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반은 어떤 신분들이 양반에 속한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양반이란 세대를 거르며 내려오는 신부제 사회의 계층 입니다. 본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등 조상 대대로 신분의 상속이로 이루어 집니다. 물론 양반들고 과거를 통해서 관직에 나가야 하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는다고 양반이라는 상속의 개념이 없어 지는 것은 아니고 유지 됩니다. 다만 , 조선 초기에는 위로 3대가 과거 에 합격하지 못하면 양반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4대 무현관 (四代無顯官)이라고 하는데, 조선 초기 양반의 비율이 적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만 중기로 갈수록 이러한 관습은 폐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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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총리가 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과 한적이 있습니다. 1992년 1월 29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기이치는 참의원 연설에서 과거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정부가 주도해 한국 여성들로 하여금 일본 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한 사실에 대해 사과했는데 미야자와 총리는 이날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마음 속 깊은 사과와 반성을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다만 진정성의 문제 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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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요즘에도 인쇄하기도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팔만 대장경의 마지막 인쇄 시기는 조선 시대는 1393, 1458년, 1500년에 인쇄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최근에는 1865년, 1899년에 각 2부와 4부를 인쇄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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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혼자살라고 한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생 자체가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끝까지 감당해내야 한다. 그것이 삶에 대한 태도이다”라는 게 쇼페하우어의 지론 입니다. 쇼펜하우어는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허망하게 죽어가는 인간의 현실에 일찍 눈을 떴는데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지극히 불완전하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는 이런 세계에 휩쓸리는 염세 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종래 철학자들이 이 세계에서 조화로운 원리를 발견하려고 했다면, 그는 이 세계가 조화롭지 못한 모순 덩어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 세계를 고치려 노력했는데 이는 그의 논리가 결코 현실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통이 있는 현재를 가치 있게 파악하려 했고 고통은 망상이며,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거기에 내용을 만들어 넣는 것은 인간이라는 것이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좌절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다 면서 “삶이 힘들고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을 영위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현실을 인식하는 힘을 길러주고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철학에서 독신주의는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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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녹봉은 품계에 따라 같은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기본적으로 내명부 상궁 등도 일반 관리와 녹봉은 같습니다. 조선 전기의 녹봉은 1년에 4번 주게 되어 있고 액수는 품계에 따라 나누는데 가장 높은 정 1 품은 중미(中米) 14섬, 현미 48섬, 조·보리·밀·콩 등 35섬, 주(紬) 6필, 정포(正布) 11필, 저화(楮貨) 10장을 주고, 가장 낮은 종 9 품은 현미 8섬, 잡곡 4섬, 정포 2필, 저화 1장을 지급 받는데 내명부 녹봉과 일반 관리 녹봉은 같은 종류의 녹봉이지만, 내명부 녹봉은 내부에서만 사용되는 녹봉으로, 일반 관리 녹봉과는 다른 지급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명부 녹봉은 관리의 직위와 성적, 연령, 경력 등에 따라 지급액이 결정되며, 일반 관리 녹봉은 관리의 직위와 성적, 연령, 경력 등에 따라 지급액이 결정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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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으로 최초 외국인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 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 가장 먼저 살았던 외국인은 바로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즉, 왕비라고 알려진 허황후 (허황옥) 입니다. 그녀는 인도 ( 아유타국) 에서 온 것으로 알려 져 있고 한반도 최초의 외국인 왕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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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척사운동은 무슨 운동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말기에 일어난 사회운동으로, 정학(正學)인 성리학과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배격하는(척사) 운동 입니다. 이 운동을 하는 정치 세력을 위정척사파 또는 척사위정파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과도 일맥 상통 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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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페라는 언제, 어디에서 처음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팝페라는 주로 클래식 크로스오버 가수와 연주자에 의해 공연되며 해당분야를 포함하는 음악 장르는 훨씬 더 광범위하다고 합니다. 팝페라는 관현악에 기초한 반주를 사용하며 클래시컬한 느낌이 가미된 음악이 기초가 되는데 팝페라는 1997년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음악 장르로 정착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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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되면서 고려의 왕족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왕건의 후예 오아씨들은 거의 다 몰락 합니다. 태조 3년 순흥군 왕승, 정양군 왕우 일가와 여자, 방계를 제외하고 왕위에 가까운 남자 후손 135명이 삼척, 강화도, 거제도에서 제거되었는데 1차 왕자의난 (무인정사)때 죽은 사람들까지 아울러 놓은 《개성 왕씨 대동보》에 의하면 150여 명이라고 합니다. 제34대 공양왕 중심으로 직계 유력 남자 후손들만 제거한 후, 남은 왕씨들은 외가 성으로, 사성 개성 왕씨들은 원래 성씨로 되돌려서 왕씨만 아니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이 같은 조치로 태조 신성대왕 왕건이래 잦은 사성 정책으로 불어난 개성 왕씨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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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 선물 주는 것이 언제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해 졌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성탄절은 1880년대 개신교가 유입되면서 선교사로부터 지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첫 성탄절은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의 만찬모임으로 기념됐지만, 1893년 선교사 노블 부인이 한국인 부녀자들을 위한 성탄파티를 열어 쿠키와 선물을 나눠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성탄절에 참여하게 됐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것이 성탄절 선물의 유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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