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전주의 부활, 인본주의 ,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은 미술분야로 당시 미술은 과학의 차원으로까지 간주, 자연을 탐구하는 수단인 동시에 발견의 기록이었습니다.미술은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원근법 등의 수학적 원칙에 따라 실행되었습니다.
Q. 키예프 루스국의 성립과 멸망과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세 초기, 슬라브족의 이동으로 인해 유럽의 동쪽 대부분은 슬라브인이 다수인 지역이 되었고 그 중 중앙유럽에 자리잡은 서슬라브와 발칸 반도에 자리잡은 남슬라브와 달리 동유럽에 자리잡은 동슬라브는 기독교 문명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고 여러 부족들로 나눠져있었습니다. 그 중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일대는 튀르크계 하자르 칸국의 영향권에 있었고, 노브고로드를 포함한 러시아 북서부는 슬라브족이 우랄계 민족이나 발트계 민족과 함께 살던 지역이었습니다.그러던 중 8세기 중반부터 바이킹의 이주가 시작, 9세기에 이르러 유리크가 이끄는 바랴그인 바이킹 세력이 855년 라도가호수에 정착, 862년 일멘 호수에 도달해 노브고로드를 선설, 류리크 사후 세력을 이어받은 노브고로드의 올레그가 남하해 키예프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것이 키예프 루스의 시작입니다.12세기 초반부터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지중해 무역로가 더 각광을 받게 되면서 흑해와 스칸디나비아를 잇는 무역로가 쇠퇴함에 따라 키예프 루스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는데 당시 키예프 루스는 체계적인 세금 징수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무역 쇠퇴는 국가 경제에 치명타였습니다.키예프 루스는 체계적인 대공위 계승 시스템 보다 대공위 계승자들이 각 지방 도시를 다스리며 상황에 따라 서로 내전을 벌이는 일종의 봉건적인 상태로 국력을 단결시키기 어려웠으며 대크킹시대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 같은 유능한 지도자들이 나타나 쇠퇴기에 접어든 키예프 루스를 중흥시켰을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으며 경쟁자들에게 쫓겨난 대공은 다시 세력을 키워 키예프 대공으로 복위했으나 뱌체슬라프 1세 때부터 쫖겨났다가 복위함이 관례처럼 되풀이 되었으며 류리크 2세는 5번이나 즉위했습니다. 이렇듯 키예프 대공 자리가 불안정해지자 키예프가 각 공국을 통제할수 있는 힘 또한 약해졌고 키예프 루스는 므스티슬라프 1세대에 브세볼로드 1세의 자손들을 모두 동로마 제국으로 추방했지만 결국 그를 마지막으로 이후 여러 공국들로 분열된 채 노브고로드 공화국, 블라디미르-수즈달 대공국, 갈리치아 - 볼히니아 공국 등이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하자르 칸국과 페체네그족을 주무르던 키예프 루스였지만 말기에 접어들면서 유목민족인 쿠만, 즉 폴로베츠족과 볼가 불가르의 침략 앞에 괴로워했으며, 키예프 루스의 중심지였던 보리스테네스 강 일대 비옥한 흑토 평야는 전성기 시절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해지만 평야 지대 특성상 중앙 아시아와 동유럽을 넘나들던 유목제국의 기습과 침략에 매우 취약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분열되어 있던 루스 공국들은 1223년 몽골 제국이 숙적인 쿠만을 침공하자 쿠만보다 더 위험한 상대라 파악하고 연합군을 구성했으나 칼가강 전투에서 불세출의 명장 우량카이 수부타이에게 대패, 이번 침공은 본격적인 공격이 아니라 호라즘 왕조 잔당을 처리하고자 지나가다가 건들여본 정도였으므로 몽골군은 이기고도 그냥 돌아갔지만 시간이 흘러 1237년 몽골 제국의 바투 칸이 본격적으로 루스를 침공, 바투는 랴잔, 블라디미르, 수즈달 등 동쪽의 공국들을 하나하나 박살내며 진격했고 키예프 대공은 싸우기 전에 도망가고 시민들은 군사 지도자 드미트로의 지휘 아래 끝까지 항전, 결국 치열한 공성전 끝에 성벽은 무너지고 키예프 루스는 처참하게 멸망하게 됩니다.
Q. 우리나라에 전기가 처음 들어온 적은 언제 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에 최초로 전기가 들어온 곳은 경복궁 안의 경천궁으로, 1883년 고종은 민영익, 홍영식 등을 미국에 사절단으로 보내 선진 문물을 돌아보게 하였고 미국에서 각종 전기 발명품들을 보고 감탄한 사절단은 우리나라로 돌아와 고종에게 발전소를 세울 것을 건의, 결과 조선 정부는 미국에 전등을 켜기 위한 발전 설비를 주문합니다. 조선 정부에서 전등 설비를 발주한 회사는 에디슨 전등회사로, 1886년 에디슨 전등회사에서 직원이 파견되어 본격적인 설치 공사에 들어갔고 1887년 우리나라 첫 전깃불이 켜졌습니다.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 설비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16촉 광열등 750개를 켤 수 있는 규모로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석탄을 연료로 발전기를 돌렸는데 발전기 가동으로 연못의 수온이 상승하는 바람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후 전등을 일러 물고기를 끓인다는 뜻의 증어 라 부르기도 했습니다.이 발전 설비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발전기를 계속 움직이기 위해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던 석탄 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우리나라에 이 발전 설비들을 유지하고 관리할 기술자가 없어 기술자들을 외국에서 초빙, 이들을 초빙하는데에도 큰 돈이 들었고 고장도 잘나고 돈도 많이 들고 시끄러워 사람들은 이 전등을 빗대어 건달불 이라 불렀습니다.
Q. 논산11경에는 어떤 장소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논산 11경은 관촉사 은진미륵, 탑정호와 출렁다리, 대둔산 수락계곡, 계백장군유적지(백제군사박물관),쌍계사, 개태사, 강경포구와 근대역사거리, 노성산성과 명재고택, 세계유산 돈암서원, 논산선샤인랜드, 종학당과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