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회성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길러질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ㅋㅋ 얼마전 지인과 나눈 대화와 일맥상통하네요.30년만에 동창들을 만났는데, 각각의 공통점은 공부잘하고 착실한 애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안정적인 직업(흔히들 말하는)을 갖고 있는데, 다들 남을 위해 살고학창시절 공부는 못했지만 의리있고 큰소리 뻥뻥치며 허풍떨던 놈들이 다들 사업을 하며 년매출 100억이상 기업을 가졌더라고..... 그러면서 다들 그들이 갖고있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 즉 사회성이ㅜ좋다는 평가를 했지요!~ 사회성이란 이사람한테는 이렇게~ 저사람한테는 또 저렇게 맞춰줄수 있는 능력이라는 거!^^ 근데 공부 잘하는 애들은 시종일관 똑같이 대하거나 나한테 맞추는 특징땜에 사업을 못하는거라고....ㅋㅋ
Q. 고대 중국에 있었다는 순장 풍습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순장은 장례방식중 하나로사후에도 그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원하며 '''다른 [[사람]]을 같이 묻는 것'''을 말한다.같이 묻는 사람은 시종, [[궁녀]], [[노예]]라든가 무덤의 주인공이 [[왕]] 등 높은 사람이면 그 [[신하]]나, 심지어 생전의 [[가족]]까지 같이 묻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생매장]]이기도 하지만 같이 묻을 사람들을 먼저 살해한 다음 시신을 묻는 방식도 있다. 이는 순장된 시체의 깨진 두개골 등 여러 상처를 통해 알 수 있다.자원해서 순장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권력 다툼에서 정적들을 합법적이면서 효율적으로 숙청하는 용도'''로 자주 쓰였다. 주로 권력자가 죽기 전 마음에 안 들었던 부하를 하나 이상 지목하며 "내가 죽을 때 [[반어법|저 충성스런 부하 녀석]]도 같이 좀 묻어주면 좋겠구나" 라거나, 파벌 싸움에서 이긴 쪽이 '''"저 세상의 고인께서 자네들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할 거야 그치?"''' 라는 식이었다. 물론 [[결초보은]]의 경우처럼 유언에 의해 순장을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죽은 자는 결정권이 없기에 순장 여부는 영향력 있는 후계자들의 의사가 반영되기가 쉬웠다. 결초보은 일화도 최종적으로 그걸 결정한 건 세상을 떠난 이의 아들로, 그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서모를 순장하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내 개가시켰다.생전의 지도자에게 호감을 샀던 [[여자]]들도 순장의 대상이 되었다. 한 예로 [[영락제]]가 죽자 영락제가 생전에 아낀 [[조선]]인 후궁 한씨([[인수대비]] 한씨의 고모)가 순장당했다. [[https://youtu.be/9ZCqbgHR404|이 영상]] 참조. 물론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계승자 입장에서 배 다른 자식들과 그 후견인이 될 만한 후처들은 언제나 유력한 정적 후보였으므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처리했던 것에 가까웠을 것이다.순장은 주로 고대 동아시아권에서 빈번하게 행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가혹한 풍습이라는 인식이 강해지자 나중에는 용(俑)이라는 [[인형]]을 묻는 것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 용(俑)이 스케일이 큰 것이 [[병마용]]. 한국의 [[신라왕릉]]에서도 하대가 되면 예전처럼 [[금관]] 같은 화려한 황금 부장품을 잔뜩 넣는 게 아니라 [[불교]]의 영향으로 고인을 [[화장(장례)|화장]]한 뼛가루를 담은 그릇과 작은 흙 인형 정도만 무덤에 넣게 된다.
Q. 모나리자 그림이 뒤늦게 유명해졌다는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술적으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최후의 만찬 등 다른 역작들을 제치고 레오나르도의 대표 작품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레오나르도가 죽을 때까지 항상 가지고 있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도난당한 적도 있는데, 복제품이 너무 많아 진품을 찾지 못하다가 다빈치의 지문이 묻은 것을 찾아 다시 전시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도시전설]]일 뿐이다. 실상은 아래에서도 설명하지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화상의 신고로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지문 대조를 이용한 예술품의 진위 감별 기법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장 지문을 이용한 수사가 정식으로 인정된 것이 [[1900년]]이다.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눈썹없는 여인네인데 뭘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거나 심드렁하게 느끼기도 하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안이 '미'를 느끼고 평생의 모델로 삼은 여성을 그 생애 동안 수십년에 걸쳐 수차례 그리는 동안 다빈치의 솜씨와 모델이 된 여성의 원숙미가 모두 절정에 달한 시점이 바로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모나리자 그림이며 모든 모나리자 그림 중에서도 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모델이 된 여성의 젊은 시절을 그린 것이 하술된 아일워스 모나리자로 이 그림의 경우 서양화에 문외한일지라도 미인임을 쉽게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특징은 자애로운 여성이 아닌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의 여성이자 그 눈빛이라는 점이 그가 그린 모나리자 전부를 통틀어 발견되는 특징이자 바로 다빈치가 모델이 된 여성이 왜 아름답다고 여겼는지 짐작하게 하는 부분.모나리자의 진가는 직접 봐야하고 또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루브르에 직접 가서 봐야 한다. 모나리자를 보러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작품들을 보고 난 다음 모나리자를 보면 확연히 실력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 혼자서 CG를 다루는 느낌...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수많은 혁신적 기술들을 도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면이나 측면을 딱딱한 구도로 보고 있지 않은 자연스러운 구도의 초상화, 원근법을 적용하고 흐릿하게 그린 배경[* 여담으로 이 배경은 토스카나의 키아나 계곡(Val di Chiana)을 모델 삼아 그려낸 가공의 장소로 여겨지는데, 이는 가공의 장소를 배경으로 초상화를 그린 거의 최초의 사례이다.] 등,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소들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혁신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