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모차르트와 샬리에르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차르트는 애초에 음악계 전체에서 그와 친했던 사람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사회성이 낮았고, 반대로 살리에리는 재능, 부,명예, 인간관계를 모두 갖춘 인물로 모차르트를 질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그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순전히 모차르트의 인성, 특히 친한 사람들에게는 다정했지만 대체로 경박하고 짓궂은 농담을 즐기는 그 특유의 가벼운 성격을 살리에리가 마땅치 않아 했기 때문이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훼방놓았다는 이야기는 모차르트의 망상이었습니다.
Q. 조선시대 우리나라 백성의 사망에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사망원인은 다양했습니다. 배고픔,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 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 질병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의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았고 위생상태,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기록에 따르면 1821년 한양에서 구토하고 설사하는 병의 증상으로 인해 평양성 안에서만 사망한 이가 하루 사이에 삼백명 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조선 정부는 이 병이 무엇인지 조사하기 시작, 평안감사 김이교의 보고를 통해 평양부의 성 안팎에 괴질이 유행하며 사망하자 열흘 사이 1천명이 되었다는 보고를 받기도했습니다.
Q. 임진왜란 당시 항왜의 규모는 어느정도 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러 이유로 전쟁 초기부터 불만을 품은 일본군 병사들이 조선에 귀순하거나 투항하는 일이 많이 발생, 이때문에 일본군 무사들이 탈영을 막기 위해 본진에 목책을 설치하기도 했고 당시 투항한 항왜들 중 일반 병사와 무사, 김충선이나 여여문 등의 장교급들도있었습니다.조선 조정은 전쟁 초기에 포로로 잡히거나 귀순한 일본군을 처형했으나 이들이 전투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이들을 적극 활용했습니다.이후로 항왜들의 수가 증가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 수가 1만이 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각지에서 포로로 잡힌 일본군과 일본군 투항자가 급증해 조서 조정이 이를 효율적으로 분산 배치하려 머리를 싸맬정도였고 임진왜란이 끝난지 30년 가까이 지난 이괄의 난 때도 100명이 넘는 항왜를 동원한 것으로 보아 최소 수천명의 항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은 일본군의 전술과 조직에 해박하고 총포술, 전쟁 경험이 풍부해 일본군을 무찌르는데 큰 힘이 되었고 오랜 평화로 군사력이 약화되어 당시 전투 기술이 열악했던 조선군에 총포술과 검술 등을 퍼뜨리는데 큰 공을 세워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