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궁화는 일제강점기 때 국화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무궁화가 국화로 굳어진 역사적 시점은 개화기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화를 법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고증은 있을 수 없으나, 대체로 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문호개방 이후 서구문물이 유입되면서 서양 여러나라들이 그들 왕실의 문장, 훈장, 화폐 등에 사용한 국화를 접하게 되자, 어떤 이유로든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고 있던 무궁화가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국화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무궁화는 민족의 상징이 되어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하여 왔다.갑오경장 이후 신문화가 이땅에 밀려오면서 선각자들은 민족의 자존을 높이고 열강들과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고자 국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그리하여 남궁억(南宮檍)과 윤치호(尹致昊) 등은 서로 협의하여 무궁화를 국화로 하자고 결의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들 몇 사람만의 독단적인 의견이 아니라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집약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이 시기는 남궁억이 칠곡(漆谷) 부사(府使)로 재임하고 있던 때(1894년?)라고도 하고 1900년대 초라고도 하여 정확한 연도와 날짜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그후 곧이어 만들어졌던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구절이 들어가게 되고 이 노래가 불려지면서 무궁화는 명실공히 국화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고령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단순하게는1.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행사 및 캠페인 등 참여.살기좋은 마을, 신뢰가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함께 다양한 지역사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캠페인 등을 실시할 수도 있겠죠.단순한 한두번의 캠페인으로는 인식이 변화되기 어려울 수 있으나, 적어도 살기 좋은 마을에 가까운 분위기가 될 수록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욕구도 생길 수 있을테고, 그 안에서 출산 등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죠.2.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저출산 지원 정책에 대한 관심도를 높여 출산 및 양육 부담 줄이기.또한 우리나라에서 어떤 저출산 지원을 하고 있는지 정책적인 부분을 파악해서 내게 맞는 지원을 찾아 출산의 부담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3. 결혼 및 연애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형성 결혼 및 연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보다 긍정적인 여론을 함께 만들어사회에서 가정 형성에 대한 건강한 분위기로 나아가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최근 이어졌던 선플달기 봉사활동 처럼 말이지요.개인의 노력은 시작은 단순해보일 수 있으나, 그 파급력은 커질 수 있을 만한 기초를 닦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저출산을 위해 신경써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들이라면 당장의 해결을 볼 수 없더라도 충분히 해결 방안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사회적 해결방안으로는1.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행사 및 캠페인 등을 활성화 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2. 저출산 지원을 위한 양육대책 및 육아지원 제도를 강화하여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며3. 결혼 및 연애에 대한 법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 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법적 허용 기준을 다양화 하여 출산을 장려하는 것 등이 될 수 있겠습니다.
Q.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똑똑하다고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이자 건축가, 사상가로서 매우 많은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남겼던 그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비행기, 낙하산, 헬리콥터, 잠수함 등 시대를 앞서는 여러 발명품들을 창안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아마 똑똑하지 않았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수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