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팔왕의 난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팔왕의 난은 291년부터 306년까지 이어진 중국 서진의 내란으로 서진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서진 황실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팔왕의 난이라는 이름은 내란을 주동한 주요 황족 제후왕이 8명인데서 유래했습니다.팔왕의 난이 초래한 계속된 혼란으로 인해 서진의 통치기반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영가의 난으로 수도인 낙양이 이민족에게 함락되며 서진이 멸망, 이후 살아 남은 황족 사마예가 강남에서 피신해 나라를 다시 일으켰지만 과거 서진의 영토를 수복하지 못했고 화북지방은 흉노 등이 정복했습니다.서진 1대 황제 무제는 건국 후 황족의 권위와 국가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통치 강화를 위해 아들 , 조카 등 황족을 왕으로 임명하여 군대와 조세권 등을 주고 해당 지방을 통치하도록 했으나 무제 사후 중앙정부 권한이 약화되면서 이들은 그들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 간섭하는 도전 세력이 되어 정치 혼란의 빌미를 제공합니다.2대 황제 서진 혜제는 암무한 제왕으로 무제 사후 즉위하자마자 계모인 황태후 양씨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며 그녀의 친정인 양준 일가에게 대부분의 권력이 주어지며 이에 정치적 야심이 있는 황후 가씨는 정권을 잡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사실 무제는 황태자 사마충의 무능함에 실망해 황태자를 제왕 사마경으로 바꿀 것을 고려하나 이를 미리 알아챈 신하 가충이 무제에게 황태자에 대한 능력을 테스트 하도록 권유, 미리 답을 황태자에게 알려 무제의 의심에서 벗어나 황태자 지위를 유지함으로 가씨 집안이 혜제에게 기여한 바가 컸다고 보나 권력에서 배제됨에 따라 양씨 일족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됩니다.황후 가씨는 여남왕 사마량과 초왕 사마위를 회유해 도움을 청하니 초왕 사마위는 군사를 이끌고 수도에 쳐들어왔고 황제의 칙서를 위조해 양준을 반역죄로 몰아 양준과 그 일족을 죽였습니다.사후 권력은 연장자인 여남왕 사마량에게 맡겨졌고 황후 가씨는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에 가씨는 당시 친위대장인 초왕 사마위와 결탁해 황제의 칙령을 위조해 사마량을 반역되로 몰아 공격, 군사 시반이 취약해 궁지에 몰린 사마량은 자살하게 됩니다.사마량 제거 후 권력 장악기회를 잡은 사마위가 주저하던 이틀동안 황후 가씨는 권력 장악에 방해가 되는 사마위를 제거하기 위해 사마위가 단독으로 황제의 칙령을 위조해 사마량을 살해했다고 소문을 퍼트려서 정치적 입지를 무너뜨리고 결국 체포, 처형되도록 했으며 이후 정적이 없어진 가씨는 가충 등 그녀의 일족과 함께 권력을 독점합니다.혜제와 황후 가씨에게서는 자녀가 없고 다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황태자 사마휼이 있었고 가씨는 사마휼의 재능에 위기감을 느끼고 제거하려 했습니다.가씨의 야심을 느낀 사마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리석음을 가장, 노점을 궁궐에 열 정도로 노력하나 가씨에 의해 모반 누명을 쓰고 황태자 자리에서 폐위, 300년 결국 가씨에 의해 살해됩니다.이에 조왕 사마륜은 제왕 사마경과 공모, 칙서를 위조해 군사를 일으켜 황태자 살해 죄를 물어 가씨와 그의 일족을 처형, 301년 사마륜은 혜제를 유폐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합니다.사마륜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마경은 장사왕 사마애, 성도왕 사마영 및 하간왕 사마옹과 공모해 군사를 일으켜 사마륜을 죽이고 혜제 복위 후 정치실권을 장악한 사마경은 함께 궐기한 동지들을 배제하고 권력을 독점, 실제로 황태자도 독단으로 결정합니다.이에 사마애, 사마영, 사마옹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사마경을 살해, 사마경 사후 국정 운영권을 놓고 사마애 등 3인간 다툼이 벌어져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사마애는 사마영과 사마옹에게 공격당해 죽었으며, 사마영이 황태자이자 승상으로서 정치를 맡게 되나 낙양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사마영은 사마옹의 부하 장방에게 낙양을 통치하게 합니다.서서히 사마영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전횡하려 하자 이에 대해 동해왕 사마월과 혜제의 막내동생 예장왕 사마치가 반기를 들었고 한때 사마영에게 패했던 그였으나 흉노와 선비 등의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해 이번엔 사마영을 황태자 자리에서 끌어내립니다.이후 낙양을 수호하던 장방과 사마옹을 공격해 강화를 원했던 사마옹을 체포, 사마영과 사마옹을 살해한 사마월은 306년 죽은 혜제의 뒤를 이어 사마치를 회제로 옹립, 자신은 그를 보좌합니다. 가씨에 의햐 양씨 추방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팔왕의 난은 이렇게 종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