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백제의 요서진출설은 논라이 매우 많은데 현재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제의 요서진출설은 사실무근의 낭설은 아니며 '송서(宋書)'와 '양서(梁書)' 등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계통의 문헌에서 관련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기 북조 측과 한반도의 사서에는 이와 관련된 직접적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이 학설의 진위여부는 조선시대의 실학자들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역사학자 및 역사 애호가들에게 이르기까지 고대사 부분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난제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 사학계에서는 한 지역에 대한 영토적 직접 지배라기보다는 군사적, 상업적 거점을 확보한 것으로 보는 주장이 유력하다. 이 때문에 현대의 국정 및 검인정 교과서 등에는 '진출했다', '영향력을 미쳤다' 정도의 한정적 용법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지도상에는 별도의 영토 표기 없이 화살표만으로 나타낸다.
Q. 조선의 무관 관직에는 무엇들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392년(태조 1)에 제정된 문 · 무산계는 다소의 수정을 거쳐 『경국대전』에 법문화되었다. 이에 따르면, 무산계의 최고는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이며, 최하는 종9품의 전력부위(展力副尉)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정1품에서 종2품까지는 문산계와 동일한 관계명이 수여되었다. 또한 무과(武科)를 실시하여 문 · 무 양반체제는 더욱 정비되었다. 무과는 태종 2년 1월에 처음으로 시행되어 1등 3명, 2등 5명, 3등 20명의 28명을 선발하였고, 1등은 종7품직을, 2등은 종8품직을, 3등은 종9품직을 주되, 본래 관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기에서 1등급을 더 올려주도록 되어 있었다.관직에 있어 문 · 무반 실직 수는 5,606과(窠)였는데, 그 가운데 무반 실직은 경관직(京官職)이 3,324과, 외관직(外官職)이 502과로 모두 3,826과였다. 조선시대의 무반 관아와 관직으로는 중앙에 중추부(中樞府) ·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 오위(五衛) · 겸사복 · 내금위(內禁衛) · 훈련원(訓練院) ·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등이 있었다. 여기에는 정1품의 영중추부사에서 종9품의 부사용 등이 있으며, 지방에는 도(道) · 진(鎭) 등에 종2품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에서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직이 있었다. 무반 당상관 중에서 극소수는 의정부(議政府) · 6조(六曹) · 한성부(漢城府) · 승정원(承政院) · 도 · 부 · 목 등의 문반직에 제수되기도 하였다.무반에 선발된 자는 1402년( 태종 2) 이후 무과가 실시되면서 대부분이 무과급제자로 충당되었다. 이 밖에 부분적으로 문음 자제가 내시(內侍) · 다방(茶房) · 선차방(宣差房) 등의 성중관(成衆官), 녹사(錄事)를 거치거나 충의(忠義) · 충찬(忠贊) · 충순위(忠順衛) 등의 특수군을 거쳐 북변(北邊) 또는 연해(沿海)의 수령이 되거나, 양반 · 양인으로서 내금위 · 별시위 · 친군위의 선전관(宣傳官) · 갑사(甲士) 등의 군직을 거쳐 무반으로 진출한 경우가 있었다. 이들의 승진은 무과 · 무과중시(武科重試)나 군공(軍功) · 대가(代加) · 도시(都試) 및 근무 성적 등에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