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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실제 이순신이 고안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북선은 고려시대에 개발되었던 군함인 과선(戈船, 배에 창칼을 박아 적의 침입을 막음)과 고려말의 검선(劍船)을 참고한 듯합니다 그 후, 묻혀 있던 것을 새로운 형태로 부활시킨 것인데 흔히 많은 사람들은 거북선을 누가 설계하여 만들었냐고 물어보면 이순신장군이라 하지만 거북선은 이순신장군이 아니라 그 부하 장군인 나대용이 고려시대의 과선을 참고 해서 디자인한 새로운 전선 입니다.
학문 /
역사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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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비는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조선에도 수학이라는 것이 존재 했습니다. 고려시대의 왕릉인 칠릉떼와 조선시대의 왕릉인 건원릉과 제릉에서 우리는 황금비와 금강비가 의도적으로 사 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따라서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우리 조상들은 무리수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리수를 왕릉의 건축에 활용하고 무량수전이나 석굴암 등에 활용하여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 던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의 수학 실력은 대단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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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세금을 걷으면 세금은 왕실의 재산에 귀속되나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왕실의 재산은 왕실에서 별도로 관리를 합니다. 예를 들어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들은 왕이 되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내탕금 이라고 해서 별도로 관리를 했습니다. 왕의 사유 재산만 관리를 하던 곳을 바로 내수사 라고 합니다. 보통 내시들이 관할 하는데 왕의 엄청난 재산을 관리도 하고 또 그 돈을 부리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인삼이나 독점으로 거래를 할수 있는 아이템들을 비싼 가격으로 사고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형태로 왕들의 개인 재산은 어마 어마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담배 인삼 공사같은 국가 기관을 자기 재산 관리소로 사용 했다고 보면 됩니다. 조선 말 조선 황실의 재산이 지금돈 수천억원에 해당 한다는 말에 신빙성이 더해 지기도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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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국이 한국조선 보다 많이 수주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이지 작년에 중국의 조선업이 하국을 넘었습니다. 중국 조선업계가 2022년 조선업 3대 지표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중국 조선협회 (CANSI)는 작년 기준 11월 말 현재 중국은 선박 건조량이 세계 시장의 45.5%, 신규 수주량이 53.1%, 수주 잔량이 48.5%를 각각 차지해 3개 분야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미 중국의 조선 건조 능력은 전 세계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이 30% 안팎으로 2위, 일본이 17% 정도로 3위 입니다. 세계의 배는 사실상 한국 중국 일본이 만들고 있는 셈인데 중국이 조선업에서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무엇보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해준 힘이 크다고 합니다. 3대 조선기지 (발해만, 장강, 주강 유역)가 완공되면서 중국의 건조 능력은 2002년 8.7%에서 2013년 39.4%로 치솟았다. 한마디로 눈부신 성장세 입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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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금본위제 화폐 제도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기축 통화국인 미국이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 (닉슨 쇼크)하며 금본위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이후 세계 화폐 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 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되었는데요 금 본위제가 폐지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금 공급이 제한적일 때 고정 환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무역을 통해 채굴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금의 양은 발행할 수 있는 화폐의 양을 제한했고 경제가 성장하면 돈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지겠지만 이를 뒷받침할 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경제 /
예금·적금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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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흑인의 기록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흑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 5월 26일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온 지원군 중에는 흑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흑인 병사를 본 선조와 사관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데 “일명은 해귀(海鬼)인데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머리이고 검은 양모(羊毛)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이마는 대머리가 벗겨졌는데 한 필이나 되는 누른 비단을 반도(磻桃)의 형상처럼 서려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 밑에 잠수하여 적선(賊船)을 공격할 수가 있고 또 수일 동안 물속에 있으면서 수족(水族)을 잡아먹을 줄 안다. 중원 사람도 보기가 쉽지 않다.”
학문 /
역사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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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청동 작품은 보통 몇 개까지 만드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조각상이나 판화 등의 작품에서 그 원작의 수를 에디션( EDITION) 이라고 하고 그 작품수마다 작품번호인 NUMBERING ( 넘버링) 을 합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12개의 에디션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품 번호도 1-12까지 넘버링이 달려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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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같은 고전을 왜 춘향뎐으로 쓰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傳( 전할전) 이라는 단어가 예전 에는 " 뎐하다" 라고 발음을 했습니다. 아마도 조선 시대에는 중국어에서온 단어를 최대한 우리말과 비슷하게 발음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즉, 傳 이 단어는 중국어로 "quan" 츄안 이라고 읽고 발음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 발음에 가장 가까운 발음으로 "ㅈ"이 아닌 "ㄷ"을 선택 해서 "뎐 " 이라고 쓰고 중국 발음인 츄안에 가장 가깝게 발음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것이 ㄷ 이 ㅈ으로 바뀌면서 전 으로 표기가 된것으로 보입니다.
학문 /
역사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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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리볼빙증가가 왜 위험신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신용카드 사용 자체가 신용으로 물건이나 재화를 구입 하는 것인데 그 신용카드 결재를 못해서 리볼빙 서비스로 일시불 혹은 카드 값의 일부만 결재를 한다는 것이 바로 리스크를 올리는 것 이기 때문 입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리볼빙 서비스는 또 하나의 대출이 되는 셈 입니다.
경제 /
대출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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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용카드(직불카드)를 언제부터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적으로 신용카드를 창안해 낸 사람은 1950년대 뉴욕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 입니다. 그는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비용을 지불하려다가 현금을 소지하지 않아 불편을 겪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 바로 세계 최초 신용카드인 다이너스 카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신용카드가 가장 최초로 나온 것은 하나카드의 전신인 외환카드가 1978년 1월 비자와 신용카드 사업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1978년 4월 신용카드를 발급하며 시작됐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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