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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역사 전문가입니다.

이동광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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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삼국지 장비는 문무를 겸비한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네 맞습니다. 장비(張飛)는 중국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인물로, 흔히 무예에 뛰어난 장수로 알려져 있지만,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면모도 가지고 있습니다.장비는 유비(劉備), 관우(關羽)와 함께 도원결의를 맺고 평생을 함께한 형제 같은 존재로, 무력과 용맹함에서는 삼국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일대일 전투에서 적장을 쓰러뜨리는 모습이나, 장판교에서 단신으로 조조의 대군을 막아선 일화 등으로 인해 대중에게는 주로 호방하고 거칠지만 용맹한 장수로 인식되어 있습니다.그러나 정사 『삼국지』나 그 주석인 『삼국지 주석』에서는 장비의 또 다른 면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사에서는 장비가 서예를 좋아하고, 고전을 즐겨 읽었으며, 지략이 있는 인물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를 통해 장비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학문적 소양도 갖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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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존 하버드는 어떠한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이름의 유래가 된 인물로, 짧은 생애였지만 미국 교육사에 큰 영향을 남긴 인물입니다.그는 1607년 잉글랜드 런던 근처의 사우스워크(Southwark)에서 태어났으며, 신앙심 깊은 청교도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에 흑사병으로 부모와 형제 대부분을 잃었고, 이후 유산을 물려받아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이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청교도적 신앙과 학문을 접하게 되었고, 이후 1637년 신대륙인 매사추세츠 식민지로 이주하게 됩니다.존 하버드는 미국 이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사추세츠주 찰스타운에 정착하여 목사로서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638년 폐결핵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생전에 그는 깊은 신앙심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지녔고, 사망 직전에 자신의 재산 절반과 400권이 넘는 책을 당시 막 설립된 '뉴 칼리지(New College)'라는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이 학교는 그의 뜻을 기려 1639년, 그의 이름을 따 ‘하버드 칼리지’로 명명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명문 대학인 하버드대학교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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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칠부능선을 넘었다, 구부능선을 넘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유래가 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칠부능선을 넘었다” 또는 “구부능선을 넘었다”는 표현은 인생이나 일의 과정에서 고비를 넘기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쓰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의 유래는 산을 오를 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관용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산을 오를 때 전체 길이를 10으로 나눈다고 가정했을 때, 7부 능선(전체의 약 70%)이나 9부 능선(약 90%)에 도달했다는 것은 정상에 거의 다가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어떤 일이나 과정을 거의 끝마쳤거나, 가장 어려운 구간을 지나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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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람들이 태어난 월별로 별자리를 적용해서 해석을 하는데, 별자리가 태어난 월과 무슨 관계가 있고 맞는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별자리를 가지고 태어난 달에 적용하여 해석하는 풍습, 즉 점성술은 고대 문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풍습은 수천 년 전, 인간이 하늘의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그것이 인간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믿으면서 생겨났습니다.가장 오래된 형태의 점성술은 기원전 3천 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신의 메시지로 여기며, 이를 바탕으로 농사의 시기나 왕의 운명을 예측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는 이 점성술이 고대 그리스로 전해져 철학과 수학과 결합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12개의 별자리 체계가 정립되었습니다. 이 체계는 이후 로마 제국, 이슬람 문화권, 중세 유럽을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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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집트는 어떻게 이슬람 국가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이집트는 원래 고대 문명의 중심지로, 파라오가 다스리던 시기에는 이집트 고유의 종교가 존재했습니다. 이후 그리스와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헬레니즘 문화와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1세기경에는 기독교가 널리 퍼졌고, 이집트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7세기 초,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따르던 아랍인들이 급속히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이집트는 639년부터 642년 사이에 아랍 무슬림 장군 아므르 이븐 알아스(Amr ibn al-As)의 지휘 아래 우마이야 칼리프국의 일부로 정복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를 지배하던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은 내부 갈등과 종교 분쟁으로 약화되어 있었고, 무슬림 군대는 비교적 빠르게 이집트를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정복 이후에도 이슬람은 천천히 퍼져나갔으며, 초기에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존하는 시기가 있었습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아랍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아바스 왕조 시기에는 행정과 교육이 이슬람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파티마 왕조, 맘루크 왕조 등을 거치면서 이집트는 완전히 이슬람 문화권으로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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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에 선출된 교황은 어떤 분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그는 페루 북서부 치클라요(Chiclayo) 교구에서 사목 활동을 하며 지역 사회의 발전과 빈곤층 지원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페루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며, 현지인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의 선교 활동은 가톨릭 교회의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페루에서의 활동 이후,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노수도회의 총장(Prior General)을 역임하였으며, 2023년에는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주교성의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직책에서 그는 전 세계 주교들의 임명을 감독하며 교회 행정의 중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라틴 아메리카 교황청 위원회 의장으로도 활동하며, 라틴 아메리카 지역 교회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레오 14세는 선교사 시절부터 일관되게 사회 정의와 빈곤 퇴치에 힘써왔습니다. 