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쑥한왈라비203
- 생활꿀팁생활커피 마시면 화장실을 가네요. 왜 그럴까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커피에는 카페인이 들어가 있는데요. 카페인은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는 것을 막고 방광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면 오줌이 자주 마려워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됩니다.커피 말고 술 마실 때 화장실을 자주 찾지 않나요? 술을 마셨을 때 바소프레신이라는 항이뇨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하여 이뇨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 생활꿀팁생활모기에 물리면 붓고 간지러운 이유가 뭔가요 ?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가려움이란 긁거나 비벼 대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 불쾌한 느낌이다.모기가 물면 우리는 가려움을 느끼고, 오염된 지저분한 물에 들어가도 피부가 가렵다.일시적인 가려움은 이처럼 외부 물질이나 화학물질과 접촉함으로써 유발된다.또 주위 온도의 변화나 전기적 자극 등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 생활꿀팁생활우리나라에 천년고찰은 몇개나 있을까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합천 가야산 해인사(법보사찰)~802년(신라 애장왕 3년)에, 신라 왕실의 도움으로 창건되었다 한다. “해인”이라는 사찰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따온 말이라 한다. 해인사는, 화엄근본 도량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국보32호/2007년 유네스코지정)과 장경판전(국보52호/1995년 유네스코지정)을 보존하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사찰이다.해인사 사찰은 신라시대에 지어졌지만,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에, 장경판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졌다. 1398년(태조7년)에, 대장경을 보존하기 위해, 판전을 짓고,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것을, “지천사”를 거친 후, 이듬해 해인사로 옮겼다고 한다.영월 사자산 법흥사~643년(선덕여왕 12년)에, 자장율사가 이곳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라 하였는데, 1902년 대원각 스님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하였다. 신라후기인 886년에, 징효대사가 이곳에 선문을 열게 되어, 법흥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이 되어 선종의 법문을 크게 일으켰다. 법흥사는, 큰 금강송이 많아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조계종 33관음 성지의 하나이며,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모신, 법흥사 극락전 오른쪽 언덕에는, 징효대사 보인탑(보물612호), 징효대사부도(강원도 유형 72호)이 있다.태백(고한) 태백산 정암사~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는, 황룡사 구층탑과, 통도사 금강계단을 건립하고, 문수보살의 게시를 받아, 태백산 갈반지에 “석남원”(지금의 정암사)을 창건하였다. 정암사 뒷편 언덕에 있는, 국보332호 “수마노탑”은, 신비스러운 푸른 빛이 감도는데, 그 탑속에 부처님 진신사리, 가사, 염주등을 봉안하고 있다. 탑은, 정암사 뒤, 정암산 언덕에 있다. 정암사 경내 중앙에는 문수전이 있고,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궁은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지었는데, "적멸궁"안에는 불상이 없으며, “수마노탑”형상의 금박액자를 걸어 놓고 있다. 적멸궁에서 10분정도 계단을 오르면, “수마노탑”이 있다. 수차례 보수가 이어졌고, 현재의 탑은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이다.가평(포천) 운악산 현등사(대선급제사)~신라불교는, 눌지왕(411~457)시절, 육로를 통하여, 고구려 승려인 “묵호자”와, 고구려에서 온,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파하였지만, 공인을 받지 못하였다. 그 후, 이차돈의 순교로, 순교 이듬해인, 527년(법흥왕14년)에 국교로 공인되었다. 가평 현등사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후, 불과 9년뒤인, 536년에 인도의 승려인 "마라가미"를 위해 지었다는 천년고찰이다(384년, 백제에 불교를 전파한, 서역의 승려는 “마라난타”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사찰은, 그 진신사리를 탑속에 모시고, 그 탑이 보이는 곳에 적멸보궁을 짓고 있다. 