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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야라는 나라는 여러개의 가야로 나뉘어져 있었다던데 왜 역사기록에는 나라로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는 고대 부족 연맹체 이지 고대 국가로 분류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중앙 집권 체제의 강력한 왕권이 없었고 율법등이 정비 되지 않았으며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등이 없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가야는 고대 국가인 고구려, 백제, 신라로 이루어진 3국시대에 끼지 못하는 이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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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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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신문은 어디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대신문의 효시는 1896년 4월 7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으입니다. 독립 신문은 순 국문과 영문의 격일간(隔日刊)으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광고를 다룬 신문이었고 또 최초로 외국인에게 국내여론을 알린 신문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 2년뒤에 정부 기관지인 < 한성 순보> 등이 발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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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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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하멜의 삶은 어떠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에 표류 한지 10년이 넘어서 강진에서 여수로 가게 된 하멜은 그러나 여수 지방관의 괴롭힘에 그들은 조선을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한다고 합니다. 뿔뿔히 흩어진 하멜 일행 하멜은 탈출할 배를 사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친하게 지내던 이웃하게 배 한척을 사서 목화를 구해오자고 말해 배 한척을 구하게 되는데 다른 지역의 동료와 함께 총 8명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생활이 많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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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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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학 뿌리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철학의 뿌리를 굳이 찾는 다면 아마도 유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입니다. 유교는 한국에 전확치는 않지만 한자가 전래된 시기에 더불어 자연스럽게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 시대 때, 당 나라의 학제인 국학 을 받아들인 때를 그 기원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유교란 역사적으로 한국에서 받아 들여지고 발전한 유교의 형태를 가리키며, 조선 시대 들어서는 나름의 독자적인 사상체계로 발전하고 자리잡아 가게 되고 현대에도 우리 생활 양식에도 유교적인 문화를 찾을 수 있기에 가장 오래된고 기본적인 뿌리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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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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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한 번도 중국 북경 지역을 점령한 적이 없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민족은 단 한번도 북경 지역을 침범 한 적은 없습니다. 광개토 대왕 떄 요동 및 요서 지역은 점령을 한 적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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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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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40년과 1856년 두 차례에 걸쳐 대영제국과 청나라의 무역수지 문제로 일어난 전쟁입니다. 당시 영국은 중국의 차를 수압하는 조건으로 중국에 은화로 결제를 하였는데 이러한 막대한 양의 은화가 계속 청으로 유출되는 것을 영국이 다시 회수하기 위해 은화 대신에 청에 아편을 살포한 것이 원인이 되서 생긴 전쟁 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패배 했고 홍콩을 영국에게 내준 결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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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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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조 때 장용영을 따로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용영 설치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권 강화 입니다. 왕권 강화를 위해 1782년 명하여 무예출신(武藝出身)과 무예별감(武藝別監) 중 장교를 지낸 사람 30명을 뽑았다고 합니다. 1785년에 추가로 20명을 뽑아 장용위(壯勇衛)가 발족되었고 이것이 장용영이 설치된 시초인데요. 장용영의 설치 목적은 정조의 호위문제보다는 조선의 국방체제 개혁과 군영통합으로 인한 지휘체계 및 군사일원화 입니다. 당시 조선은 중앙의 오군영체제로 운영되었는데, 문제는 이 오군영 체제가 체계적인 계획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기관이다보니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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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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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제와 민며느리제의 공통점과 차이점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의 부족국가인 옥저에서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문화였습니다. 여자가 10살이 되기도 전에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마치 민머리처럼 머리가 없는 어릴 때 여자가 며느리가 된다고 해서 민며느리제라고 합니다. .며느리를 보내는 집은 가난한 경우가 많았는데 딸을 기를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반대로 민며느리를 데려오는 남자 쪽은 부자인 경우가 많았고요. 부자들은 오히려 집안 살림이 많으니 일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렇게 신부가 성인이 되면 잠시 친정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남편은 신부를 다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돈을 냈다고 합니다. 반대로 고구려에서는 여자 집에서는 남자가 오랜 기간 동안 살면서 열심히 농사도 짓고, 힘든 집안일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옥제라는 혼인 문화는 사위를 데리고 와서 산다고 해서 데릴 사위제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렇게 옥저와 고구려는 같은 시기의 이웃 나라였지만 서로 반대되는 혼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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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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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미술 특징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니 미술은 열정적이고 또한 무엇보다도 환상적이고 다채로운 색감이 가장 눈에 띈다고 합니다. 남미의 아름다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비교적 몽환적이고 푸르른 자연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인지 색감이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또한 시대 상황과 사회 비판적 요소의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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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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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동대혈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동대혈은 국내성 동쪽에 위치한 지금은 중국 땅에 위치한 암석동굴인데 굴 어귀는 동남으로 향하였고, 높이 10m, 너비 25m, 깊이 20m입니다. 큰 굴 앞에는 평평한 대가 있는데 그 면적은 약 30×20 평방미터로서 능히 100여 명이 활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굴의 깊이는 16m이고 굴의 밑은 평평하고 굴의 천장은 궁형으로 되어 있어 이를 통천동(通天洞)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에서는 이 동굴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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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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