페루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교황청에서도 이민자 지원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회 정의 중심의 교회 운영 방침과 맥을 같이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또한 미국 출신이면서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레오 14세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존중하는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에 능통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신자들과 소통하는 데 강점을 보입니다. 이는 전 세계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화적 도전에 대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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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대학교가 한국의 최고 대학이된 역사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서울대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국가 인재 양성의 중심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195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 정부는 교육을 통해 인적 자원을 개발하려는 정책을 펼쳤고, 그 핵심 기관으로 서울대가 기능하게 됩니다. 이후 각종 국가시험과 공공기관, 대기업의 인재 선발에서 서울대 출신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서울대=성공의 상징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또한, 입시 제도의 변화 속에서도 서울대는 항상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우수한 교수진과 연구 자원, 행정적 지원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다른 대학들과의 격차를 점점 벌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구조적 특성 덕분에 서울대는 단순한 대학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신분 상승의 관문으로 여겨지며 '최고 대학'의 상징성을 더욱 강화해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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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거 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는 기독교보다 서로를 더 싫어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시아파와 수니파는 모두 이슬람교의 두 주요 분파로, 같은 경전을 믿고 같은 신 알라를 섬기지만, 역사적·정치적 배경에 따라 깊은 갈등과 분열을 겪어왔습니다. 이슬람교에서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열은 무함마드 사후의 정통 후계자 문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이었던 아부 바크르를 정당한 첫 칼리프로 받아들인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그의 자손들만이 정당한 후계자라고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두 종파는 신앙 체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충성, 지도자관, 종교 의례 등에서도 차이를 보이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특히 역사적으로 수니파가 이슬람 세계의 다수를 차지하고 정치 권력을 장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시아파는 종종 소수 종파로서 탄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깊어졌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란(시아파)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 등에서 보듯, 두 종파는 지정학적·이념적 갈등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하지만 이들이 서로를 기독교보다 더 싫어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와의 관계는 종파를 넘어서는 이슬람 전체의 외부 인식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슬람 세계에서는 외부 종교인 기독교와의 관계보다 종파 간 내부 갈등이 더 치열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반대로 공동의 외부 적이 등장할 때는 시아와 수니가 연합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따라서, 시아파와 수니파가 기독교보다 서로를 더 싫어했다기보다는, 역사적으로 내부 갈등이 더 가까이 있었고 더 직접적인 정치·사회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대립한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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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자는 우리 동이족인 만든 문자가 맞는가?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동이족 한자 기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한자가 중국 한족만의 창조물이 아니라, 동이족이 만든 문자이거나, 한자의 형성에 깊이 관여한 문자 체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한자의 초기 형태는 동이족이 자연을 숭배하며 사용한 상형 기호나 토착 문양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한족과의 교류를 통해 점차 체계화되어 오늘날의 한자로 발전하였다고 봅니다. 특히 자연과 사물을 본떠 만든 상형 문자, 농경 사회를 반영한 기호, 갑골문에 나타나는 상징성 등이 동이족 문화와 유사하다는 점이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됩니다.또한, 한자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갑골문이 발견된 지역인 은허(殷墟)가 동이족의 활동 범위와 일부 겹친다는 점도 동이족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주장 중 하나입니다.그러나 이 이론은 현재까지 명확한 고고학적 증거나 문헌적 자료가 부족하고, 대부분의 논거가 추정과 간접적 유사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학계에서는 주류 학설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동이족이 고대 동아시아 문명 형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시각은 한자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로 참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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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동 김씨 가문이 조선의 권력을 잡게 된 역사적 배경이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안동 김씨 가문이 조선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배경은 주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사이의 세도 정치 시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혼인 관계를 통해 왕실과 긴밀한 연결을 형성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고, 특히 순조 이후 조선 후기를 좌우하는 핵심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조선 후기, 특히 정조(재위 1776~1800) 사후 조정은 정치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정조는 탕평책을 통해 붕당을 완화하고 강력한 왕권을 지향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어린 아들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치 주도권은 다시 외척 세력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이 과정에서 안동 김씨 가문은 순조의 비(왕비)인 순원왕후 김씨를 통해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게 됩니다.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김조순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안동 김씨는 조선 정치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었고, 이후 약 60여 년간 지속된 세도 정치 시대를 주도하게 됩니다. 이 시기 안동 김씨는 고위 관직을 독점하고, 매관매직, 부정부패, 지방 통치의 문란 등을 야기하면서 조선의 전반적인 쇠퇴를 가속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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