하지만 현등사는, 부처님 진신사리 2점을 탑속에 모시지 않고, 극락전에 모시며,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이런 "현등사"의 또 다른 이름은 "대선급제사"라고 한다.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지나가는 길에 “현등사”에 들렸던 사람이, 아무런 노력이나 성의없이, 과거급제 만을 바라며, 공물을 올렸고, 과거에 낙방한 후, 다시 들려, 부처님의 위신력을 모욕하였는데, 그날밤 꿈에 9척 신장이 나타나, “타인을 위한 아무런 공덕이나, 급제를 위한 피나는 노력도 없이, 공물 하나로, 성공을 바라며, 감히 부처님을 모욕하느냐”며, 그사람을 죽일 듯이 짓밟고, 혼내며 꾸짖었다고 한다.이런 꿈이야기를 들은, 그의 부모는 “너가, 부처님과 인연이 깊어 그런 것”이라며, 아들을 위해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재산을 내어주며, 현등사의 중수를 돕게 하였고, 그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올리며, 3년간 “현등사”에 머물면서 공부하여, 드디어 장원급제를 하였다고 한다. 급제 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영조임금은, “현등사”에 "대선급제사"라는 절의 이름을 내리고, 그 편액을 하사하였다고 한다.오대산 상원사~705년, 또는 724년(성덕여왕4년 또는 성덕여왕23년)에, “보천”, “효명” 두 왕자가 당초 “진여원”으로 에 창건하였다. 기존의 전각은 1946년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947년 새로 건축한 것이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에는, 문수보살과 문수동자의 두분을 모시고 있다. *625병화로부터 상원사를 지켜낸 한암스님~625때, 오대산 상원사 법당에 앉아, 법당과 함께 나를 불태우라며, 상원사를 지켰던, 분이 “한암스님”이다. 한암스님은, 1933년에 울진 불영사의 “불영사사적비”를 세웠다. 아래, 영험한 나한기도처 “불영사”참조.*오대산 월정사~643년(선덕여왕1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 자장율사는 중국 산서성 청량산(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귀국후,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으라는 가르침으로, “초암을 짓고 머물은 곳”이, 현재의 월정사터이다(자장율사는, 머물면서 적멸보궁을 완성했다). 그 뒤, "수다사"의 “유연” 장로가, 암자를 다시 짓고 살면서 월정사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다.1307년(고려 충렬왕33년)에, 중창하였으나, 조선말에 소실되었고, 다시 중창하였지만, 625때, 국군에 의해, 작전상의 이유로, “17동의 전각”과 “소장 문화재”가 모두 전소되었다. 1964년이후, 탄허스님, 만화스님등이 꾸준히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의 “월정대가람”의 글씨는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지금있는 “적각전”은, 원래 과거 칠불을 모신 “칠불보전”이었으나, 중창하면서, 석가를 모시게 되어, “대웅전”이라 명명하였는데, 탄허스님이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전각이름을, “적각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태백산(소백산) 영주 부석사 ~676년(문무왕 16년)에 문무대왕의 뜻을 받들어, 화엄종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대덕의 근본 도량이다. “부석”이라는 이름은 “뜬돌”이라는 뜻인데, 무량수전 서측의 큰 바위는, 아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는 말에서 부석사라 하였다 한다(실제 노끈을 넣어 보면 거침없이 드나든다고 한다 / "부석사"는, 우리나라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한국의 산지승원"에 포함된 7개 사찰 중에 속한다. 7개사찰은 아래의 "영험한 관음보살 기도처"를 참조하세요).동해 양양 오봉산 낙산사와 홍련암~671년(문무왕 11년)에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원통보전과 홍련암을 함께 창건한 우리나라 첫번쨰로 꼽는, “관음보살의 상주처”이다. (남해의 보리암, 강화의 보문사, 여수의 향일암과 함께, 4대 관음성지의 하나). 의상대사가 만난, 푸른새가 석굴(관음굴)로 사라지자, 그곳에서 7일기도 하였는 데, 홍련이 솟고, 관세음보살이 현신하며, 관음으로부터,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곳 석굴 위에 암자를 지은 것이, “홍련암”이라 하며, 홍련암 법당마루 가운데, 작은 창을 통해, 석굴과 파도를 볼수 있다(홍련암은, 2005년 양양지역 대형 산불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신라 무열왕1년(65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사찰.