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로마 대약탈 사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코 디 로마(Sacco di Roma)는 직역하면 “로마 약탈”을 의미하며, 역사상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이중 가장 유명한건 1527년 카를 5세의 로마 약탈로서, 교황권의 붕괴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더불어 끔찍한 참혹성 덕에 유명해졌다. 물론 독일 지역에 기반을 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긴 했지만, 명색이 로마 황제가 보낸 군대가 실제 로마를 박살내 버린 사건이었으니...역사가들의 추산에 의하면 타격이 네로 시절의 로마 대화재마저 능가한다. 대화재 당시엔 어떻게든 불을 끄려 했고, 후에 재건축과 확장사업으로 원래보다 더 커다란 스케일의 로마를 만들었으나 이 사건은 로마 일대가 완전히 폐허가 된 후에야 끝을 보았기 때문에, 재건축은 개나 줘버린 듯 부서진 잔해와 과장 좀 보태서 타다 남은 재까지 약탈해갔다. 14세기 아비뇽 유수가 교황권이 내리막길로 향함의 상징이었다면 이 사건은 교황권 실추의 정점이자 몰락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Q. 하나의 민족이 형성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칠까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언어·지역·혈연·문화·정치·경제생활·역사의 공동성으 로 공고히 결합하고 그 기초위에서 민족의식이 형성됨으로써 더욱 공고히 결합된 역사적 범주의 인간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학적으로는 스펜서(Herbert Spencer)와 그 후계 인류학파에 의하여, 인류사회의 진화과정 에서 수많은 “가족”(families)이 결합하여 “씨족”(clans)을 형성하고, 수많은 씨족들이 결합하여 “부족”(tribes)을 형성하며, 수많은 부족들이 결합하여 “민족”(nations)을 형성함이 밝혀졌다. 인 류는 민족형성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고대국가를 형성하고 “문명”(civilization)의 단계가 시작된 다는 학설이 정립되어 보편화되었다.
Q. 과거시험은 몇명이나 뽑는 시험이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반적으로 대과라고 하는 문과는 문관 관료 임용시험으로, 법제상 양인이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으며, 소과에 반드시 합격하지 않아도 응시가 가능했다. 앞서 언급하였듯 소과 합격자는 성균관에 입학할 경우 1차 시험인 초시 합격에 메리트가 있었으며, 그밖에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 임용 시험 같은 별도의 혜택이 주어질 뿐, 소과와 대과는 별개의 시험으로 운영되었다.문과(대과)는 1차 초시에서 240명, 2차 복시에서 33명을 끊는다. 마지막으로 이 33인의 순위를 가리는 3차 시험이 하나 더 있는데 이를 전시라 한다. 전시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 임관되는 품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시험이다. 장원 급제자는 종6품, 나머지 갑과에 해당하는 2명은 정7품, 을과 7명은 정8품, 병과 23명은 정9품부터 시작한다. 공신이나 당상관 이상의 자제들은 음직으로 문과에 급제하지 않고도 관직을 얻을 수 있었으나 비급제자로서 승진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보면 시험에 평생을 바쳐도 모자랄 것 같지만, 보통은 30대 중반 정도면 합격했다. 젊은 나이에 합격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17세에 급제한 박호(朴箎)[3]이다. 최연소 합격자는 고종 때 13세로 합격한 이건창(李建昌)이다. 고종 때 지나치게 많이 뽑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최연소 합격자 기록은 15세다.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자는 만 18세로 되어 있는데 이 당시 고등고시 사법과는 한 해에 40명 뽑던 시절이다
Q. 로버트 스콧이 탐험한 곳들은 어떤 곳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0년 테라노바 호를 이끌고 제2차 남극 탐험에 나서서 1912년 1월 18일 남극점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남극점은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먼저 도달하였기 때문에 첫 정복의 목표는 깨어졌다. 그와 4명의 동행자는 귀로에 악전후로 조난, 식량부족과 동상으로 전원 비명의 최후를 마쳤다.가장 중요한 발견은 인도, 아프리카, 뉴질랜드, 호주에서 자라는 고사리 유사 종의 식물 화석(fossilised fern-like plant)으로서, 2억 5천만년 전의 기후가 충분히 온난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스콧 팀에 의해 수집된 다른 증거들과 함께 인도, 아프리카, 뉴질랜드, 호주, 남극 대륙(앤탁틱 혹은 앤타르틱)들이 모두 초대륙(supercontinent)의 일부였다는 힌트를 준다. 과학자들은 이 대륙을 곤드와나랜드(gondwanaland)라고 명칭한다. [1]
Q. 온달 장군이 외국인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 열전>에 실려 있는 '바보 온달' 이야 기에는 당시 고구려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고구려가 내분으로 약화되던 25대 평강왕 시절에 그 의 딸, 평강공주가 바보 온달 (호)에게 시집간 뒤 남 편을 훌륭히 교육시켜 결국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 고, 그후 침략한 중국 후주(B)군과 맞서 싸워 이기 고는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 출정했다 가 결국 전사했다는데, 최근 일부에서는 온달이 이란 북쪽 사마르칸트에 살던 스키타이계 유목민인 소그드 (Sogd)인으로서, 당시 중국을 거쳐 고구려로 귀화한 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당시 고구려인들이 보기엔 아리아계 백인에다가 고구 려 말도 못하는 그들이 추하고 바보스러워 보였을 거 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