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는 왜 갈등이 있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나긴 상호 대립, 내전, 동맹, 동군연합의 역사 끝에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은 1707년 대등하게 영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양국의 통합은 스코틀랜드가 다리엔 갭으로의 진출 실패 이후 이루어진 것인데다가 기본적인 체급 차이도 있기 때문에 영국의 역사는 인구 등의 면에서 우월한 잉글랜드 중심으로 흘러갔다. 때문에 19세기 아일랜드 자치권 운동을 시작으로 스코틀랜드 역시 자치권 운동을 진행해 왔다. 1990년대 이후 타협책으로 영국 중앙 정부는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확대해 왔으며 현재는 독자적인 의회와 정부가 외교/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를 통치하고 있다.켈트계인 스코트인의 지방이라 잉글랜드를 굉장히 싫어하고 죽어도 잉글랜드에게 지지 않으려고 하는 지역성이 있다. 본격적인 무장 독립 운동은 아니지만 영국에서 독립하자는 움직임도 상당히 많은데 그런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인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 밴드 프로클레이머스가 있다. 2002 월드컵 때 스코틀랜드 출신 국회의원이 "잉글랜드를 응원하자"고 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Q. 로마황제 로물루스 아우수그툴루스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물루스아우구스툴루스는 로마 제국(서로마 제국)의 62대 황제로, 당시 서로마 제국 내의 실력자였던 오레스테스의 아들이다. 원래 이름은 로물루스였으며, 황제가 되면서 아우구스툴루스(작은, 어린 아우구스투스)가 덧붙었다. 서로마 제국이 오도아케르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남게 되었다.로물루스가 즉위한 것은 475년 10월 31일이었지만, 1년도 안되서 476년 9월 4일에 게르만 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한다. 역사적으로 이 사건은 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 상실 혹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등으로 불리지만, 서로마 황제라는 지위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시대에는 사실상 아무 권위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오도아케르 같은 게르만 족 장군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로물루스의 아버지이자 섭정인 오레스테스 또한 476년 8월 오도아케르에게 살해되었다). 로물루스의 어린 나이를 감안해 오도아케르는 폐위하는 데서 그치고 죽이지는 않았다. 퇴위된 황제의 가족은 칸파냐로 옮겨져 오도아케르에 의해 퇴위연금을 받고 살았으며, 오도아케르가 패한 뒤에도 새로운 권력자가 된 동고트 족의 테오도리쿠스 대왕으로부터 계속해 연금을 지급받았다고 한다.폐위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생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몇 백 년을 이어질 수도원을 짓는 등의 업적을 남겼지만, 이후 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이탈리아의 지배권을 다시 획득하게 되는 536년까지는 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Q. 태국의 왓 프라깨오는 왜 태국의 랜드마크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왓 프라깨오는 태국 방콕의 절(불교)이며 정식 이름은 왓 프라스리라따나사사다람으로, '에메랄드 불상의 사원', 혹은 '에메랄드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태국 불교의 상징과도 같은 에메랄드 불상이 안치되어 있어 태국 전역에서 가장 신성한 사찰이기도 하다.짜끄리 왕조의 시조인 라마 1세 시절인 1783년 처음 지어졌다. 그 이래로 모든 태국 국왕들은 왓 프라깨오를 증축하면서 높이 받들었고, 이는 현재 국왕인 라마 10세 시기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덕분에 왓 프라깨오는 거의 태국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통한다. 현재는 방콕 왕궁, 왓 포 등과 함께 방콕 최고 관광지들 중 하나로 매년 8백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