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행정진하고 있었는데, 어느 비오는 밤, 길을 잃었다며 비에 젖은 몸으로, 하루 밤 재워주기를 청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재워주게 되었다. 여인은 비를 맞은 몸을 떨며, 춥다며 몸을 주물러 달라고 유혹하였다. "일체유심조"의 경지에 이른 스님은 마음을 다스리고, "나를 유혹을 하여 무엇을 얻으려 하느냐"며 여인에게 물었다. 여인은 "그대 마음이 그렇게 볼 뿐이다"답하고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한다.이에 문득 스님은, 깨달음은, 자타를 구별하며, 유혹이라 생각하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자재무애"의 경지를 알게 되었다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는 자재무애의 경지"를 일러 준, 그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화신 임을 뒤늦게 깨달은 스님은, 그 자리에 사찰을 짓고 "자재암"이라 하였다 한다. 자재암에는 원효스님이 수도하였다는 원효굴, 원효대, 나한굴이 있으며, 세조의 명으로 간행된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언해본"(보물1211호)가 대웅전에 비치되어 있다. 절 인근에는 요석공주가 설총을 키웠다는 요석궁지, 조선 태조가 자식들간의 왕권다툼으로 왕위를 물러나, 머물렀다는 행궁터(소요산 초입 우측의 넓은 터)가 있다. 가을 단풍관광지로 이름난 소요산일원은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연주암 ~의상대사가 677년, 관악산에 의상대를 세우고, 그아래 관악사를 창건한 나한도량이다. 세월이 흘러,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의상대와 관악사를 중수하고, 200일 기도를 하였다. 1398년 고려가 망하자, 고려 충신들이, 관악사에 은거하며, 고려왕조를 그리워하며, 의상대를 연주대라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양녕, 효령 두 대군이 관악사에서 수행하며, 미련을 떨치려했으나, 관악사에서는 왕궁이 보이므로,1411년, 관악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연주대의 이름을 따서,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바꾸었다. 연주암에는, 경기지방문화재로, 효령각에 모셔진, 효령대군영정(81호), 고려시대 양식으로, 효령대군이 세웠다는 삼층석탑(104호)이 있다. 연주암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 관악산을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특전(유료)이 주어지고, 과천과 서울의 야경을 감상할 수있다. 또한 새벽예불에 참석하면, 서울에서 보기드문, 별자리를 볼 수 있다(관악산 연주암 연주대의 응진전은 영험한 나한 기도처이며, 응진전 옆, 바위에 새겨진, 마애약사여래불은, 영험한 약사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김제 모악산 금산사~599년(백제법왕1년)에, 왕실사찰로 세워졌다. 그 후, 766년(신라 헤공왕2년)에, “진표율사”가 중창하고, “미륵전”을 세워, 미륵신앙의 본찰이 되었다. 1598년 정유재란때, 의병활동지라는 이유로, 왜병에 의해, “금강문”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1635년(인조13년)에 미륵전을 비롯하여, 중창하였다. 실제, 금산사는 화엄계열 사찰이므로, 미륵전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본불전”이다.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이, 장남 “신검”에 의해 3개월동안 감금되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입구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벗꽃길을 따라, 도보15분, 유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천왕문 입구에, 바로 닿을 수 있다.* 화순 쌍봉사~809년 영천 은해사를 창건한 “혜철국사”가, 839년 하안거를 지낸 곳이 쌍봉사라는 내용이 있어, 쌍봉사는 적어도 839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영천 은해사, 아래 영험한 "나한기도처" 참조). 그후, 경문왕(861~875)때, 중국 소주성 “쌍봉사”에서 도를 깨치고 돌아온, “철감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쌍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철감선사는 경문왕 때인, 868년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쌍봉사에는, 국보1점, 보물2점, 기타 전남도 유형문화재가 여러 점있다. 철감선사부도탑(국보57호), 철감선사부도탑비(보물170호),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보물1726호)이 있다.*속리산 법주사~553년(진흥왕 14년), 의신스님이 창건하였다. 