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농우회 사건은 어떠한 사건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농우회 사건은 일제가 농우회를 탄압하기 위해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를 체포한 사건으로 1938년 6월 의성의 경찰이 의성읍 교회 목사로, 농우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 청년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유재기를 비롯해 반일 사상을 지닌 교회 지도자를 체포한 사건입니다.고향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의 숭실전문학교와 평양신학교를 고학으로 졸업한 유재기는 1933년 2월 조선일보에 19회에 걸쳐 한 교회에 한 조합을 설치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론을 발표해 호응을 얻었으며 1934년 목사로 있던 칠곡교회에서 이 운동을 스스로 실천해 많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의성읍 교회 목사로 자리를 옮긴 후 조선소년군 운동이라는 명칭으로 그리스도교 청년운동을 전개해 농촌청년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사기를 고취시키는데 힘을 쏟았는데, 이러한 청년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일경이 조작한 것이 농우회 사건입니다.농우회는 1930년대 평양신학교 학생들이 각자의 고향에서 조직한 농촌계몽조직으로 이 농누회를 중심으로 농촌의 그리스도교 청년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야학을 열어 글을 가르치고 농사법의 개량을 도모하는 등 농촌사회를 보다 잘 살게 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데 여기에 뜻있는 그리스도교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의성경찰은 의성읍 교회의 각종 장부를 압수, 유재기 목사를 비롯해 이재인, 박대환, 이동수, 백치문 등 청년회 임원들과 정일영 목사, 오진문 장로 등을 체포, 구금했는데 유재기는 구속, 기소되어 1년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 교인들은 8개월 동안 고초를 겪다 12월 말 석방되었습니다.일제가 이 사건을 조작한 이면에는 다른 차원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이런 운동을 사전에 차단하고, 일제의 통치에 큰 위협이 될 청년 지도자에 대한 예비적 검속의 의도가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Q. 고사성어 '와신상담'에 나오는 인물이 누구이며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와신상담은 와신과 상담이 합쳐진 고사성어로, 와신은 오나라 왕 부차가 섶나무 위에서 자던 것을 말하며, 상담은 월나라 왕 구천이 쓸개를 맛보던 것을 말합니다.중국 춘추시대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 왕 구천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고 부상당한 상처가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합려는 죽기 전 자신의 아들 부차에게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는 유언을 남깁니다.부차는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섶나무 위에서 누워 자면서 지나다니는 신하들에게 말하길, 부차야! 너는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잊었는가! 그러면서 부차는 복수를 준비하며 때를 기다립니다.구천은 부차가 월나라에 복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공격했으나 패해 회계산에서 포위당하는 신세가 됩니다.구천은 오나라의 백비에게 뇌물을 주며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 청하고 오나라의 오자서는 구천을 지금 쳐야한다고 주장하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구천은 고국에 돌아온 후 쓸개를 옆에 두고 맛보며 말하길, 너는 회계산에서의 치욕을 잊었는가,그렇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구천은 이십여년 후 오나라 수도를 점령하고 부차를 굴복시켜 최후 승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