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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상궁이 죽으면 유족들에게 보상을 해주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기미상궁이 죽으면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겠지요. 하지만 조선실록 그 어디에도 기미상궁이 기미를 하다가 죽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기미상궁이 먹는 음식의 양이 얼마되지 않고 설사 독이 있더라도 그렇게 소량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까요. 물론 인조24년 1626년 1월3알 수라상에 독이 들은 것을 발견했다라고 기록에는 나와 있지만 이 당시에도 아마 기미상궁이 음식을 맛보고 몸에 이상이 생겨 다시 확인 후에 음식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것이지 기미 상궁이 죽어서 독이 확인 된것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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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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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관련 인문학을 요즘 관심가지고 있는데 관련된 서적을 찾고있습니다. 추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대전 관련한 장편 소설같은 작품은 많이 있겠지만 2차대전을 약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인문학 작품 한 권을 소개해 드리려합니다. 바로 말콤 글래드웰의 <어떤 선택의 재검토> 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2차대전중 연합군이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를 통해 약 10만명이 죽게 만드는 사건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양심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게 과연 헙리적 선택이였을까 하는 인간적인 질문을 던짐우로써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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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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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하들과 회의에서 기록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국왕의 언행 및 행동 뿐만 아니라 관리들에 대한 평가와 주요 사건, 사고 등 당시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기록을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사관 입니다. 국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국왕의 언행 및 행동을 가록하는 것이 사관의 역할이기에 왕과 신하는 몰래 만나 정사를 의논할 수 없었지요. 즉, 투명한 정치를 할 수 있었고 또한 국왕과 대신들의 부적절한 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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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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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에서의 하원의원 상원의원의 차이점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단하게 가장 큰 차이점울 모아봤습니다. 1. 의석수 차이 : 상원 100석(각주 2명 *50개주), 하원435석 2. 임기 차이 : 상원 6년, 하원 2년 3. 주요 업무 차이 - 상원 : 국가적 차원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는 의사결정 특히 외교문제에 관련되서 큰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북미정상회담, 주한 미군 문제, 중동 문제,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 이러한 굴직한 외교 문제 등등. - 하원 : 지역구 예산편성, 지역구 재정 보조, 지역구를 위한 사업 유치등 주로 지역에 관한 업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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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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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정복당한 호라즘제국은 어느지역을 일컽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고 제국에 의해 멸망한 호라즘 제국은 현재 이란, 아제르 바이잔, 트르크 메니스탄, 키르키츠스탄, 카자흐스탄, 아프카니스탄등을 포함한 이스람 국가들입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이였고 사회문화적으로는 패르시아 문화의 사회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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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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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먹은 벙어리의 어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약 세가지 정도의 신빙성 있는 가설이 있습니다. 첫째로, 지금은 먹을 것이 많지만, 그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해서 단음식이 별로 없던 시절, 당시 달콤한 꿀은 매우 귀한 음식이어서 어쩌다 꿀을 먹을때면 오직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말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꿀을 먹을 때는 벙어리가됬다는 설이죠.두번째, 인도의 시인(詩人) 까비르(1440~1518)의 詩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입니다.까비르는 그의 시(詩)에서 진리를 달콤한 꿀에 비유해 “꿀을 먹은 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다.” 했는데 거기에서 ‘꿀 먹은 벙어리’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네여.세번째로 꿀을 먹으면 찐득찐득 거려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생겼다는 설입니다.엿이나 꿀을 많이 먹으면 말하기가 어려우니까요.정답이 머가 되었건 이 속담은 단어선택 자체가 언어장애를 가지신 분들에게는 썩 어감상 좋지 않은 말입니다. 작년에도 공식석상에서 한 정치인이 이런속담을 썼다가 언론의 비난을 받았지요. 