부처님법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때 지어진 후, 중수를 거듭하다가, 조선후기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 건축을 위한, “당백전” 주조를 위해 몰수당였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1990년에 청동으로 완공하였고, 2000년에 대불에, 순금으로 도금하였다. 높이 33미터로, 세계최대 불상의 높이였으나, 1993년 34미터인 홍콩 포린사원의 “천단대불”에 뒤졌다. 한편, 석불로 지어진, 대구 동화사의 “통일 약사대불”은 1992년 세운, 높이 33미터의 세계 최대 석불이라 한다(동화사 "약사대불"은 아래, 영험한 약사기도처 참조). 법주사는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속리산 복천암~속리산의 배꼽부분에 위치한다는, 복천암은 720년(성덕왕19년)에, 진정선사가 창건하였으며, 주전불인 극락전 “무량수”는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 충북 유형문화재에서 해제되고, 국가보물로 승격된, 수암화상부도탑(신미대사,보물1416호)과 학조화상부도탑(보물1418호)이 있고, 충북 유형문화재인, 극락보전(299호), 극락보전 후불탱화인, 삼세불도(307호), 신중도(306호), 아미타여래삼존좌상(305호)등이 있다.장성 내장산(백암산) 백양사~유명한 가을 단풍관광지인, 백양사는 631년(백제무왕 32년), 승려 “여환”이 “백암사”로 창건하였다. 그후, 승려 “중연”이 1034년(고려 덕종3년)에, 중창을 하고, “정토사”라 하였는데, 1574년(선조7년)에, “환양선사”가 “백양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사찰이름을 바꾼 연유에 대하여, 몇가지 전설이 있다.* 김천 수도산 수도암은,859년 도선국사가 천하적지 수도명당이라는 "옥녀직금형" 명당자리에 사찰을 건립하고, 수도암이라 명명하였다한다. 수도암 약광전의, 광배가 있는 영험한 석조약사보살좌상은 보물296호이고, 대적광전안에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307호이며, 사찰마당에 있는 도선국사비는 신라명필 김생의 글씨로 밝혀 졌다고 합니다.*서울 북한산 흥국사 ~약사전을 주불로 모시는 흥국사는,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에, 원효대사가 도봉산 망월사 인근의 “원효사”에서 수행하던 중, 도봉산 넘어, 북한산의 서쪽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고 있어, 그 서기를 뒤쫒아, 서기를 찾던 중, 이곳에서 서기를 발하는 약사여래불 형상의 바위를 발견하였다. 그곳에 사찰을 창건하고,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는 뜻으로, 흥성암이라는 이름을 짓었다고 한다[원효대사는, 도봉산 망월사 인근, “원효사”에서 수도하였고, 이곳 “원효사”에는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영험한 나한기도처~ 도봉산 “원효사”참조)].* 강화도 정족산 전등사~“전등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해가야(금관가야) 불교는, 김수로왕(42.3.16 ~199.3.23) 당시에 바닷길을 통해 전파되었고, 그 시절에 창건된 밀양 만어사와 밀양 부은사, 하동 칠불사가 있다. 이블로그 저 아래, 불교의 전래, 가야불교 부분 참조].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오호십육국의 하나인, 전진의 왕 “부견”이 승려 “순도”와 사신을 통하여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하였는데, 그로부터 2년뒤인, 374년(소수림왕 4년)에, 진나라로부터 승려 “아도”가 고구려에 왔다. 그 7년 뒤인, 381년에,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여 가는 도중에, 강화도에 들리게 되어, 전등사의 전신인, “진종사”를 세웠다고 한다.* 대구 동화사~영천 은해사와 더불어, 팔공산 대표사찰인 동화사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전인, 493년(소지왕15년)에, “극달”스님이 “유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흥덕왕의 셋째 아들인, “심지왕사”스님이, 832년(흥덕왕7년)에 중창하고, “동화사”로 개칭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신라불교는, 눌지왕(411~457)시절, 육로를 통하여, 고구려 승려인 “묵호자”와, 고구려에서 온, 동진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를 전파하였지만, 공인을 받지 못하였다. 그 후, 이차돈의 순교로, 순교 이듬해인, 527년에 국교로 공인되었다 한다).보개산 (연천) 원심원사, (철원) 심원사 ~심원사는 647년(진덕여왕1년), “영원조사”가 영주산(현, 보개산)에, “흥림사”로 창건한 것이 시초이다. 720년(성덕19년), 사냥꾼 이순석형제가 흥림사 산내 암자인, 석대암을 세우면서 이곳은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보살 성지가 돠었다. 859년 범일국사가 "흥림사"를 중창하였지만, 1393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1395년 무학대사가 사찰을 새로 짓고, 영주산을 “보개산”으로, 흥림사를 “심원사”로 개칭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또다시 소실되어, 1595년에 다시 건립하였으나, 1907년, 의병 활동지라 하여, 일제에 의해, "심원사"는 또다시 전소되었다. 