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세종대왕이 유교정치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대왕은 유교정치의 뼈대를 구축했다고 할수 있는데 세종 대의 정치는 유교의 정치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유교정치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죠. 집현전을 통해 각종 유교의 기틀을 만들고 정리 했고 과학과 기술 면에서도 정비를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는 1434년 (세종16)에 처음 편찬 간행할 때에『삼강행실효자도 (三綱行實孝子圖)』,『삼강행실충신도 (三綱行實忠臣圖)』『삼강행실열녀도 (三綱行實烈女圖)』의 3부로 구성하고, 중국과 한국의 역대 인물에서 선정된 효자, 충신, 열녀 각 110명씩 330명의 사적을 정리한 사적 (事蹟)과 이를 찬양한 내용을 담은 시 (詩)와 찬 (讚)을 수록하였다고 합니다.
Q.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경위가 뭔지 알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은 1976년 8월 6일 한국인 노무단(KSC) 노무자 6명과 유엔사 경비병 4명이 나무를 베기 위하여 현장에 갔을 때, 북한 경비병이 그들의 목적을 물은 뒤에 나무를 그대로 두고 가라고 위협적으로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들은 철수했고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경비병력 10명, 노무자 5명으로 구성된 유엔사 작업반이 나무 주변에 도착해서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몇 분 후, 북한군 장교 2명과 병사 9명이 트럭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고 그 가운데 북한군 중위인 박철이 작업을 계속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위협하며 경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엔사 작업반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11시 경 10여 명의 북한군 경비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북한군 병력은 30여 명으로 늘어났고 이때 박철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류나무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근거리에 있던 북한 초병들이 도끼 및 흉기로 무자비하게 공격한 사건으로 미군 대위 보니파스 등 2명이 숨지고 한국인 노무자들이 다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