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

한국 전쟁 당시에 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남한의 주민들을 상대로 인민 재판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었으며 왜 했었나요?

안녕하세요

한국 전쟁 당시에 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남한의 주민들을 상대로 인민 재판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었으며 왜 했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감동스러운알알이51
      감동스러운알알이51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민재판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죄를 규탄하고 처벌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북한이 남한을 점령했을 당시, 남한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강요하고 저항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쟁 당시 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남한의 주민들을 상대로 인민 재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확인됩니다. 그인민 재판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행되는 공개 재판으로, 일반적으로 공산당이나 혁명위원회 등이 주관하며 형식적인 절차 없이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주로 정치범, 반혁명분자, 친일파, 지주, 자본가 등의 계급 적대 분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사형, 강제노동, 체형 등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한에서 6.25전쟁 중에 북한이 점령한 일부 지역에서 인민 재판이 행해졌습니다.

      부자, 공무원, 군경, 지식인 등 혁명에 반대했거나 그렇다고 의심받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그들은 운동장 공터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군중들로부터 모욕을 당했고 즉석에서 사형, 재산 몰수, 태형 등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은 대개 즉각 집행되었으며 인민재판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들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고 부자들이 공산정권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공포심을 주입시키려는데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민재판은 공개된 장소에서 피의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재판 형태입니다. 즉결 재판으로 변론 없이 진행되며 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시행됩니다. 북한에서도 1946년 12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인민재판은 6.25 전쟁 발발 후 인민군이 장악한 남한 지역에서도 열려 악질 지주나 자본가, 경찰이나 군인 등을 대상으로 ‘반동분자’라는 이름으로 처형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민재판은 같은 동네 및 주민들 사이에 벌어졌으며, 이웃은 물론 친족들 사이에도 반목과 증오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다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을 하면서 다시 보복이 자행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민 재판과 보복은 한국인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 상처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