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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은서 전문가
성신학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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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의 임금인 철종은 어떻게 왕이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원범이 19살이던 1849년 순조의 손자이자 24대 왕인 헌종이 23살의 나이로 후사가 없이 죽게되자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인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헌종 7촌 재종숙이자 순조의 5촌 조카인 이원범을 대왕대비의 자격으로 순조의 양자로 입적시켜 차기 국왕으로 지명하게 됩니다.이원범 위로는 작은형 이욱이 있었지만 대체로 양자가 입적해 나가는 집안의 남은 장자는 그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므로 둘째가 양자로 들어가는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이원범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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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거문고와 가야금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거문고와 가야금은 우리나라 전통 악기 입니다.거문고와 가야금은 현의 수와 연주법이 차이입니다. 가야금은 줄이 12개, 거문고는 6개이며 거문고는 손가락으로 직접 튕겨 소리를 내지만 거문고는 술대를 이용해 줄을 치며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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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집트 문명은 수천년전부터 농사에 동물을 이용했고,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된 달력, 또 최초로 빵이 등장했으며, 보리를 키워 맥주를 만들었고, 개코 원숭이로 지금의 경찰견 처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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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고흐는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살아있을 당시 평론가가 전시회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고 평론한 글을 보면 알수있습니다.-반 고흐는 색의 명암이나 색조의 정확성에 그리 연연하지 않고 붓을 격렬하게 놀려 거대한 풍경을 그렸다 양탄자를 향해 얼룩덜룩한 책 더미가 놓여있다. 연구에는 괜찮을 법한 모티브이지만 회화의 소재로는 적합치 않다.-요한나는 고흐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고흐가 남긴 편지를 정리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1914년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로 출간하며 이 책은 고흐의 명성이 올라가는데 기여, 이 책이 영문판이 출간 된 후 고흐의 명성이 더 올라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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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차르트와 샬리에르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차르트는 애초에 음악계 전체에서 그와 친했던 사람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사회성이 낮았고, 반대로 살리에리는 재능, 부,명예, 인간관계를 모두 갖춘 인물로 모차르트를 질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그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모차르트의 인성, 특히 친한 사람들에게는 다정했지만 대체로 경박하고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그 특유의 가벼운 성격을 살리에리가 마땅치 않아 했기 때문이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훼방놓았다는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망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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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폴레옹이 정말 그렇게 키가 작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나폴레옹은 당시 평균 키 이상으로 실제 키는 167~168cm으로 당시 프랑스 20대 군인들의 평균 키인 164cm보다 컸습니다.그의 키가 작다고 와전된 것은 미터법을 제정하기 이전이므로 프랑스식 도량형과 영국식 도량형이 다른데도 영국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식 도량형으로 잰 키를 자신들의 영국식 도량형으로 반영해 수치가 작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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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플라톤은 기골이 장대하고 레슬링 실력이 뛰어났다는데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플라톤의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 입니다.그는 디오니시오스에서 글을 배웠고 아르고스 출신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에게 체육교육을 받았습니다.그는 체격이 좋은 탓에 아리스톤에게서 넓다 는 의미를 지닌 플라톤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고 레슬링 경기에 참여해 이스트미아 경기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하는 등 실력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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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바벨탑은 어느 지역에 있었던건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창세기 11장에 등장하는 건축물로 ,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고 계속 쌓았는데 그 오만함에 분노한 야훼가 인류의 문명 발전을 우려하며 모든 인간의 말을 제각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버리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이 지역에는 뒤섞다라는 의미로 바벨이라 이름붙었다고 합니다.창세기 기사에 니므롯의 영역이 시날 땅 바벨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니므롯에 바벨탑을 세웠다고 추정되며, 여러 후보지가 존재하지만 바빌론의 마르두크에게 바쳐진 지구라트인 에테멘앙키가 가장 유력하게 여겨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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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우리나라 백성의 사망에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사망원인은 다양했습니다. 배고픔,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 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질병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의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고 위생상태,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기록에 따르면 1821년 한양에서 구토하고 설사하는 병의 증상으로 인해 평양성 안에서만 사망한 이가 하루 사이에 삼백명 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조선 정부는 이 병이 무엇인지 조사하기 시작,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를 통해 평양부의 성 안팎에 괴질이 유행하며 사망하자 열흘 사이 1천명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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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임진왜란 당시 항왜의 규모는 어느정도 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러 이유로 전쟁 초기부터 불만을 품은 일본군 병사들이 조선에 귀순하거나 투항하는 일이 많이 발생, 이때문에 일본군 무사들이 탈영을 막기 위해 본진에 목책을 설치하기도 했고 당시 투항한 항왜들 중 일반 병사와 무사, 김충선이나 여여문 등의 장교급들도있었습니다.조선 조정은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히거나 귀순한 일본군을 처형했으나 이들이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이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이후로 항왜들의 수가 증가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 수가 1만이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각지에서 포로로 잡힌 일본군과 일본군 투항자가 급증해 조서 조정이 이를 효율적으로 분산 배치하려 머리를 싸맬정도였고 임진왜란이 끝난지 30년 가까이 지난 이괄의 난 때도 100명이 넘는 항왜를 동원한 것으로 보아 최소 수천명의 항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은 일본군의 전술과 조직에 해박하고 총포술, 전쟁 경험이 풍부해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큰 힘이 되었고 오랜 평화로 군사력이 약화되어 당시 전투 기술이 열악했던 조선군에 총포술과 검술 등을 퍼뜨리는데 큰 공을 세워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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