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왕조실록은 어떤 과정을 통해 기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실록 편찬은 대게 전왕이 죽은 후 다음 왕의 즉위 초 이루어지며 춘추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에서 담당했습니다.실록청의 총재관은 재상이 맡았으며 대제학 등 문필이 뛰어난 인물이 도청 및 각방 당상으로 임명, 시정기와 사관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사초, 각사 등록, 승정원일기 가 실록 편찬의 기본 자료였고, 문집, 일기, 야사류 등도 이용되었으며 후기에는 비변사등록과 일성록도 사용되었습니다.초초, 중초, 정초 의 3단계로 나누어지며 초초는 각방의 당상과 낭청이 자료를 분류, 중요자료를 뽑아 작성한 초안이며 중초는 도청에서 그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 정초는 총재관과 도청 당상이 중초를 교열하고 최종적으로 수정, 첨삭을 하여 완성했습니다.정초본을 인쇄하고 사고에 봉안하고 편찬에 이용된 시정기, 사초 및 초, 중, 정초는 모두 세초하였는데 이는 앞으로 필화를 막자는 것입니다.사고에 수장시킨 실록은 충해와 습기에 의한 오손을 막기 위해 정기적으로 포쇄하도록 했고 이상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형지안을 작성, 실록은 선왕 및 신하들의 행적과 정책의 득실을 기록한 것이었으므로 국가의 제례나 사진 접대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 전례를 참고하기 위해 사관이 내용 일부를 확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누구의 열람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Q. 고려제일검 척준경이 실존인물인지?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곡산척씨의 시조로 집이 가난해 학문을 닦지 못하고 무뢰배들과 교유 후 계림공의 종자로 있다 추밀원 별가가 되었습니다.1104년 이래 동여진 정벌에 여러번 참가해 승전, 큰 공을 세우고 1117년 급사중으로 서북면 병마부사 , 1122년 위위경 직문하성, 1123년 이부상서 참지정사, 1124년 개부의동삼사 검교사도 수사공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습니다.1126년 이자겸과 함께 인종을 폐위하고자 군사를 이끌고 대궐을 침입했다가 왕의 권유로 뜻을 바꾸어 자겸을 잡아 귀양보내고 그 공으로 추충정국협모동덕위사공신이 되었으며 이후 권세를 휘두르다 1127년 좌정언 정지상의 탄핵을 받고 암타도에 유배, 이듬해 곡주로 이배되었습니다.1103년 죄는 있지만 공도 적지 않아 처자에게 직전을 돌려주었고 1144년 복권되어 조봉대부검교호부상서에 기용되었으나 곧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