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구식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 개화 정책에 반발하여 임오군란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구식 군인들은 오랫동안 급료를 받지 못했는데, 13개만에 받은 급료도 겨와 모래가 섞인 쌀을 받자 격분하여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군란이 확산되어 민씨 세력과 일본 영사관 습격으로 확대되었고, 방패막으로 찾아간 흥선대원군은 군란을 이용해 재집권을 노렸습니다.
난군은 경복궁을 공격하자 민비는 충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자 고종은 흥선대원군에 군란 수습을 부탁하면서 흥선대원군의 뜻대로 재집권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충주로 피신한 민비가 청에 구원을 요청하자 청군이 들어왔으며, 일본군도 자신들의 피해를 이유로 제물포에 군함을 파견했습니다. 청은 일본군이 조선에 압력을 가하면서 조선과 청의 충돌할 것을 우려하여 모든 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대원군을 텐진으로 압송한 것입니다.