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후삼국 시대의 문화와 예술은 어떻게 발전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후삼국시대는 문화 발전의 중요한 시기로 문학, 미술,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과 발전이 이루어지며, 신라시대의 선사 문화와 불교 예술이 고려시대에 이어짐으로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의 연속성을 확인할수있습니다.특히 고려시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유교사상과 불교적인 영향을 결합되어 고려 문화의 독특한 모습이 형성, 건축분야에서 석탑과 절, 궁궐 등 다양한 건축물이 건립, 고려시대 문학은 선비문화와 기행문학, 사투리 문학 등 다양한 양식을 포함해 발전했습니다.후삼국시대는 한반도의 분열과 통일 과정을 겪으며 역사와 문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로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의 경쟁과 고려의 통일은 한반도 역사와 문화 발전에 큰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Q. 인도예술특히나 영화들을보면 음악과더불어 오바스러운 연기들을하던데 이유가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는 기본적으로 문맹 비율이 상당하고 티비가 비교적 늦게 보급되어 아직도 티비가 없거나 희귀한 시골이 상당히 남아있는 인도에서는 온 마을 사람이 모여 보는 영화는 상당한 주요 오락거리입니다.그래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길게 만들고 두루 공감할수있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주로 만들고, 내용을 몰라도 즐길수 있도록 춤을 영화속에 삽입니합니다.즉, 가능한 많은 관객들이 즐길수있는 영화들을 만들다보니 전형적이게 된 것입니다.
Q. 실존인물 또는 실제 사건이 주인공인 영화의 예를 들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화바탕영화로는 택시운전사, 극비수사, 연평해전, 범죄도시1, 박열, 덩케르크, 재심, 핵소 고지, 집으로 가는 길, 그놈이다, 언터처블 1%의 우정, 인천상륙작전, 살인의 추억, 국가대표2, 히든 피겨스, 변호인, 제보자, 아메리칸 스나이퍼 등이 있습니다.
Q. 기강이 헤이할 때 "당나라 군대"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나라 군대에 대한 어원은 여러 설이있습니다.고구려 유래설로는 고구려가 668년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 고구려는 당나라를 맞아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고구려 입장에서 당나라 군대의 이미지는 오합지졸로 보였을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가 경연에서 당나라 군대의 연패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보면 민중 뿐 아니라 식자층들에게도 당나라 군대는 오합지졸로 이미지가 잡혀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구려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또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 한 후 당나라군을 형편없는 약군으로 인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군기가 빠진 군대에서는 총을 쏘아도 탕소리가 아닌 허전하게 당 소리가 난다고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는 설,중세 중국의 당나라 왕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막론하고 중국 자체를 당나라로 통칭해 생긴 용어라는 설, 중국의 국민당군을 당군, 중화민국 국민정부 시절을 당나라로 비하하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Q. 중국의 통일정책인 일국양제를 실시하게 된 이유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 두개의 제도 입니다.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 체제를 공존시키는 것을 말하며 중국의 홍콩과 마카오 통치 원칙이며 대만 통일 원칙을 의미합니다.중국의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은 결코 분리될수없는 하나의 국가로,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가의 주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이고 대만은 자치권을 갖는 지방정부라는 기본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즉 홍콩, 마카오 , 대만에 대한 중국의 분단 상황 관리제도 및 통일원칙으로 공식 천명, 통일국가를 이룰수 있다면 홍콩, 마카오, 대만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통일정책의 방향입니다.
Q. 고려시대에 서민들은 어떤 반찬을 먹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고 있어 살생을 금하고 어육을 피하고 소식을 중시했습니다.고려시대는 다양한 채소류가 문헌에 등장하는데 이규보가 쓴 가포육영은 그가 채마밭에 심은 여섯가지 채소에 대해 읊은 시로, 여섯가지 채소 육영은 우리에게 친숙한 오이, 가지, 무, 차, 아욱, 박이며 시의 내용으로 보아 가니는 날로도 먹고 익혀서도 먹었으며 박은 속은 파먹고 껍데기는 바가지를 만들었고, 파는 양념과 술안주로 쓰였습니다.무는 여름에 장아찌로, 겨울에는 소금에 절여 저장해주고 먹는다고 하여 지금의 동치미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