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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백기는 왜 40만 명을 생매장 한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괄이 죽은 조의 군대는 항복하게 되었는데 그 숫자가 모두 30만이 넘었다고 합니다.이에 백기는 30만이나 되는 포로를 진의 식량사정이 여의치 않아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돌려보내기엔 위, 조, 한 연합군에게 30만이나 넘는 군대를 돌려주는 것은 좋지않다고 판단해 그들을 모두 생매장시키는 결단을 내리고 전부 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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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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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녀들은 어느정도의 품삯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속대전'에 따르면 궁녀 중 최고위직인 제조상궁의 월급은 쌀 25말 5승, 콩 5말, 북어 110마리였다고 합니다. 이는 정3품 당상관의 월급 수준이었다고 하네여.그리고 부제조상궁은 쌀 19말 5승, 콩 5말, 북어 90마리였다고 합니다. 지급으로 따지면.연봉 약1억5천.정도되는.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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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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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삼겹살은 어느시대부터 있던 음식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겹살은1960~70년대 대규모 양돈산업은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의.결과입니다.이때부터 일본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며 돼지를 키우게 됐다고 합니다.한창 일본에서 돼지고기 소비량이 급증하자 배변물 처리가 문제가 됐고 일본은 자국에서 돼지를 키우는 대신 한국에서 돼지를 키우기로 결정했는데 즉 일본에 돼지고기를 유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양돈산업이 들어서게 된 셈인데.일본에는 맛있다고 알려진 안심, 등심을 수출했고 우리는 삼겹살, 족발, 돼지국밥, 순대 등을 즐겨 먹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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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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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전은 고려시대에도 존재했고 조선까지 이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여러 왕릉 · 왕비릉의 수호 경비를 조달하기 위하여 각 능침별로 지급된 토지. 후기에는 능위전(陵位田)이라고도 하였다고 합니다.고려시대에도 있었다고 믿어지나 그 구체적인 연혁·내용 등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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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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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 있었던 특이한 직업은 어떤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사상으로만 납아있고 지금은 없어진.직업으로는 전화교환수와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등의.직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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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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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있었다는 홍산문화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발해연안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 홍륭와 문화에서 발굴된 옥귀걸이 등을 분석해보면 8천년 전부터 요서, 요동, 한반도가 하나의 문화권이었음을 보여주고 홍산문화는 중국 한족의 것과는 계통이 다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실제로 중국은 홍산문화 발굴지점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동이땅이라 폄하하던 만리장성 이북이라는 점에 매우 당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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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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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전랑은 정5,6품으로 품계는 낮은데 왜 권력이 강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조전랑(吏曹銓郞)은 조선 시대에 이조의 정랑(정5품)과 좌랑(정6품)을 함께 이르던 말인데 이조의 정랑과 좌랑은 각 부서의 당하관(堂下官) 관원을 천거, 재야인사 추천 권한을 가진 직책으로 전랑(銓郞)이라고 불렀습니다.인사권을 디루다 보니.요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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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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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펼친 정책 중 백성들이 싫어한 정책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대왕도 악법을 유지한적이 있는데.비로 부민 고소 금지.법입니다.조선시대에 지방의 향직자(鄕職者)나 일반 백성들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던 제도로서 일종의 면책 특권입니다. 세종 2년인 1420년에 세종의 명(정확히는 당시 상왕이었던 태종의 명령으로)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이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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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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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불교는 언제 처음 들어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3국시대에 불교가 모두 중국을 통해 들어왔고 반포됩니다..소수림왕은 372년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太學)을 설립하였으며, 373년 율령(律令)을 반포하였는데 모두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정비와 밀접한 조치였고 백제도 4세기 침류왕때.공인되고 신리도 6세기.법흥왕때 공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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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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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설날이 쉬는날이였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관리에게는 1년 동안 순휴일 35일, 그 외에 3일, 총 38일 정도의 휴무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속절俗節에는 정조正朝, 상원上元, 한식寒食, 단오端午, 중원中元, 중추中秋, 칠석七夕, 중양重陽, 동지冬至, 납일臘日 등이 있다고 합니다.조선시대와 현재를 비교할 수는 없는데 현재 우리는 제사일이라고 해서 공식적으로 휴가를 받지는 않지만 그러나 ⟪경국대전⟫을 보면 조선시대 관리들은 제사일에 적게는 2일에서 많게는 3일, 또는 5일씩 급가給暇, 즉 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시향時享, 즉 묘제墓祭와 사시제四時祭를 지낼 때에도 당연히 휴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리고 부모상을 제외한 각종의 상喪을 당했을 경우에도 적게는 7일에서 30일까지 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이조吏曹의 급가 규정을 보면, 3년에 한 번씩 부모를 만나러 가거나 5년에 한 번씩 조상의 무덤을 찾아가는 데 7일의 휴가, 처와 처부모의 장례에 15일의 휴가, 부모의 병환의 경우 거리에 따라 30~70일의 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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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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