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트롬본은 어떤 음악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트럼본은 관현악단과 취주악단의 필수 상비 악기이며 재즈에서 많이 사용됩니다.고전주의 시절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무대 음악 편성에 자주 포함, 재즈에서는 초기 뉴올리언스 재즈에서 특유의 글리산도 효과와 함께 악단의 중저음역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었고, 빠른 속도보다 약간 느긋한 발라드 계열에서 강세를 보였으며, 비밥 시대 J.J.존슨이라는 기교파 연주자가 나와 트롬본을 트럼펫이나 색소폰 급으로 끌어올리는 속도를 보여주며 이를 계기로 모던 재즈에서도 기교적인 솔로를 연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재즈를 제외하고 독주 악기로써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클래식 영역에서 금관 5중주나 금관 합주 같은 음악에서 쓰이는 것이 소편성으로서는 대세인 편입니다.
Q. 청양고추할때 이 청양의 어원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청양고추는 1983년 중앙종묘의 유일웅 박사에 의해 개발, 고추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3년간 연구 및 시험재배를 한 경북 청송과 영양군에서 이름을 따 청양고추로 이름지어졌습니다.자세히 말하면, 청양고추는 종묘 업체인 중앙종묘와 오뚜기에서 1983년 개발한 고추 품종으로 중앙종묘는 청양 외에 청명, 청복, 조은 , 조향, 조홍 등의 수십 종의 고추 품종을 개발해 등록, 1998년 IMF사태로 인해 멕시코계 다국적기업인 세미니스가 한국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합병해 청양고추의 개발사가 흡수, 개발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유일웅 박사가 태국 고추와 제주도 고추를 잡종 교배해 만들었고, 유일웅 박사는 친분이 있던 청송, 영양의 농민들에게 키워보라 나눠준 것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고추 품종의 명칭과 동일한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충남 청양군은 청양고추라는 명칭의 유래가 1968년 중앙종묘회사에서 청양에서 고추가 잘 자란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양군 농업기술센터 소장에게 품종을 골라줄 것을 부탁하고 좋은 종자가 선정되면 그 고추에 청양고추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기 때문이라 주장하며, 청양군은 청양고추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자 청양고추축제를 개최, 청양군 농촌지도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청양이 청양고추의 원산지라 주장하는데 청송군과 영양군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청양군은 2009년 군비를 들여 식탁위의 화려한 혁명고추 책자를 발간하고 청양고추의 원산지는 청양 이라는 연구 용역결과가 나왔으며 이번에 청양고추 원산지에 대한 논란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주장, 청양고추 콘텐츠 구축 연구용역을 맡은 평생교육실천 포럼은 청양고추의 원산지가 충남청양이라는 결과를 냈다며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 자를 따 청양고추로 명명한 품종을 등록했다고 하나 종자를 만들었다는 근거는 없다고 주장합니다.그러나 청양군의 주장과 달리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 당사자인 중앙종묘는 자사 홈페이지 게시물을 통해 1970년대 말 부터 1980년대 초 , 소과종이 대과종보다 가격이 높고, 특히 국내 최대 주산지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청송군, 영양군 지역에서 소과종이 주로 재배되어 이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적시하여 명칭의 유래가 청양군과는 무관함을 밝혔지만 1998년 중앙종묘가 세미니스에 인수된 이후 홈페이지 개편을 거치며 해당 게시물이 수록된 게시판은 사라졌습니다.국립종자관리소에 청양고추의 품종개발자로 등록되어있는 유일웅 박사는 조선일보, 파이낸셜뉴스 등의 언론사 공식 인터뷰를 통해 청양고추 품종은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해 만든 것으로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 현지 농가의 요청에 의해 청송의 청, 영양의 양 자를 따 청양고추로 명명해 품종 등록을 했다고 밝혔습니다.청양고추의 유래에 대한 객관적인 학술 자료는 서울대학교 출판부의 한국채소종자산업발달사에 매운맛이 더하고 음식맛이 좋다고 하며 계속 공급해줄 것을 요구해 와 청송의 청 자와 영양의 양자를 합해 청양고추로 명명하고 시판하게 되었다며 299페이지 청양고추 명칭 유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자면 청양군 유래설은 지역이권에 민감한 지방자치제 군수의 영향 아래 있는 청양군 농업기술센터의 주장과 군비로 용역을 맡긴 평생교육시러포럼이란 단체의 신뢰성 여부가 논란이 됩니다.반면, 청송, 영양 기원설은 중립적인 중앙 행정관서인 국립종자원의 기록 및 청양고추 개발자인 유일웅 박사의 인터뷰 내용이 일치해 학계의 연구총서 자료 등 중립성과 신뢰성을 보입니다.
Q. 신라의 왕릉 중 무덤의 주인이 확인된 왕릉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주인이 확인된 왕릉으로는 선덕여왕릉, 무열왕릉, 문무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 경순왕릉 이 있습니다.
Q. 대왕암은 어떤 근거로 문무대왕의 릉이라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록과 대조해 감은사지나 이견대 등의 용도, 구조 및 위치로 보아 대왕암이 바로 승하한 문무왕을 장사지낸 문무왕릉임은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을 위해 인근에 왕사 감은사를 세우고, 용이 드나들수 있는 수로까지 파놓았는데 이 수로가 동해 바다로 이어져 대왕암으로 직결됩니다.신문왕이 만든 전망대인 이견대 역시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장소에 있으며, 이 대왕암은 오랫동안 댕바우라 하여 문무왕의 왕릉으로 알려졌고 해녀들은 이 근처를 신성시해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1964년 10월 24일 한국일보는 문화재청과 함께 신라오악학술조사 사업을 통해 문무왕릉에 대해 조사하다 문무왕릉이 대왕암 바위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며 이를 조사하게 됩니다. 조사내용으로 보면 바위 아래 공간이 발견되었으므로 대왕암 내부 복판 바닥에 관이나 유골상자를 안치할 시설을 안치하기 위한 홈을 파고, 그 위를 복개석이라 칭한 거대 바위 덩어리를 덮었다고 발표합니다.이 의견을 보면 대왕암은 물속에 유골을 모신 수중릉의 개념과 일치, 당시 직접 몸으로 조사했는데 결과 바위 아래 어느 정도 틈새나 공간이 있음을 알고 바위 아래 유골과 부장품을 모신 공간이 있다는 학설을 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