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삼국시대의 백제는 일본과 어느정도로 밀접한 사이였을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백제와 왜의 우호관계는 근초고왕 시기부터 시작하는데 백제가 한창 최전성기를 구가할 이 무렵 근초고왕은 아들인 근구수왕을 보내 백제 국왕의 칠지도를 선물했고 이로서 백제 왕실과 왜 왕실은 동반자 관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백제는 왜에게 선진적인 기술을 제공하고, 왜는 정치지형상 불안정한 백제를 유사시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했습니다.또한 백제는 국왕의 자제들을 일본에 보내 본국의 왕에게 변이 일어났을 시 이들이 이 일에 휘말리지 않게 하고, 왕의 급사시 신속하게 후계자가 귀환해 백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습니다.왜 역시 파견된 백제의 왕족들을 통하여 백제와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전수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들은 또 왜국 정치에도 상당히 관여했는데 백제 입장에서는 파견된 왕족들이 왕에 오르기 이전에 정치를 먼저 배움으로써 훗날 백제의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었고 왜국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치 파트너가 생긴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이러한 백제와 왜의 우호관계는 야마토 정권의 군사적 지원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백제의 전쟁을 돕기 위해 아신왕 때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기록들이 나오며, 성왕 때의 관산성 전투 당시에도 가야와 더불어 백제를 지원했습니다.백제가 멸망하려고 하자 자기네 군주의 즉위식까지 미루고 대규모 병력을 지원한 걸 보면 마지막까지 동맹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1000년이 넘도록 서구권국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말이 진리로 보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업적은 서양 철학과 과학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수많은 후대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이유는 정치학, 윤리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론의 틀을 정립하였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 연구는 현대 생물학, 동물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의 관찰과 분류, 설명 방식은 과학 방법론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이후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고,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조선시대에 궁궐의 책을 포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의 "포쇄"는 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된 중요한 관리 절차입니다. 실록은 귀중한 기록물로, 습기와 해충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포쇄는 주로 3년에 한번, 봄 또는 가을에 시행되었습니다. .실록을 사고에서 꺼내 햇빛에 말리고 바람을 통하게 하여 습기를 제거하고 해충을 예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이 작업은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춘추관에서 파견된 사관이 주도했습니다. 포쇄에 참여한 인물과 절차는 '실록형지안'이라는 기록부에 꼼꼼히 기록되었습니다. 포쇄는 서적을 단순히 말리는 것뿐만 아니라 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실록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이런 과정을 통해 조선왕조실록은 오랜 기간 보존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