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이미 한양을 점령했는데, 이순신 장군님의 수군과 계속해서 싸운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당시 전쟁은 한 나라의 왕이 잡히거나 혹은 항복을 할 때까지 끝난게 아니였습니다. 비록 한양이 함락 되긴 했지만 선조가 이미 평양성으로 피난을 갔고 그래서 왕이 잡히지 않았기에 이순신 장군이 계속해서 전라도 에서 항전을 할수가 있었 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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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는 왜 참전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방으로 피난간 선조가 명군의 파병을 요청하여 처음엔 3000여명의 군사를 파병하는데 일본군에게 패배하게되고 다시 정세를 파악한 명군이 이여송이 이끄는 5만의 군사를 파병하면서 평양성을 탈환하고 파죽지세의 일본군의 세력을 억제시키는데 기여하게 됩니다. 결국 선조의 파병 요청으로 인해 명나라 참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전쟁터가 자국으로 옮겨지는 것을 두려워해 참전 한 이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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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놀이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달팽이 모양의 놀이판을 그리고 두 패로 나뉘어 먼저 진(陣) 을 점령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달팽이 놀이는 옛날 상대방. 의 진을 빼앗기 위한 싸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상대편의 진지를 빼앗고자 병사들이 정찰을 나가서 상대편 병사를 만나 지혜와 힘을 겨루는데, 이런 과정이 약화되어 가위바위보나 달리기 등의 형식을 빌어 겨루는 놀이가 되었다고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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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업이 있넜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 했는데 그중에 남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편지 대필이 일반적인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고 하는데 이들은 주로 귀족층이나 성직자들이 많았다고 하고 고액의 앳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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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교의 건설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남대교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는 진입로 역할을 해주는 교량으로서 경부고속도로 및 강남권을 서울 도심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1960년대 경제개발과 함께 본격적으로 건설 공사가 시작된 이후 건설된 한남대교는 서울의 강남·여의도·강동 등 서울의 외곽지역 개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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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에서 충청도로 수도를 옮기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수도를 충청도로 옮기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아마도 있었다면 그것은 박정희 정권이 북한 으로 부터의 위협을 느끼고 좀더 안전한 계롱대 근처로 생각을 한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 공론화 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서울의 인구 밀도 문제와 교통 체증 문제 ,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세종 특별 자치시로 행정 수도를 이전 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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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기원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력 12월 25일 즉 성탄절이란 말은 'Christ's Mass'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미사를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성찬 미사를 지행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탄은 '태어난' 또는 '출생한'이라는 뜻의 'Nativity'에서 유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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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아이의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머리 아니란 허니문 베이비의 순우리말 표현으로 '결혼한 뒤에 곧바로 배서 낳은 아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결혼할 때 조랑말을 타고 갔기에 결혼 초기에 생긴 아이란 뜻에서 '말머리 아이'란 표현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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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서 돈자랑 하지 말고 순천가서 인물자랑 말것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이런 표현이 있는데 “언제부턴가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순천에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멋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꼬ㅒ 오랜 동안 남도 지방에 내려오는 속담 처럼 여겨 졌는데 그 만큼 여수에는 멋장이 들이 많았고 순천에는 미인들이 많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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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가 있던 동아시아에선 왜 수염을 기르고 면도문화가 없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권 특히 중국과 한국 에서는 신체는 부모님이 물려 주신 것이라고 해서 함부로 자르는 것을 피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면도나 이발 문화가 발달 하지 않았고 그래서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길러서 상투를 묶고 다녔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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