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고구려벽화 문양등에는 삼족오가 많이보이는데요 삼족오가 상징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족오(三足烏) 또는 세발까마귀는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 속에 산다고 여겨졌던 전설의 새입니다. 해를 상징하는 원 안에 그려지며, 종종 달에서 산다고 여겨졌던 원 안의 두꺼비에 대응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중국의 양사오 문화, 한국의 고구려 고분 벽화, 일본의 건국 신화 등 동아시아 고대 문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동양문화권에 삼족오가 있다면 서양에서는 피닉스가 있지요. 불사조로 불라는 피닉스는 아라비아 사막에 살며 500년마다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죽고 그 재 속에서 부활 또는 재생한다는 전설의 새입니다. 고구려군 깃발의 문양으로 흔히 등장하는 삼족오를 고구려의 고유한 상징 문양으로 오해하는데 머리에 볏이 있는 삼족오는 한국 고유의 삼족오가 맞지만, 금관, 백제금동대향로 문서에 있는 사진처럼 볏이 달린 새로 하는 장식은 신라, 백제에도 있어서 볏이 오직 고구려만의 상징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며, 고구려의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삼족오는 그냥 후손들이 하나의 문화 재해석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까치 까마귀가 얼어죽었다 라고 표현하는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까치나 까마귀는 아무리 추워도 얼어죽지 않습니다. 몸의 온도를 조절하는 열교환기가 바로 발가락에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영하 40도의 혹한에서도 남극의 펭귄이 얼어 죽지 않는 이유도 몸에서 나오는 열을 지방층으로 열차단재 역할을 하는 털로 덮고 있고 또 그 열을 발가락으로 방출해서 몸의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 하기 때문입나다. 대부분의 새들이 이와같아서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얼어죽지 않는 이유입니다. 까치가 얼어죽었다고 하는 말은 어린이들이 아침에 춥다고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을때 어른들이 아이들을 깨우기위해 하던 농담으로 생각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파시즘이란 무엇인가요? 오늘날에도 다시 등장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파시즘이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나타난 대중 정치와 대중 동원에 기초하여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 정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정치적 행동이자 체제를 말합니다. 무솔리니는 원래 사회주의자였으나 그닥 사회주의가 이탈리아 국민들로부터 반응을 얻지 못하자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2차대전에 이태리도 참가하게 만듭니다. 결국 파시즘은 성공 하지 못했고 이탈리아는 패전국이 되었지요. 오늘날에도 일본과 같은 나라는 극단적 우익을 지향하는 나라입니다. 민족주의를 내새워 자위대를 양성하고 욱일기를 여전히 신성시 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등 현재로서 파시즘이 다시한번 등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일본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히틀러와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상관관계 질문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히틀러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새벽에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것도 사실 이였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성공한 더 중요한 요인은 연합군은 당시 이중첩자와 가짜 탱크 및 전투기 등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연합군이 노르망디가 아닌 파-드 칼레 지역에 상륙하려는 것으로 보이게 끔 기만 작전을 폈다는 점입니다..독일군사령부는 1944년 5월 일선 장군들에 보낸 전문에서 북프랑스나 벨기에 지역을 지적하며 "적들이 이들 지역에 상륙할지 아직 불분명하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암호 해독등을 통해 연합군의 전확한 작전 내용을 도청 하던 독일군이 연합군 상륙작전 수 주 전인 상황에서 아직 상륙지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는 곧 연합군의 교란 작전이 성공적이 였음을 의미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신항로 개척이 유럽의 제국주의에 영향을 미쳤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프란시스 페르디난드대공 의 암살이였지요. 하지만 경제적인 요인은 질문자꼐서 지적하신대로 식민지 쟁탈전이 이유였습니다. 1871년부터 본격화된 국가들 사이의 산업적·상업적 반목관계에 이었는데 가장 첨예하게 경제적으로 대립된 국가는 바로 영국과 독일이었지요.독일은 1914년경 영국의 경제를 따라잡아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는데요. 독일의 제품이 해운업에서도 세계를 제패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독일에 라이벌 관계를 가진 국가는 프랑스였는데 프랑스의 풍부한 철광산지 로렌이 망하자 독일의 산업은 더욱 크게 성장하였다고 하지요. 또 러시아와의 반목을 들 수 있는 데 러시아는 콘스탄티노플과 터키의 몇 지역들을 탐내고 이었는데요. 그런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오토만제국을 그들의 상업구역으로 계획하고 있어서 양자의 충돌은 불가피했던 것이였지요. 마지막으로 독일과의 반목은 프랑스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는데 양국은 모로코에서의 광산자원과 무역기회를 가지려는 문제를 놓고 대립했습니다. 또 다른 경제적 원인은 베를린·바그다드 철도부설문제였습니다. 이 철도의 부설은 보소포루스(Bosporus)에서 티그리스강의 바그다드까지 이루는 노선의 완성을 의미하고 이것은 다시 바그다드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이어지고 있어 인도에까지 가는 단축노선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은행가들과 공동자본투자에 의해 실시하려 하였으나 양국간 각각의 이해관계에는 맞지 않아 거절하였으나 독일은 375마일 철도선을 강행하여 국제적 반목을 일으킨 것입니다. 거기다가 미국까지 참전하게 되면서 유럽 국가들간의 전쟁이 세계 대전으로 확전 되게 되는 것이였지요.
