩 두 사람이 들어가서 마치 거북처럼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이 거북 앞에는 거북을 몰고 다니는 거북몰이가 거북의 목에 줄을 매어 끌고 가고, 그 뒤에는 농악대가 꽹과리·북·소고·징·장구 등 풍물을 요란스럽게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먼저 도는데, 이것을 길놀이라고 길놀이가 끝나면 동네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기서 찾아간 집 대문 앞에서 농악대 일동이 풍물을 울리면서 문안을 드리며 수문장굿을 친다고 합니다. 대문간에 나온 집주인에게 거북몰이가 “이 거북이가 동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하면 집주인은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라고 ㅎ면서 거북몰이가 앞장서고 일행이 뒤따라 들어가고 그런 다음 그집 마당에서 우물굿(용왕굿)·마당굿을 쳐주고 한바탕 춤을 추면서 놀라주고 음식을 얻어 먹는 등의 행위를 반복해서 그 다음 집으로 이어서 하는 놀이를 말합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엑스포 시민운동은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010년에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선진 시민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벌인 시민운동이 바로 엑스포 시민 운동 입니다. 대전엑스포 시민운동은 여수 시민들의 참여의식과 지역을 사랑하는 선진문화 의식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또한 기관·단체·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전 시민이 하나로 뭉치는 단결력과 화합의 전기를 마련하였다고 뿐만 아니라 한층 성숙한 시민의식 함양은 물론, 환경의 중요성을 재 인식하는 계기도 되었다고 합니다. 여수시는 매월 12일을 ‘엑스포 시민운동 청결의 날’로 지정하여 기관·단체별로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여수 가꾸기에 솔선수범하였다고 합니다. 자투리땅 꽃밭 가꾸기, 공한지와 가로변의 화단 조성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페럴림픽을 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패럴림픽 선수 출전 기준은 1980년대부터 기능적 분류 시스템은 장애 선수 분류의 기준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능적 분류는 선수들의 장애가 그들의 선수 활동 운동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선수들이 다리 기능의 손실 원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같은 기능의 장애를 가진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기능적 분류의 유일한 예외는 국제 맹인 스포츠 협회 (International Blind Sport Federation, IBSFO)에서 사용하는 분류 형식으로 이는 여전히 의학적 시스템에 기반을 둔다고 합니다. 몇몇의 종목들은 오직 특정한 장애 유형에만 부합될 수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골볼은 오직 시각 장애 선수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패럴림픽은 세 단계의 시각장애를 인정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골볼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검정 안대를 착용해야만 하며 이는 약간의 시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이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육상과 같은 다른 종목들은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참여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육상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분류의 한 범위에 속해지며, 그 분류는 그들의 장애 상태에 따라서 나뉜다. 예를 들면, 11-13 클래스는 시각 장애 선수들을 위한 클래스이며 이는 그들의 시각 장애 정도에 따라 분류되며 또한 휠체어 럭비 와 같은 단체 경기도 있는데 팀 멤버들은 그들의 활동 제한에 따라 포지션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낮은 점수는 높은 점수 보다 좀 더 심각한 활동 제한을 의미합니다. 한 팀은 시합 중 전체 점수가 특정점수 이상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이는 동등한 경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면, 휠체어 럭비에서 5명의 선수들의 총 장애 점수가 8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4.14
0
0
김삿갓은 왜 김삿갓이란 이름으로 유명해졌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본명은 김병연인데 비록 김병연은 과거에서 장원을 했지만 할아버지가 임신년(1812) 관서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의 반란 때 항복했으므로 사형당했고 그 집안은 폐족이 됐다고 합니다. 김병연은 스스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며,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다고 하여 일찍이 삿갓을 쓰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삿갓으로 불리게 된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지금 서진이네 방송보는데 이해가안되는점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칸쿤이나 리비에라 마야 등의 멕시코 대표적인 휴양지 등에서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당히 많이 유치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가 무리 없이 소통 됩니다. 따라서 한국인 관광객 분들 중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시는 분들도 멕시코 휴양지는 부담 없이 여행합니다. 그 외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과나후아토 등 관광산업이 발달되어 있는 곳은 영어를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스페인어를 하면 가장 좋겠지요.
학문 /
음악
23.04.14
0
0
왜 중국드라마는 중국 영화에 비해서 그래픽 기술이 뒤떨어지게 제작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국영 방송 CCTV급의 대형방송사나 TVB처럼 오래 전부터 드라마를 제작해 온 방송사가 아니면 보통 드라마 제작사에게 방영권을 구매한 다음에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작단가가 맞지 않다거나 드라마 내용이 별로 이거나 아니면 시청률 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에 기껏 제작된 드라마는 말 그대로 그냥 버려진 다는 것 입니다. 거기에 국가에서 드라마 같은 경우는 아직도 공산당 검열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작 수준이 점점 더 낮아 질수 밖에 없지요.
학문 /
미술
23.04.14
0
0
한국사람인 이완용은 '매국노'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완용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서면서 을사오적의 우두머리로 비난을 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완용이 처음부터 그가 친일파 매국노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른 개화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라가 근대화되어 부강해지기를 바란 사람이었는데요. 개화파가 된 이완용은 미국 공사가 되어 미국에서 발달된 산업과 문물을 접하고 고국도 하루 빨리 근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귀국한 뒤 독립 협회에 참가하여 개화파와 함께 열심히 활동합니다. 당시 정세는 일본에 유리하게 흘러갔고 마침내 일본이 을사조약을 들이밀었고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일본의 비위를 맞추어 가며 우리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을사조약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덕분에 총리 대신이 된 그는 한일합병조약에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일본은 그의 공을 높이 기려 백작이라는 귀족 지위와 중추원 고문이라는 높은 직책까지 주며 후하게 대접했지요.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를 받으면서 근대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실 이완용은 오로지 자기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친일파 노릇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는 일이 나라를 근대화시키기 위한 최선 혹은 차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늘 권력이 있는 쪽에 서서 일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진짜 잘못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이완용의 사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나라를 위한 일은 현재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권력을 쥐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관념이라는 생각 인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김만덕은 천민출신인데 어떻게 김해김씨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만덕은 김해 김씨 좌정승공파 15세손이 맞습니다. 제주에 귀향온 선조 김만희(金萬希)가 조선 개국에 협력하지 않아 제주로 유배를 와 스스로 "고려 유민" 칭하며 제주 삼절신(三節臣) 불리며 이곳 제주 곽지리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의 6세손 절충장군을 지낸 김후찬(金厚瓚)은 김만덕의 선조라고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신분의 변화를 보면 원래 양반-천민-다시 양인 이 되는 과정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학문 /
역사
23.04.14
0
0
1585
1586
1587
1588
1589
1590
1591
1592
1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