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몽골군은 어떻게 유럽까지 쳐들어갈 수 있었던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몽골군이 유럽까지 쳐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출귀몰한 기동력 덕분이었다. 당시 보통 몽골 기병 한 명이 서너 마리의 말을 끌고 다니며, 길게는 하루 이동 거리가 200km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러시아와 유럽은 전광석화와 같은 몽고군의 기습에 혼비백산했다. 이 정도면 당시의 전령보다 빠른 속도였다. 공격받는 입장에서 전방의 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가진 전령보다 몽골 부대가 더 빨리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느낌이었을 것이다.몽골군의 비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기동성을 저해하는 보급 부대조차 없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군대가 움직일 때는 그 뒤를 따라가는 보급 부대가 있는 것이 상식이다. 식량과 보급품들을 지원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전투병 보다 이러한 보급 부대 인원이 더 많았다. 하지만 대규모 보급 부대와 같이 움직이는 전투 부대는 기동력이 빠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이러한 보급 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행군 속도가 빠르고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다. 그 시대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몽골군은 보급 부대 없이 장병 스스로 자기 먹을 걸 안장 밑에 갖고 다니며 스스로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급할 때는 따로 식사 시간이 없이 끊임없이 달리면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말젖 분말과 육포 가루였다. 마르코 폴로의 기록에 의하면 몽골군은 4~5kg 정도의 말젖 분말을 휴대하고 다니다가 아침 무렵에 500g 정도를 가죽 자루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저녁 때 불려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투 중에는 '보르츠'라고 불리는 육포 가루를 물에 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의 육포는 주로 소고기로 만들었으며, 경우에 따라 양고기, 말고기, 물고기 등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Q. 고려시대 자제위라는 기관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자제위는 1372년(공민왕 21) 10월 왕권을 강화하고 신변 호위 및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궁중에 설치하였고, 공신과 고위 관직자의 자제를 선발하여 배속시켰으며 대언(代言) 김흥경(金興慶)으로 하여금 총관하게 했다.『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죽은 뒤 젊고 용모가 빼어난 젊은이들을 이곳에 소속시킨 뒤 이들과 변태 성욕을 즐기고, 후사를 얻기 위하여 이들로 하여금 비빈(妃嬪)들을 욕보이게 하였다는 등 부정적으로 서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조선 초의 사가들에 의하여 조선왕조의 개창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한편 공민왕은 국내외의 불안한 정정이 거듭되면서 결국 자신이 설치한 자제위 소속의 홍륜(洪倫) 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자제위에 소속된 인물로는 권진(權瑨)·한안(韓安)·홍관(洪寬)·노선(盧瑄)·홍륜 등이 확인되는데, 이들은 뒤에 효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산까지 몰수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