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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량역천을 하던 사람들의 대우가 어땠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가는 양천 신분이 분명하지 않을 때 양인 신분을 인정하면서 그들을 특수한 직임에 충당시켰는데 사재감수군(司宰監水軍)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맡은 직임이 몹시 고되었으므로 천시되었고 이후 수군은 마침내 신량역천이라는 한 계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중앙 관서 및 종친 · 관리들에게 배속되어 수종(隨從) 호위 · 사령 등 잡역에 종사하는 조례(皂隷)중앙의 사정 및 형사 업무를 맡은 관서에 소속되어 경찰 · 순라 · 옥지기 등 잡역에 종사하는 나장(羅將), 지방의 각 읍이나 역에 소속되어 사객(舍客)의 지대를 맡았던 일수(日守), 조운에 종사하는 조졸(漕卒)봉수대 위에서 기거하며 후망과 봉수 업무를 수행하는 봉수군, 역에 소속되어 역역(驛役)을 세습적으로 부담하는 역졸(驛卒)등이 바로 이런한 사례에 해당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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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제조업 부활에 총력을 다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인 '미국 제조업 리더십' 부활이 빠른 물살을 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의 제조화는 아니고 제조 단가가 비교적 높고 기술 집약적인 산업,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 등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공급망 안전과 비용 절감 등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탈중국과 미국귀환'이라는 연쇄현상이 손에 잡힐 정도로 선명하게 현실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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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의 주식 수량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주식 발행수는 금융 당국이랑은 무관 하며 이미 법인 설립시에 정관에 나와 있습니다. “주식발행사항”이란 정관의 절대적 기재사항 (① 회사설립 시에 발행하는 주식의 총수와 ② 1주의 금액) 외에 자본금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하는 것으로서, 회사설립 시에 발행하는 주식에 관한 다음의 사항에 대해 정관에 다른 규정이 없는 경우 발기인 전원의 동의로 결정하는 사항을 말합니다. 보통 정관에 기록된 주식 수의 10-100배 정도 사이에서 발행 하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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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백제는 고구려 지배층으로부터 나온 국가가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가 고구려의 왕족에 의해서 건국 되었다는 기록은 초기 고려 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부식의 《삼국사기》기록에 실린 온조 설화에 따라 기원전 18년에 부여 계통의 이주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민의 결합으로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 주몽왕과 소서노의 아들이며, 최초의 이름은 십제였습니다. 물론 부여의 후손이 백제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러한 공식 기록은 없습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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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아시아의 중국중심 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책봉 관계(상명하복관계가 아닌, 의례적인 외교형태)에 있는 나라에 대해서만 조공무역을 허용했습니다. 중국적 조공질서의 동심원 안에 들어온 조선(매년3공)과 유구(琉球,지금의 오키나와 격년1공), 월남(3년에 한번조공)은 중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국가들의 일원이었습니다.반면, 일본은 극히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동아시아 제국 중, 특히 조선과 비교하며 중국에 조공을 바치지 않은, 중화 질서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던 유일한 나라인 것처럼 자국의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지만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이 그렇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중국에 의해서 문화 수준이 떨어 지는 나라이니 그 문화권에 낄수가 없던 것 입니다. 대신 일본은 16세기 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칩니다. 즉 중국과는 맞상대로 상대가 안되는 조선 밑에 있던 나라였던 것 이지요.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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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존재가 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것이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조선에 대한 우리나라의 최초의 기록인 《삼국유사》는 2가지 계통의 기록을 통해 고조선의 사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위서》를 인용하여 요(堯)와 같은 시기에 건국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 기록으로는 송나라 때 사신으로 요나라에 갔던 왕증이 송의 변경에서부터 요나라 중경까지의 중간 경유지를 적은 글인 <왕기공행정록>에“조선하(朝鮮河)를 건너서 고북구에 당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지은이는 두 기록에 나오는 ‘조선하’가 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동쪽을 흐르는 조하(潮河·차오허)이며, 조선(고조선)이 있었던 지역이기에 송나라 때까지 조선하로 불렸다고 주장합니다. <무경총요>에는 ‘유주’(현 베이징 일대)의 “동쪽에 조선·요동이 있다”는 기록도 있는데 또 송나라 학자 낙사(900~1007)가 편찬한 지리지 <태평환우기>에는 “루룽(노룡)현에 조선성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지은이는 이 루룽현이 오늘날 허베이성 친황다오(진황도)시의 루룽현이라고 본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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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마지막 황제가 황제자리를 박차고 만주국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의 선택이 아니라 일본이 중국 과의 전쟁 이후에 만주국이라는 명목상의 국가를 만들어 이의 통치를 푸이에게 맡긴 것 입니다. 어쩔 수 없이 1931년 9월 만주국의 집정관이 되지만 이에 대한 통치는 사실상 일본인이 하게 된 것 입니다. 그는 그냥 허수아비 왕이 였습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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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동서 냉전의 최절정에서 소련의 최고 지도자였음에도 탈냉전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직감하고 과감한 개혁·개방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즉, 소련도 변화가 필요 하다는 것을 누구 보다더 잘 직감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정치의 흐름을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본 안목이 있는 사람 이였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경제적으론 개혁·개방을 추구해야 평화를 지향하는 대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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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無爲)의 지혜'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위의 반대 개념인 인위는 어떠한 의도나 욕심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집착하면 잃게 되고 삼가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고 합니다. 성인은 억지로 하지 않으니 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니 잃지 않고, 욕심이 없기를 바라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잔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는것 입니다. 만물이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구태여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 무위입니다. 인위와 무위의 차이는 겉모습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억지로 하느냐 기꺼이 하느냐와 욕심과 의도를 가지고 하느냐 자연스럽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면면히 헤아리고 성찰할 때에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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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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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때리기'라는 표현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란 논증의 한 종류이며, 동시에 상대방의 입장을 곡해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형식적 오류입니다.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이라는 말도 쓰이는데 꼭 상대방이 한 말만이 그 대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평소의 여러 개인이나 집단의 주장이나 사회적 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뭔가 생각을 하고 공격이나 반대를 하는 경우에도 허수아비 공격은 얼마든지 행해질 수 있습니다. '허수아비 공격'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모른다는 부분입니다. 그런 것을 스스로 느껴보고 떠올려 볼 수 있는 경험치와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대방은 혹은 상황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르게 하고 있는데 나는 나의 생각으로만 파악하고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학문 /
문학
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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