그후, 점차 복구하여, 1940년에는, 12개의 암자와 250칸의 당우를 갖춘 큰 절이 되었다.서산 상왕산 개심사 ~백제 의자왕14년(654년) 창건. 봄에 피는 왕벚꽃과 청벚꽃이 유명하다(우리나라 유일의 청벚꽃 자생지). 지장보살의 기도처로 잘알려져 있는 개심사의 대웅전에는 "치성광여래도"가 봉안되어 있다. 치성광여래는 밤하늘의 광명을 비추는 "북극성"을 의미한다. 주로, 삼신각 또는 칠성각에, 칠성님(하느님) 후면에, 불화로 모시고 있으며, 선교에서 약사여래 역할을 한다. 개심사에서는 특이하게, "치성광여래"를 대웅전에 봉안하고 있다(약사보전 "치성광여래"편 참조).강원 고성(속초) 금강산 화암사 ~769년(신라36대 혜공왕5년), 진표율사가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한 지장암이었는 데, 진표율사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이, 인근 좌선바위였던, "수"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에 의해, 벼 "화", 바위 "암"을 빌려 화암사라 개칭함. 미시령인근에 있는, 화암사의 미타암(전)은 영험한 “지장보살 기도처”이고, 화암사의 삼성각은 영험한 “산신기도처”로 속초에서 유명하다. 삼성각 법당 안팎에는, 천성대, 상팔담,세전봉,삼선대등의 금강산 풍경이 그려져 있어, 화암사가 금강산 일만이천봉 남측 첫 봉우리인 신선봉 아래에 있음을 알려 준다.영천 거조사 영산전 ~영천 은해사 말사로서, 738년, 효성왕2년에 "원참조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742년~ 765년)때 "왕명"으로 창건했다는 2가지설이 있다. "영산전"은, 건축년도가 확실한 1375년(고려우왕1년)에 지어진,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서 국보14호이다. "영산전" 내부에는, 석가불과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526분의 석조 나한을 모시고 있는데, "영산전" 일명, "오백나한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영천 은해사~대구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 대표사찰인 은해사는, 809년(신라 헌덕왕1년)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해안사”였는데, 1546년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 하였다.울진 불영사 응진전~불영사는, 651년(진덕여왕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비구니 참선도량이다. 서쪽 산등성이에 있는 부처바위가 연못에 비친다하여, 불영사라 하였다(CNN선정, 아름다운 사찰 33곳중의 “한곳”이다. 인근에 불영사 계곡이 있다). 응진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불영사 의상전은,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도봉산 망월사 영산전 ~신라선덕여왕 8년(639년) 해호화상이, 신라왕실의 융성을 기원하며 창건하였으며, 1066년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중창하였다. 신라말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태자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전해진다. 망월사 문수굴과 영산전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소문 난, 영험한 나한 기도처로서, 매년 봄, 가을 2차례에 걸쳐 철야 기도를 봉행하고 있다. 영산전 좌측으로 가면, 명당자리에 경기도 지방문화재 122호의 혜거국사탑이 있다.*도봉산 원효사~망월사 인근에 있는 원효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원효대사가, 한동안 이곳에서 머무르며 수도 했던 곳으로, 원효대사 동상이 있다. 원효대사는, 이곳 “원효사”에서 수도 중, 북한산 건너편에서, “영기”가 솟는 모습을 보고, 이를 뒤쫒아, 약사여래불 바위를 찾게 되었고, 그 자리에 북한산 “흥국사”를 창건하였다 한다(영험한 약사기도처~ 북한산 “흥국사”참조).문경 희양산 봉암사(1년에 단하루만 개방되는 사찰) ~879년(헌강왕5년)에 지증국사가 창건한,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이다. 봉암사는 백두대간의 배꼽단전에 해당한다고 하는 희양산자락에 있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조계종 특별수도원”이다. 봉암사는 매년 1회 부처님오신날, 단 하루만 일반에 개방하므로, 누구나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사찰이 아닙니다(그날 무지하게 붐비므로, 일찍 출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애 미륵보살좌상과 함께, 전각중에서는, 특히, 극락전과 산신각이 많이 붐빈다).