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언제 어디에 지어졌고 평수는 어느정도 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일제에 의하여 세워진 서울 충정로의 5층짜리 아파트라고 합니다. 이 아파트는 현재도 실제 거주가 가능한 아파트로써 기능하고 있는데 서울시에서는 이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관리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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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독일인의 미국 이민에 관하여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인 3억명 중 독일계 미국인은 약 4600만명으로 아일랜드계 3300만명, 영국계 2500만명보다도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독일 출신이 가장 많은 이유는 아마도 1820년 이후 19세기에 집중적으로 미국에 건너갔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관세 동맹 성립을 계기로 농·공업이 자본 주의화 하고 있었고, 그 결과 산업 부르주아와 정권을 독점하려는 귀족층, 노동자 간의 대립이 극심했다고 합니다. 특히 1848년 독일 혁명 실패는 수많은 정치적 난민을 낳았는데 이때 카를 슈르츠 같은 혁명가가 여럿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총 800만명 정도의 독일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1930년대에는 유대계 독일인 다수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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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는 왜 만들어진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황제 수리야바르만 2세 에 의해 약 30년에 걸쳐 축조되었다고 합니다. 사원의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앙코르 와트가 데바라자의 사후세계를 위하여 지어진 사원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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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 증후군은 무엇이고 어디서 유래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모(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앞 글자를 딴 말입니다. 거기에 일련의 증상을 뜻하는 'Syndrome'과 합친 단어 입니다. 즉, 자신만 세상의 흐름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심각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일종의 고립 공포감을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소외불안증후군' 또는 '고립 공포증'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포모 현상은 마케팅 분야에서 처음 인식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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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금을 좋게 보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슬람에서 금을 안좋게 보는 이유는 다양한데 이슬람에서는 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금을 남용하는 것을 꺼린다고 합니다. 이슬람에서는 금을 포장재나 표면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데 이는 금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 하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이는 금을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 인데 이슬람에서는 금을 기부나 자선 활동에 사용 하는 것을 권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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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건국 신화에 나오는 탁리국은 어디에 있었던 나라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탁리국은 부여의 북쪽에 있던 나라, 즉 북부여로 해석될 수 있는데 ≪魏書≫豆莫婁전에는 “두막루국은 勿吉의 북쪽 천 리에 있으며, 洛邑에서 8천 리를 가면 옛날 북부여이다”라는 기록이 존재 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위치로는 중국의 헤이롱장성의 하얼빈 정도에 해당 하는 지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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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개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 세계 800여종의 견종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중국에 그 종류가 많은 것은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 견종도 다양 한것 으로 생각 됩니다. 대표적이 견종으로는 치우 차우, 샤페이, 시추, 페키니즈, 차이니스 헤어리스 크레스티드 도그 등이 대표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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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셔 효과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피셔 효과는 통화 공급의 변화에 따라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의 변화와 함께 명목 이자율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통화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10% 포인트 증가하면 경제의 명목 이자율도 결국 10% 포인트 증가한다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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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관의 학문 성취도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관(史官)은 국가의 공식 기록을 담당하였던 예문관의 전임관으로 정7품 봉교 2명, 정8품 대교 2명, 정9품 검열 4명 등 여덟 명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사초를 작성하고 시정기(時政記)를 찬술하는 사관(史館)·예문춘추관 등에 소속된 수찬관 이하의 모든 관원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사초의 작성과 시정기의 찬술을 담당한 기사관을 겸임한 예문관의 봉교·대교·검열 등을 말하는데 이들 사관은 봉교의 지휘하에 검열 2명이 교대로 승정원·춘추관에 입직하고, 입직하는 검열 이외의 봉교·대교·검열 2명이 춘추관에 상사(常仕)하면서, 국사가 논의되는 조회·조참·상참·윤대, 그리고 경연·중신 회의·백관 회의·의정부·중추원·육조 등 대신이나 삼사 관원이 왕을 면대하는 장소, 왕의 각종 행차 등에 입시·호종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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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지금의 신문같은 것이 있엇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 신문은 < 한성 순보> 가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비슷한 승정원에서 나온 일종의 관보인 조보 (朝報) 를 작성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승정원에 속한 여섯 승지의 경우 무관도 임명될 수 있었지만, 기록을 담당한 주서는 반드시 글 잘하는 문관 중에서 선임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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