가급적 사용을 자재하거나 다른말로 표현해야 할 속담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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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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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항의 영어로 어떻게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과 영어 같이 보내드려요. 참고하세여! 안녕하세여 저는 밑에층 사는 주민인데요. 매일 새벽 여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계속 잠을 못자고 있어요. 다른사람도 생각을 좀 해주세여. 그럼 다신 이런일 없을거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Hi, I am a resident who lives down stairs. I haven't slept at all because it is too lousy here in the every early morning. Please be concerned about the other people. Hope this kind of things never happen again.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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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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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중립외교정책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흥선 대원군의 개혁정치는 우선 먼저 부정부패를 막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부패한 관리를 내쫓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고루 등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금 개혁을 통해서 양반에게도 군포를 거두었습니다. 군포는 군대에 가지 않는 대가로 내던 삼베나 무명의 세금이였지요. 또한 , 서원을 정리하게 됩니다. 세금을 면제받고 부당하게 재산을 쌓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습니다. 서원을 정리한 까닭은 세금을 늘리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입니다.마지막으로 국왕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기 위해서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경복궁을 다시 짓게됩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결국 쇄국 정책을 통해서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천주교를 탄압하고 양화교역을 금지하는등 시대의 흐름에 역행함으로써 결국 유림세력과 민비에 의해서 퇴출당하게 되지요. 하지만 흥선대원군이 중립정책을 펼쳤다는 내용은 약간 의문이 듭니다. 광해군이 조선역사상 유명한 중립외교 정책을 펼쳤지 흥선대원군이랑은 약간 맞지않는 부분 인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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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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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국 중 신라에만 세분화된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의 신분제도를 이해 하기위해서는 그 전의 부족국가 시기의 진한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진한은 12개 부족 국가로 이루어진 한반도 동남부 즉 경상도 근처에 위치했는데 그 중하나인 경주의 사로국이 점점 성장해 다른 소국들을 흡수하면서 기록상으로 고고학적으로 4세기~6세기경에 걸쳐 대부분 사로국에서 발전한 발전한 신라에 완전히 흡수,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골품과 6두품 제도는 바로 이과정에서 생긴 역사적 산물 이라도 볼수 있습니다. 연맹왕국에서 귀족국가로 바뀌어가고 있던 시기에 정복, 병합된 각지의 크고 작은 성읍국가 또는 연맹왕국의 지배층을 수도인 경주에 이주시키고 이들을 중앙의 지배체제 속에 편입시키게 됩니다. 이때 이들 세력의 등급·서열을 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골품제도가 제정되었지요. 다시 말하면, 신라는 이렇게 함으로써 지배체제를 구성하게 되었고 또한 지방세력도 통제할 수 있었구요.신라가 이처럼 병합된 각 지방 족장세력의 혈연적·족적 유대를 토대로 하여 흡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 족장층의 사회적 기반을 마음대로 처리 할 만큼 왕권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였지요. 이게 왕권이 비교적 강력했던 고구려와 백제와 비교해 특수한 신분제도를 가지게 된 이유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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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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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사람을 울릴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글이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쓰기의 힘은 참으로 대단합니다.역사적으로 봐도 한줄의 문장으로 전쟁을 끝낼수도 있고 전쟁을 일으킬수도 있고 한통의 편지로 사랑이 시작될수도 있고 사랑이 끝날수도 있으니까요.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표현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예기하고픈 욕망이 있으니까요. 대화를 통해 하는 말과는 달리 글은 생각을 정리해 종이와 연필을 이용해 차분히 속마음을 표현할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과는 달리 고쳐쓸수도 있고 중간에 어떤 표현을 쓸지 고민을 할수있는 시간도 있지요.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의 지식 혹은 감정을 표출하는 힘을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라 많은 지식과 감정이 있어도 그걸 표출하지 않으면 죽은 지식 죽은 감정이 되니까요.이렇듯 글의 힘이 워낙 대단 하다보니 서양 속담에도 "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글은 칼보다 강하다 라는 표현도 생긴 것 이겠지요. 문의 주신 분도 편지를 받으셨다면 자신의 감정을 듬뿍담아 답장을 써 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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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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