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홈답변 활동잉크

안녕하세요. 역사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역사 전문가입니다.

이동광 전문가
카이로스 아카데미
역사
역사 이미지
Q.  비상계엄이 선포된 역사가 우리나라에는 몇번이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역대 계엄령 선포 횟수는 경비 계엄 4회, 비상계엄이 13회로 총 17회가 되었습니다.대표적인 비상계엄 사례를 알려드립니다.1960년 4.19 혁명 직후 비상계엄 :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혼란한 사회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1961년 5.16 군사정변 :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1972년 유신체제 선포 :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발표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광주 시민의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비상계엄을 확대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수호지를 보니 송강의 직책이 운성현의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압사라는 직책은 송나라 때 지방 정부에서 문서 업무를 책임지는 작은 벼슬로써 품급도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관아의 이방과 같은 존재였습니다.압사는 임무의 부담과 책임이 막중하고 매우 고생스러웠다고 합니다. 압사는 주요 업무는 공문을 관리하고 윗선에서 내려온 공문을 받아 주관에게 초안을 작성한 후 위에 보고하거나 아래에 전달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전달하거나 본 부나 현의 공문을 내보낼 땐 반드시 주관의 요구에 따라 제때에 발송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압사는 반드시 필력이 좋아야 하고 수련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수호지에서도 송강이 운성현에서 압사로 일할 때의 모습을 '刀笔精通,吏道纯熟'라고 묘사를 했는데, 이는 실제로 존재한 압사라는 관직과 부합되는 표현이니 압사는 실제로 존재하는 관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조기는 언제 부터 우리나라에 귀한 생선으로 대접받기 시작 했는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기는 1960~70년대만해도 연평도 인근에서 참조기가 많이 어획되었습니다.하지만 무분별한 남획과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의 변화로 인해 어획량이 급감하게 됩니다. 참조기의 경우에는 회유성 어종이긴 하지만 자기가 산란한 바다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오는 계절 회유어종인데요.겨울에 따뜻한 바다를 찾아 남쪽으로 이동했다가 봄에 산란을 위해 올라오게 되는데 이때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조기들을 싹쓸이해버리니 시간이 지날수록 북쪽 바다에서 태어나는 조기들도 없어지게 되고 다시는 그 바다를 찾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원래 우리나라에서 조기로 유명했던 곳은 연평도였는데 언젠가부터 연평도에 조기가 나지 않자 그보다 훨씬 남쪽의 영광이나 법성포로 그 명성이 옮겨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의 법성포 또한 조기가 잘 잡히지 않아 많은 양을 추자도산 조기로 그 수요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추자도와 제주도 그리고 가거도는 유일한 조기 어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313년 2월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 황제가 공동발표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밀라노 칙령이 발표되기 전, 로마 제국은 수 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통치(284-305년) 동안 기독교 박해가 극심했으며,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고문과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4세기 초에 이르러 로마 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06년 황제로 즉위한 이후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특히 312년, 그는 밀비안 다리 전투에서 기독교상징인 십자가를 깃발에 새기고 승리를 거두며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전투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역사
역사 이미지
Q.  우리나라 조상님들은 왜 대마도에 진출을 하지 않았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옛날부터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체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길이는 거의 제주도만하지만 면적은 그 절반밖에 안 되는 대마도가 한·일의 중간에서 독립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 간의 ‘힘의 균형’ 때문이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힘의 균형이란 국력의 크기가 똑같았다는 게 아니라, 대마도가 상대방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견제할 만큼의 힘이 양쪽 지역에 모두 존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러한 힘의 균형이 존재했기에 작은 섬 대마도가 한·일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봉과 식량원조를 받으면서 조선을 상국으로 대한 대마도가 끝내 조선 영토로 편입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같은 힘의 균형 때문이었습니다.
246247248249250
아하앤컴퍼니㈜
사업자 등록번호 : 144-81-25784사업자 정보확인대표자명 : 서한울
통신판매업신고 : 2019-서울강남-02231호개인정보보호책임 : 이희승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서비스 이용약관유료 서비스 이용약관채널톡 문의개인정보처리방침
© 2025 Ah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