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에는 우유는 왕만먹는 특별식 이라고 하던데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우유는 왕이나 상류층, 병약한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조선시대 왕이나 먹을수있는 특식이면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왕이 아침에 먹는 죽 중 우유를 넣어 만드는 타락죽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소가 사람을 위해 평생을 고생하는데 그 새끼가 먹을 것 까지 빼앗아야 하냐며 상소를 올리고, 농사철이 다가오면 타락죽 만드는 것을 금지하기도 합니다.육식주의자였던 세종은 육류 못지않게 우유도 좋아해 고려시대 때 설립된 우유소를 그대로 유지, 관원 인원을 200여가량으로 확대하는데 신하들이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데 200명이나 써 우유를 관리하는 건 너무 인력낭비가 심하다 주장, 결국 우유소를 폐지하고 예빈시에서 대신 우유를 관리했으며 송아지의 젖을 빼앗아 먹는 것은 유교사상에 어긋난다고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Q. 베르사유 조약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베르사유 조약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해 연합국과 관련국, 독일 사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으로 440조로 된 방대한 것으로 베르사유 체제라 하는 국제 질서를 형성해 제 1차 세계 대전 뒤의 국제 관계를 규정한 중요한 의미를 지녔습니다.국제 연맹 규약,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할양, 벨기에와 폴란드 등에의 영토 할양, 오스트리아의 독립 보장, 식민지 등 독일의 국외 권익 포기, 육해군의 제한, 징병 폐지 , 독일의 전쟁 책임과 배상 의무, 연합국의 라인란트 15년 간 점령 등을 규정했습니다.이로 영국, 프랑스 등은 베르사유 체제라는 국제질서를 형성, 1936년 나치 정권이 라인란트 비무장 지대를 무장화함으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Q. 베트남 호치민을 동양의 파리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58년부터 베트남과 프랑스는 전쟁을 했고, 1859년 2월 17일, 프랑스 해군은 리고 드 주누이 제독 지휘하에 사이공을 점령, 1859년 프랑스에 정복당한 후 이 도시는 식민지 기간동안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며, 현재도 수많은 전통 서양식 건축양식을 반영한 건물들이 남아있으며 이는 사이공이 동아시아의 진주 또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