서울 옥수동 종남산 미타사(7개의 암자로 구성된, 천년 고찰 비구니 수행사찰)~조계종 조계사의 말사로서, 신라 진성여왕2년(888년)에 “대원”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된, 천년역사를 간직한, 전통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다. 당초 금호동 부근에서 창건되었으나, 고려 예종10년(1115년)에, “봉적”, “만보” 두 비구니 스님이, 현재의 옥수동으로, 자리를 옮겨, 극락전을 건립 후, “담진”국사로부터 “미타사”라는 사명을 받았다.서울 우이동 용덕사 산신각 ~도선국사가 창건한 용덕사의 산신각은 용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있고, 용이 물고 있다는 여의주에 해당하는 바위에는, 도선사 마애불과 부부 마애불로 알려진 "약사여래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이 용덕사의 산신님은 영험하기로 유명하여, 산신님이 하산하는 날이라고 하는, 매년 음력 3월16일에는 서울 강북구청 후원으로 "우이동 삼각산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이름이 같은, “용인의 용덕사”에는 영험한 용굴이 있다. 이 블로그 중, 나한기도처 참조).양산 영축산 통도사 자장암 산령각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수행한 자장암은, 금개구리에 대한 설화가 있는 "금와공 바위"가 있다. 자장율사가 법당뒤 석간수가 나오는 곳에, 금개구리를 살게 하였는 데, 이 금개구리가 벌, 나비, 거미 등으로 변하여, 암자 곳곳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금개구리는 특별한 날에 불심이 지극한 불자에게는 그 모습을 보인다하여, "금와보살"이라 부른다 한다청송 주왕산 주왕굴(산신각)~중국 진나라때, 자칭 주나라 주왕이라 부르던 반란군이, 신라까지 쫓겨와서, 신라의 마장군에게 죽은 후, 산신이 되었다는 설화와 함께, 한가지 소원을 들어 준다는 영험한 산신기도처.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은, 폭포와 기암절경, 단풍관광지로 유명하며, 인근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저수지인 "주산지"가 있다.등등~~~~~
- 생활꿀팁생활올해 연말배당 받으려면 언제까지 주식매수해야 하나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모든 주식 마다 배당락일이 달라요 주식사이트 들어가셔서 확인하시면 자세히 나와있어요
- 생활꿀팁생활손톱 발톱은 계속 자라네요. 어떤 이유로 계속 자라는 걸까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모발과 같다고 보면 돼요. 손발톱도 단백질, 손톱도 단백질이거든요.모발이 이루고 있는 구조는 세로로 길지만, 손발톱은 넓게 되어 있어서 모양이 조금 다른겁니다.색은 모발에 멜라닌세포가 있어서 까맣게 보이는 거구요..그리고 손발톱이 없으면 뛰고 달리고 서 있거나, 손으로 물건을 잡거나 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손발톱의 세포는 손발톱 뿌리에 존재해 있고, 거기에서 만든 단백질은 딱딱하게 각화가 되어 자라는 겁니다. 자를 때 아프지 않은 이유는 세포가 존재해 있지 않기도 하지만 세포 중에서 감각세포가 없어서 그렇죠..
- 생활꿀팁생활생크림중에 식물성 동물성 건강에도 다른가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간단합니다동물성은 우유의 성분으로 만든 크림미며식물성크림은 우유성분없이 제조한 동물성 크림 비슷하게 만든 크림입니다
- 생활꿀팁생활인공눈물을 잘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일회용 인공눈물 사용하시면 그림처럼 눈꼬리쪽에 인공눈물을 가로로 눈에 붙여서 사용하시면 인공눈물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게 잘 안보여서 무서워 눈을 움찔움찔하고 오래걸리는 걸 해결하실 수 있어요! 다회용 인공눈물은 세균번식 등의 이유로 눈에 직접 안닿게 하는 게 좋지만, 일회용 인공눈물의 경우는 몇시간 안에 다 쓰는 게 대부분이라서 입구가 피부, 안구에 닿아도 크게 상관 없어요.
- 생활꿀팁생활밖에서 일하시는분들 답변좀 해주세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손발 다 시리죠 .핫팩을 항시 갖고 다니고 열조끼를 입는데 땀이납니다.상황이 많이 안좋아요 .
- 생활꿀팁생활최저임금 기준이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나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법안의 내용은 간단하다. 국내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자격을 받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육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값싼’인력을 도입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 생활꿀팁생활스팸전화를 안오게 하려면 핸드폰번호변경시에는 해결될까요?A. 안녕하세요. 말쑥한왈라비203입니다.개인정보 유출및 번호 생성기라고 있는데무작위로 번호 만들어서 전화 또는 문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번호바껴도 또 .. 무한반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