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56년 그리스의 북방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합니다. 그가 13살이 되던 해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초빙되어 그에게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가르쳤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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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이름과 현재이름이 많이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름도 언어 이기 때문 입니다. 언어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 지고 유행을 탑니다. 이름도 언이이기에 잘 쓰는 단어가 있고 안 쓰는 단어가 있습니다. 2000년도 전까지는 한문 이름이 많았으나 요즘은 우리말 이름과 영어 이름들이 늘어 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유행을 타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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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은 어느 병원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로 세브란스의 전신인 제중원 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에 뿌리를 둡니다. . 의료선교사 알렌의 제안으로 1885년 문을 연 제중원은 ‘널리 베풀어 사람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제중원은 왕실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진료하는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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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이후 단 한 번도 북한의 원수가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은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깅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권력은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를 배행기로 가는 것도 무서워 철도로만 가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 나라에 오면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올수가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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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마야문명은 어떤 문명이었고 사회적인 계급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 남동부에서 중앙아메리카 북부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서 번성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는 유카탄 반도 전체와 현재의 과테말라, 벨리즈가 속한 영역들이 포함되어 있고,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서부 지역이 속하는데요. 대부분의 지역들은 낮은 해안선을 갖고 있으며, 몇몇 산과 고원들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거대한 평원 지형마야 문명에서는 인종적 계급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급은 주로 권력자와 그의 가족, 관료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외에 일반 시민들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인종적 계급은 주로 권력자와 그의 가족, 관료 집단들이 가지고 있는 특권과 권력의 분배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마야 문명에서 식량 부족이나 인력의 제약, 환경적 위험 요소 등의 문제로 인해 계층화된 사회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며, 권력자는 이러한 위험과 문제를 해결하면서 권력을 확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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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왜 금관이라고 불리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이 금은 보화 가 아니라 쇠금 자를 써서 우리말로는 '쇠나라'로 읽힌다고 합니다 .이는 왜 (倭)와의 교역에서 가야의 주요 수출품이 쇠(鐵), 즉 철기였기 때문이었임을 추정할 수 있으며, 금관가야란 이름이나 삼국 사기 에 기록된 금관국(金官國)이란 이름 역시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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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언제 처음 oecd를 가입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한국은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개방 압력을 피할 수 없었는데 이미 80년대 말부터 OECD가 한국의 OECD가입을 촉구해왔지만, 시장개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점차 무역 갈등이 커지자, 한국정부는 90년대 초 세계경제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OECD 가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는데 대한민국 은 1996년 12월 12일 회원국으로 OECD에 가입하였다고 합니다. 2016년 12월 16일 에는 OECD 노동조합 자문 위원회로부터 회원 자격에 대한 경고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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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중국은 언제 국교가 수교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다시 맺은 것은 1992년 8월 24일 입니다. 한국 이상옥 외무장관과 중국 대표 첸지천[錢基琛] 외교부장은 북경 영빈관에서 한중 선린우호 협력관계 합의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 등으로 6개항의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교환했습니다. 하지만 한중수교의 후속 조치로 중국이 요구한 한국과 대만의 단교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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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었는데요 갑작스럽게 실시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 민국 정부는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자 하였는데 특히 1982년에 발생한 거액 어음 부정사건(이철희 ․장영자사건)은 건전한 금융 및 경제 질서의 중요성을 일깨워 금융 실명제 추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1982 년 7월 3일 금융실명화조치가 발표되고 그해 말에「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1994년에 실시 된 것이 하루 아침에 된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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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 wto의 출범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General Agreement of Tariffs and Trade)’입니다. 가트(GATT)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23개국이 제네바에서 모여 관세를 논의한 이른바 ‘제네바 라운드’를 시작으로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까지 모두 8차례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참여국도 늘었고, 협상 주제도 관세와 비관세, 반덤핑 조치, 지식재산권, 서비스, 무역 규범 등 폭넓게 다뤄졌습니다. 특히 125개국이 참여한 우루과이 라운드는 각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1986년부터 1993년까지 협상에 협상을 거듭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무형의 협정 체제인 GATT와는 달리, 실질적인 조정 기구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됐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게 된것이 배경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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