평가
응원하기
베트남사를 공부하다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본과 프랑스의 베트남에서의 협력은 당시의 프랑스 상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가능 합니다. 1940년 6월 프랑스 국토의 절반 이상이 나치독일의 점령 하에 놓이고, 비시에 수도를 둔 페땅(Henry-Philipe Petain)정부가 독일과의 협력을 선언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정세에도 변화가 찾아왔고 이 변화를 주도한 세력은 일본이였습니다. 일본은 중국 침략 이래 오랜 숙원을 이 기회에 해결하고자 했고 일본은 “대중국 작전 기지를 설정함과 동시에 중국측 보급연락로 차단 작전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1940년 6월 27일 인도차이나를 통과하는 장개석 원조물자 수송 금지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정부에게 요구했습니다.인도차이나총독이 이러한 일본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서 두 제국간의 협력관계가 설정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볼수 있지여. 당시 본국자체가 독일과의 전쟁으로 정신이 없던 상황에서 프랑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후로 계속해서 일본은 베트남에서 그 세력을 넓혀갔고 군량미를 베트남에서 계속 가져 감으로써 베트남에 쌀이 모자라 수백만의 베트남인들이 아사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여인들을 정신대로 끌고 가기도 했지요. 후일 2차대전후에 베트남 공산당 들은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대사관 직원들을 다 죽여 버리는 사건이 일어 나기도 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대출금리 중 변동금리와 고정금리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겁니다. 대출금리도 그 추이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본인이 대출금리 추이를 대략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위험을 감내해야 합니다. 앞으로 금리가 올라가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지금 당장 낮은 이자 부담을 원하시면 변동금리를, 지금 당장 부담하는 이자가 다소 높더라도 금리가 올라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면 고정금리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내년 초까지 미국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이머징 국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신흥 성장 국가인데 보통, 이머징(emrging)국가라고 하면, 우리나라, 러시아, 중국, 대만, 브라질, 타키 등을 이야기 하며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이머징 국가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는 이제 이머징 국가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속했다고 볼 수 있기에 이제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기도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정의의 여신상과 우리나라 정의의여신상의 차이를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은 오른손에는 저울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에는 법전을,옷은 한국 전통 의복을 입고 있습니다.그리고 서양의 다른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눈가리개가 없이 눈을 뜬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국가의 정의의 여신상도 각기 다양한 문화에 맞는 정의의 여신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여신상은 법전 대신에 칼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또 칼을 위로 혹은 아래로 향하게 드는 등 각기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은 각 문화마다 각기 다른 점을 강조하기 떄문이며 눈가리개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눈가리개는 오히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법전과 저울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눈을 가리고 공평하게 법을 처리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굳이 눈가리개를 하고서야 법을 정의롭게 대할 수 있다면 그건 정의의 여신상이 아니라 정의의 여인상이라고 할수 있을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눈 가리개는 법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서 전혀 문제 될것 이 없다고 봅니다.
평가
응원하기
과거 시대에도 보험이라는 것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험은 서양에선 세계적으로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 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보험은 없었지만 계가 그 효능을 대체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계는 "어떤 목적을 수행.달성하기 위하여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약속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알려져 있는데 목적에 따라 결성되는 계는 목적의 숫자만큼 종류도 무척 다양합니다. 상호부조계, 친목계, 저축계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상례나 혼례처럼 큰일을 치를 때는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것을 상호, 동창계 등이 있고, 목적지향형 친목계는 여행계와 관광계, 보신계, 온천계 등이 있지요. 계'는 상고시대부터 있었으며,혼인잔치와 환갑잔치에 일손을 제공하는 혼인계와 환갑계, 상례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조관계, 마포계, 쌀계, 막걸리계, 소주계 등도 있구요. 상호부조계가 집을 단위로 하는 것이라면 친목계는 개인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친목계는 순수 친목계와 다른 목적을 띄면서 친목을 다지는 목적지향형 친목계로 나눌수 있구요. 순수 친목계는 친목계, 동갑계, 부부계사조직체인 향도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지요. 사상 · 감정 · 생산 등 생활 양식이 같은 분야에서 성립되어 모든 행사를 공동으로 하는 풍습이있었습니다. 이 풍습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면서 몇 백 년 동안 여러 종류의 계가 조직되어 민중 속에 자리잡았지요. 하나의 사회조직으로서 계의 형태·기능을 보는 것은 농촌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계의 성격에는 마을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 계의 형태와 기능의 변모는 농촌의 사회와 문화의 변질을 보는 데 좋은 지표가 된다고 합니다. 이들 계의 주요 기능은 농민들이 일시에 큰 돈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마을의 큰 행사나 문중행사·부락제·혼인·환갑·초상을 당할 때 계원끼리 물질적으로나 노력으로 상호 부조하며 친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물론 계의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첫돌과 혼인·환갑·장사·제사에는 가까운 친척과 친지, 마을사람들간에 돈과 음식·기념품·노력(勞力) 등을 증여의 형식으로 주고 받는 일도 많구요. 이러한 협동생활은 도시보다 농촌에서 훨씬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한 공동체의식도 더욱 공고(鞏固)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계를 통하여 보험을 대신하여 생활을 하며 만일 닥칠 사고나 위험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