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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베이터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엘레베이터 혹은 승강기는 최초로 고안된것은 기원전이며 19세기에 실용화되었다고 합니다. 엘리샤 오티스가 1852년 뉴욕주 용커스에 있는 침대 공장의 수석 기계공이 되면서 오티스는 2개의 기둥 사이에서 상하로 움직이면서 덮개 없는 상자에 침대를 실어 한 층에서 다음 층으로 옮길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1854년에 뉴욕 박람회 때 무거운 짐이 실린 상자 위에 올라앉아 조수에게 지지 밧줄을 자르게 함으로써 자신의 발명품을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었다는데여. 1857년에 뉴욕 시의 5층짜리 E.V. 호프웃 도자기 및 유리 상점에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하네여. 한국에서는 1850년에 쓰이기 시작했지만 그 때는 큰 반응을 보이지못하다가 이후 일제 강점기 때인 1914년 조선호텔에 최초로 설치되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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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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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두꺼비를 쓰고 라는 표현이 있는데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확한 표현은 인두겁 입니다. 인(사람인) + 두겁(어떤것을 씌우는 물건) = 사람의 형상이나 탈. "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런일을 해?" 이말이 자음 동화에 의해서 "인두꺼블" 쓰고 혹은 질문하신 것처럼 "인두꺼비" 라고 잘못 들리는 것입니다. 우리말 어렵고 재미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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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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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회담에서 소련이 대일전 참전을 약속한 이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45년 2월 미국,영국,소련의.정상이 모인 이 자리애서 미국은 소련에 대해 일본 제국에 대한 전쟁에서 참전을 요구했고 소련은 참전의 대가로 외몽골 현상 유지,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상실한 사할린 남부와 부속 도서들에 대한 회복, 일부 항구를 소련의 무역항 및 군사항구로의 전환, 철도 이용권 복구, 쿠릴 열도 할양 등 극동에서의 지분을 약속받게 됩니다. 그래서 참전을 하게 된것이죠. 냉전이 시작된것은 2차 대전이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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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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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미래의 대한민국의 가상적국은 어디라고 보십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니까요. 예기 하신 대로 일본도 , 러시아도 언제던지 우리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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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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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경장 계급이 군대의 대위와 같은 것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경찰에서 경장은 군대에서 중사, 상사, 원사등 부사관 급으로 봐야 합니다. 그 위에 준위가 경사에 해당하고 중위가 경위 혹은 경감이고 그 위에 대위가 바로 경정에 해당 합니다. 그 다음에 총경, 경무관 등으로 올라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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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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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재산상속이 균분상속에서 장자우대상속으로 변화한 배경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에서는 꽤 오랫동안 후손을 차별하지 않는 균분상속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다과 합니다. 우리가 한때 조선의 전통으로 여겼던 딸보다는 아들, 차남보다는 장남 중심의 상속제도가 자리를 잡은 것은 17세기 이후에나 되어서였다습니다. 이런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우선 장남을 집안의 계승자, 제사 주관자로 확고하게 인정하며 부계 혈통의 영속을 염원했던 종법이 이즈음에 이르러 보편화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자식들의 수에 따라 재산을 나누는 균분상속이 집안 경제력의 축소로 이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대표적인 인물이 정약용입니다. 그는 “주요 가문들의 본종(本宗)이 어려움을 겪고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된 배경을 균분 상속”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선대의 재산이 막대할 때는 사람 수에 따라 나누는 게 큰 문제가 안되지요.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상속할 재산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재산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인 관직의 획득도 점점 어려워졌지요. 가령 재령 이씨의 집안은 17세기 들어 이함-이시청-이신일 3대로 이어지는 동안 상속할 수 있는 노비는 161명→88명→50여 명으로, 토지는 821두락→400여 두락으로 줄었다고 하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많지 않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모두가 가난해지고 아들들은 제사를 지내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가문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상속에서 딸을 배제하는 명분이 되었고, 상속 재산의 감소를 막는 방안으로 아들 중심 상속, 나아가 장자 우대 상속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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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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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처음으로 금혼령이 생기게 된 유래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혼령의 시초는 조선 초인 1422년(세종 4) 태상왕인 태종이 변계량·이지강을 불러 “공비(恭妃)가 이미 세자를 낳았으나, 임금의 자손은 넓히지 아니할 수 없으니, 삼의정(三議政)과 대사헌 성엄(成揜)·사간 심도원(沈道源) 등과 의논하여, 후궁이 될 만한 여자 두 사람을 선택하여 보고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16세 이하의 여자의 결혼을 금하였는데, 이 때 태종은 누구든지 본인이 늙었으면 그 자녀를 혼인 시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만큼 속히 후궁을 선택하여 금혼령을 풀도록 할 것을 명하였다고 합니다. 금혼령은 조선초 세종떄 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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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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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사찰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4세기 후반에 소수림왕때 건립된 고구려 최초의 사찰인 이불란사와 초문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치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며 더군다나 당시 수도인 평양은 우리가 가볼수 없는 곳이므로 더욱더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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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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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여성사업가는 누구 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 시업가는 조선시대의 김만김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조선 영조때 아버지 김응렬과 어머니 고씨 사이의 2남1녀의 고명딸로 태어났는데여 만덕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고생을하다 한 기생밑에 들어가 살게 된다고 하지요. 어린나이에 본의 아니게 기녀가 된 만덕은 성인이 되자 자신 때문에 집안이 천민으로 대우받는 것이 괴로워 결국 관가에 나가 기녀명단에서 삭제해줄 것을 호소하여 양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업에 남다른 재능과 안목을 가진 만덕은 산지에 객주집을 차리고 제주의 특산물인 말총·미역·전복·양태 등을 제주지역에 공급하는 유통업을 통해 최고 부자가 되었다고 하지요. 당시 제주에는 1790년부터 수년간 극심한 흉년이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갔다고 합니다. 사태가 심각하자 나라에서는 서둘러 구휼미를 보냈으나 풍랑을 만나 배들이 모두 전복되고 말았지요. 만덕은 평생을 모은 재산을 내놓아 곡물을 사들여서 사람들을 구휼했고 이때 만덕이 직접 관덕정에 가마솥을 걸어 죽을 쑤어서 굶주리는 제주백성을 먹여 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에는 김만덕 동상이 세워졌울 만큼 아주 유명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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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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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어떤곳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는 지금으로부터 90년전인 1932년 서울 충정로에 세워진 5층짜리 충정 아파트 건물이고, 해방 이후 최초의 아파트는 1959년 중앙산업(주)이 지은 '종암아파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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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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