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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복의 흉부 문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왕 뿐 아니라 관리들의 관복에 새겨진 무늬를 흉배 문양 이라고 합니다 . 단종때에는 문무 당상관만 품수에 따라 명나라를 따라 사용하기로 하고 왕 오조용 보 (다섯 개의 손톱이 달린 용), 왕비 오조용 보, 봉황 방보왕세자 사조용 보, 왕세손은 삼조룡 방보(方補:4각형의 보), 대군(적자)를 신비한 동물인 기린 (용, 거북, 봉황과 더불어 사령수에 속하는데 수컷을 기 암컷을 린이라 한다고 합니다) 제군(서자) 만물의 정을 통한다는 상상의 짐승인 백택 , 도통사 용감한 사자, 대사헌은 정의를 상징 하는 해태 등의 동물 등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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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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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는 폐허가 되었던 만리장성을 본격적으로 재건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나라에 이르러 제11대 세종 가정제 때 몽골족의 알탄 칸에게 베이징이 포위되는 사건(경술의 변)이 일어난 후 몽골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12대 목종 융경제 때가 되어서야 현재와 같은 벽돌을 이용한 장성의 형태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 나라의 영역이 기존 한나라의 영역보다 상당히 남쪽으로 축소되었으므로, 사실상 장성을 신축해야 하는 데다가 공법의 변화까지 겹쳐서 장성의 재 건설은 장기간에 걸쳐서 천천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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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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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젓갈의 유래와 역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젓갈의 기원은 음식의 발효의 역사와 깊은 연관을 지니는데 음식을 발효시키는 것은 인도, 베트남, 타이 등 더운 지방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지역의 무더운 기후로 인해서 채집, 수렵 등을 통해 얻어진 음식 중 남은 것은 쉽게 상하여 버려졌기에 일부 사람들은 그 상한 듯 보이는 음식이 자연적으로 발효가 되어, 새로운 맛을 지닌 음식이 되는 것을 발견하였고 농업 지역에서는 콩을 이용한 발효 음식이 발전하였고, 어업 지역에서는 해산물을 이용한 발효 식품이 점차 나타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젓갈에 관한 현존하는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최고의 자서(字書) 중의 하나인 《이아(爾雅)》로 기원전 3세기에서 5세기 경에 기록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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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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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차세계대전 일본에게 공격맞고난 후 연합국참전하는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은 일본과 먼저 태평양 근처 괌과 필리핀 등지 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시작 합니다. 그리고 1944년에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통해 유럽의 독일과도 잔쟁을 합니다. 미국이 일본과 먼저 전쟁을 한 것은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복수 차원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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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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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만드는 데 있어 작곡가와 작사가 중 어디가 더 비중이 높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래가 어떤 종류의 노래인지에 따라 가사가 먼저 들어 오는 경우도 있고 멜로디가 먼저 들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슬로우 곡의 발라드 같은 경우에는 가사 하나 하나가 마음에 와 닿을 수도 있고 비트가 좀 빠른 곡인 경우에는 리듬과 멜로디가 먼저 다가올 수 있기에 작사와 작곡 중에서 머가 더 중요 하다고는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작사가와 작곡가의 저작권료 배분도 보통 5:5 비율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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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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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부터 사회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가 처음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것은 약 50만년 전이라고 합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불을 쓸 줄 알았던 최초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자바 섬이나 중국의 뻬이징 (北京) 부근에서 화석이나 뼈 등이 발견됨으로써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한 유물이나 화석은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를 위시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된 벽화를 보면 원시인들은 일찍부터 사냥을 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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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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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공화국에서 단군을 실존인물로 보는이유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식민사학 역사 관점에서는 단군 교육으로 단군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국권이 피탈되기 전인 대한제국의 역사교과서를 보면 단군은 실존 인물 입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도 단군은 실존 인물로 인식하였다고 합니다. 1907년 대한제국에서 만든 역사교과서인 <대한역사>에는 "환인 (桓因)이 환웅 (桓雄)을 낳고, 환웅이 왕검 (王儉)을 낳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왕검이 성스러운 덕 (聖德)을 지녀서 왕으로 삼으니 단군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북한의 교육도 이러한 관점에서 단군이 실제 인물이라고 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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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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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건국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의 건국 시기는 사서에는 신라->고구려->백제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라는 B.C. 57년, 고구려는 B.C. 37년, 백제는 B.C. 18년의 순서로 되어있는데 사실 좀 이상한 부분이 왕권의 강화나 불교의 공인 그리고 기타 고대 왕국으로 가는 모든 순서가 사실 고구려-백제-신라 순이였습니다. 불교의 공인도 , 한자의 도입도, 영토 확장까지 전부 다 고구려가 제일 먼저 였다는 점을 보면 아마도 고구려- 백제 - 신라가 맞는 순서 라고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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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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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부를때 태종,정종,영조 이런거는 사후에 짓는다는데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이 죽은 후에 짓는 이름을 묘호라고 합니다. 묘호는 의정부·육조·집현전·춘추관·사헌부·사간헌 등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 왕의 재위 시 행적을 따져 정하는데 태조부터 문종까지는 아직 왕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해 사후 한 달이 지난 후에 정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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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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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최씨의 악행이 어느정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희빈은 출신이 천한 궁녀 출신이지만 인형 왕후를 몰아 내고 중전의 자리에 까지 올랐지만 다시 숙종은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옥정을 희빈으로 강등시켰다고 합니다. 별당으로 돌아온 장희빈은 분통이 터졌을 것이고 그래서 처소 한켠에 신당을 차려놓고 굿에 몰두했다고 하면서 인형에 바늘을 꽂고 초상에 화살을 쏘는 저주의 굿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얼마 후 인현왕후는 종기로 고생하기 시작했다는데 조선시대에는 종기가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중전은 아파서 거동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고 장희빈의 처소에서 굿소리가 들린다는 귀띔을 받자 인현왕후는 저주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었고 중전이 죽으면 희빈이 복위할 거라고 생각한 궁녀들이 협조를 거부한 탓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장희빈은 중전을 저주 할 정도로 시기와 질투가 강한 여자 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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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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