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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전문가입니다.

한정현 전문가
부산예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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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중에 체르니 번호는 어떤 기준으로 부여된건가요?
바이엘을 마친 사람이 일반적으로 그 다음으로 배우게 되는, 한국의 피아노 연습 정규 코스의 바이엘 바로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교재이다. 바이엘 다음이 체르니 100(Op. 139)이고 그 뒤로는 체르니 30(Op. 849) → 체르니 40(Op. 299) → 체르니 50(Op. 740)의 코스를 밟는다. 알고 보면 저 숫자는 책에 들어 있는 곡 개수를 나타낼 뿐이지만, 난이도와도 은근히 관련이 있어서 100 초반은 바이엘 수준이고, 30보다 40이 어렵고 40과 50은 좀 더 음악성이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악보만 읽는 수준으로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40이 더 쉽겠지만, 둘 다 원속도로 연주한다면 40이 50보다 기교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극도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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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피아노 건반의 개수가 88개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아노 건반이 88개인 이유는 사람의 청각범위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 영역은 약 20~2만㎐다. 이 가운데 뇌가 구별할 수 있는 최고 주파수는 4000㎐에 불과하다. 여기까지의 음역(27.5~4186㎐)을 연주하는 데 최적의 건반 수가 8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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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덕여왕의 업적은 어떻게 되는것인지?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덕여왕은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이 빈번해지자 당과 연합하여 국가를 보존하려 했고, 백제의 침략으로 낙동강 방면의 거점인 대야성이 함락되자 당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당에 유학 중이던 자장을 귀국시켜 불교사상을 왕권강화책으로 적극 활용했고, 호국 중심 사찰인 황룡사에 왕권의 상징물로 구층목탑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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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중세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마녀로 몰렸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마녀사냥은 기독교 절대주의를 강요한 성직자들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재위1271~1276)이 정착시킨 수도자 독신주의가 마녀사냥을 부추겼다는 해석이 있다. 독신제도에 갇힌 사제들이 억압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런 광기는 점차 민중들에게 전파됐고 사회적 약자들, 즉 미망인이나 노인, 고아에게 집중됐다. 자연재해나 페스트의 창궐로 피폐해진 민심은 더욱 잔혹하게 희생양을 찾게끔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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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총독부의 위치는 풍수지리설에 기반해서 지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일제풍수모략설로 잘 알려진 것으로는 쇠말뚝이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유명한 것이 소위 '서울 대일본(大日本)' 구조물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공중에서 봤을 때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日), 당시 경성부청이던 서울 시청 건물은 본(本)으로 보이게끔 설계했다고 하며 북악산의 대(大)라는 형상과 합쳐져 '대일본'이 된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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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악의 도시 빈왜 그런이름이 붙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빈에서는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 베토벤이 생애 대부분을 보냈고,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태어났으며, 요한 슈트라우스가 감미로운 빈의 왈츠를 작곡했다. 시대를 초월해서 많은 천재 음악가들이 탄생하고 활동했던 클래식음악의 유서 깊은 도시로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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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에 건축물 공사에는 어떤 장비 및 기구들이 이용되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 사용했던 깎는 공구로 거피칼, 깎낫, 훑이기, 까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거피칼은 원목의 껍질을 벗기는데 주로 사용했다. 깎낫, 훑이기, 까 귀 등은 거피칼로 껍질을 벗긴 원목을 가공하는데 사용했다. 먹통은 10여 년 전만해도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보던 도구였다. 줄을 긋는 도구로 먹통 외에‘그므개’, ‘쪼개기 그므개’라는 것이 있었다. 그므개는 같 은 간격으로 많은 줄을 그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쪼개기 그므개는 가로대에 칼날을 박아 나무판을 쪼갤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구멍을 뚫는 공구로는 여러 가지 송곳이 있었다. 그 중‘돌대 송곳’은 돌아가는 송곳자루 꼭대기와 가로지르는 쇠목의 양끝에 끈을 매달아 연결시킨 형태다. 자루를 중심으로 쇠목을 돌려 끈을 감은 후에 상하로 움직이면 돌대를 회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손쉽게 구멍을 낼 수 있었다. 단단한 나무에 정확하게 구멍을 뚫기 위해 사용했던‘쥐이빨 송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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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5.18 유공자는 왜 공개하지 않는것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보훈처는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5·18 유공자 명단은 개인신상 자료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공개 대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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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홍콩 간다라는 표현의 어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홍콩 간다"는 1960년대 시작된 속어로 홍콩은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영국령인데다가 자본이 엄청난 황금의 땅 같은 환상 등에서 오는 부러움과 동경의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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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소설은 무엇이고 대표적인 작품들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갑오개혁 이후 개화·계몽기를 배경으로 해서 이루어진 소설이 바로 신소설인데, 이것은 근대적인 신문학을 대표하는 문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신소설은 재래의 구소설, 즉 고전소설에 대하여 새로운 소설이란 뜻으로 그 명칭이 쓰였으며, 문학사적으로 《구운몽》, 《춘향전》 등의 구소설과 이광수의 무정 이후 현대소설과의 중간에 위치하는 과도기적인 소설을 가리키는 말이다. 갑오경장 이후 개화기에는 신구의 대립 관념이 비단 소설뿐 아니라 각 분야에 파급되었다. 즉 시조·신체시, 구파(舊派)·구극(舊劇) 등 재래의 연극에 대한 신파(新派)·신극(新劇) 등으로 대조되었는데, 신소설의 명칭도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찾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 불린 듯하다. 따라서 신문학 초창기에 오래된 것에 대하여 새롭다는 뜻으로 사용된 신소설이란 개념은 어떤 뚜렷한 정의를 내포했다기보다는 막연히 신구의 대립 관념이 선행된 명칭이었다. 이 신소설이란 명칭은 이인직의 《혈(血)의 누(淚)》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후 1906년 즈음부터 1916년 무렵까지 총작품 무려 3백여 종이 출판되었다. 신소설은 1917년 《무정》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 출판되어 그 배경의 폭을 넓힌다면 갑오경장부터 3·1 운동까지 약 20년 내외에 해당하며, 그 속에는 구소설을 개작한 것도 있고, 일본 작품을 번안한 것도 포함된다. 이 신소설은 이른바 ‘이야기 책’으로 불리는 구소설과 서구적인 소설의 체제를 거의 갖춘 《창조(創造)》지 이후의 현대소설과의 중간단계에 위치하는 한국 문학의 특수한 소설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소설사적으로 보아 봉건사회의 구소설, 개화기의 신소설, 현대의 현대소설로 발전적인 계보를 형성하게 되며, 이 신소설은 계몽의 문학으로서 개화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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